『필경사 바틀비』, “안 하는 편이 좋겠어요”

by 진순희


19세기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안이 기울면서 어린 나이에 생계를 걱정해야 했고, 은행에서 일하다가 교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바다로 나갔습니다. 포경선을 타고 항해하고, 낯선 섬에 머물고, 떠돌듯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경험으로 쓴 소설들은 처음에는 잘 읽혔습니다. 훗날 『모비딕』을 쓴 작가이지만, 그가 쓰기 시작한 이야기들은 점점 독자들이 기대하던 방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무렵 한 작가와 깊이 교류하게 되면서, 그의 문장은 더 깊어졌고, 그만큼 독자들과는 조금씩 거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결국 독자들은 멀어졌고, 그는 세관에서 일하며 조용히 살아갑니다. 작가로서의 이름도 한동안 잊히게 됩니다.



「필경사 바틀비」는 그런 흐름 속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뉴욕의 사무실, 책상과 서류가 가득한 공간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일의 속도와 정확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그 안에서 바틀비는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일을 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안 하는 편이 좋겠어요.” 처음에는 일부만 거부하던 사람이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나중에는 먹는 일도 멈춥니다. 특별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유도 길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멈춥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은 이미 충분히 쌓여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개인이라는 해석도 있고,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인간이 닳아버린 결과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끝까지 ‘하지 않음’을 선택한 존재로 읽는 관점도 있습니다.


각각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보다 해석이 더 앞에 나서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많은 설명을 잠시 내려놓고, 바틀비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가 무엇을 했고, 어떻게 멈추어 갔는지를 차분히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바틀비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거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같은 일을 반복하며 문서를 베껴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의미를 묻지 않는 일,


끝없이 이어지는 작업 속에서


그는 조금씩 힘을 잃어갔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안 하는 편이 좋겠어요”라는 말은 선택이라기보다, 더 이상 움직일 동력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읽힙니다.




바틀비는 싸우지 않습니다.


반항하지도 않고,


설득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그저 “안 하는 편이 좋겠어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하나씩 멈춥니다.



일을 멈추고, 이동을 멈추고, 끝내 먹는 일까지 멈춥니다. 그 흐름은 단절이라기보다 점점 속도가 느려지는 쪽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보통 그렇게 무너집니다. 큰 사건이 있어서 한 번에 무너지는 경우보다, 조금씩 늦어지고, 조금씩 미루다가 어느 순간 멈추게 됩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다시 미루다 보면 시작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바틀비는 그보다 더 나아간, 더 이상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지점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멀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미루고, 늦추고, 손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바틀비는 그런 상태를 지나,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마지막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어떤 상징적인 결말이라기보다, 멈춘 상태가 계속 이어졌을 때 도달하는 한 지점. 특별한 사건 없이도 갈 수 있는 끝.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읽고 나서 복잡한 생각은 남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만 남았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미루고 있는가.

그러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어디까지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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