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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y 19. 2020

난 참 쉬운 여자입니다

『해빗』으로 내 몸에 해빛으로 물들게 하리


지금 나날이 평수를 늘려가고 있다. 


여하튼 나는 평수 늘리는 데 있어서는 귀재다. 

어제도 4단 샌드위치에 기네스 맥주 한 캔을 몸에 부었다. 그것도 새벽 두 시에. 원래는 아들 준다고 사간 거였는데 그 아들이 어제 따라 일찍 잠이 드셨다. 그게 화근이었다.

책을 읽겠다고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자정을 훌쩍 넘겨 퇴근을 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편안하니 그동안 해왔던 루틴대로 침대를 등받이 삼아 기대어 앉았다.     

  

평소 수업이 연달이 있다 보니 저녁은 짧은 쉬는 시간에 폭풍 흡입하게 된다. 퇴근 후에는 나에 대한 보상으로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고 있다. 넷플릭스로 심신을 달래다 보면 편의점 1+1처럼 야식은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과정이다. 거기에 기네스까지 곁들이면 완전 풀코스로 즐기게 된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틀어놓고 『해빗』을 읽으며 샌드위치 한 입에 기네스 한 모금을 우아하게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귀로는 짐노페디를 듣고, 손으로는 샌드위치와 흑맥주를 먹으며 눈으로는 『해빗』을 읽고 있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습관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나쁜 습관을 지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달 심리학 모임의 읽을 과제가 『해빗』인데 그걸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한밤 중에 아니 꼭두새벽에 야식에 음주를 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비록 맥주 한 캔이더라도 좀 지나면 두 캔으로 늘어나겠지. 

거울 볼 때마다 제법 튼실하니 바뀌는 몸을 보며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마침 한 달간 간헐적 단식을 모집하는 곳이 있어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효과가 있다는 간헐적 단식이 솔깃하긴 하다. 가족이랑은 겨우 아침 한 끼 먹는 게 고작인데 무슨 대단한 영화를 보자고 다 늙은 신랑 혼자 밥을 먹게 하나 싶어 며칠 째 고심 중이다. 하지만 어제와 같은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야식을 안 해야겠다고 넷플릭스도 이젠 그만 봐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건만 또 무너져 버렸다. 넷플릭스는 어느 정도 조절이 됐는데 그놈의 야식이 문제다. 밤늦게까지 수업하고 퇴근할 때쯤이면 허기가 져서 솔직히 모든 생각이 먹는 거에만 신경이 몰린다.


김수영 시인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는데 매번 걸신들린 ‘에리직톤 Erysichton’처럼 식욕에 지고 있는 나는 알고 보면 참 쉬운 여자다.
 이 노릇을 어찌할까. 굳은 결심을 해보건만 뇌는 가볍게 나를 비웃는다.      


굳은 결심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으면 자책하지 않았을 텐데. 『해빗』을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의식적인 의지로는 절대 할 수 없단다. 오직 비의식적인 자아로 하는 습관만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득한다. 그동안 돈키호테처럼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한 셈이다. 『해빗』에서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답을 에둘러서 돌아왔다.  



『해빗』을 쓴 저자 웬디 우드는 저서라곤 달랑 이 책 한 권이 전부이다. 하지만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서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인간 행동을 관찰하고 탐구해 탁월한 연구 실적을 가지고 있다. 무수히 많은 논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늘날 그 유명한 『GRIT』 의 앤절라 더크워스나 『오리지널스』의 애덤 그랜트와 같은 세계적인 심리학자들에게 습관과 관련된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해빗』은 웬디 우드의 30여 년간의 집약된 연구물이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 뒤에 감춰진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습관을 잘 활용해서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 내도록 우리를 독려하고 있다.    

  

습관을 일상이라는 삶에 ‘닻 내리기’      


웬디 우드 교수는 1부 「무엇이 우리를 지속하게 하는가」에서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의지에 기대서는 안 되고 좋은 습관을 길러야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습관이 언제, 어떻게, 왜 작동하는지에 대한 단순하고 강력한 법칙을 알면 삶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목표에 상응하는 더 좋은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 이때는 더 이상 의지력에 기댈 필요가 없다. 일상의 함정 속에서도 좋은 습관을 기르는 방법을 이해시키는 것. 내가 이 책에서 이루고자 하는 단 하나의 목표다.                                                                                                                                                                                                                                                                                    -  『해빗』, 「1장 비의식적 자아: 습관은 영원한 지속이다」, 51쪽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나 일단 시작해보라는 Just Do It은 말 그대로 시작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며, 시작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습관이 상당 부분 일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많은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은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다. “의식적 자아”가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냥 비의식적 자아가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란다.      


“우리의 삶에서 습관에 지배되는 행동의 비율에는 개인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에 평범하더라고 좋은 습관을 지닌 사람들만이 성공하고 비범해지나보다. 습관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일상에서 갖고 있는 습관의 몫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습관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적으로 43%를 약간 넘는다”고 말한다.    


어깨에 힘을 `빼듯이 습관은 애써 참거나 회피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제력 또한 필요하지 않다. 자제력이 뛰어난 이들은 ‘투쟁’이 아니라 ‘자동화’로 자신이 목표한 수치에 도달한다. 책에는 자제해야 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이들의 특징이 잘 설명되어 있다.      


그들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굳이 입술을 꽉 깨물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특정한 행동을 반복한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고, 한번 시작하면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날마다 작은 성공을 쟁취한다.
그들은 투쟁하지 않는다. 

- 『해빗』, 「5장 상황 제어: 습관은 투쟁하지 않는다」, 126쪽  

 

자제력이 강한 사람들은 ‘나’처럼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결심하지 않았으며 투쟁하려 들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며 의지 또한 불태우지도 않았다. 그냥 별생각 없이 이 닦고 밥 먹듯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지만 큰 성공을 이룩해냈다. 일상에서 스몰 스텝으로 하나하나 완성함으로써 목표에 도달했다.

이들은 일상이라는 삶에 닻을 내려 자신의 위치 또한 확고히 했다.    


나는야 헬스장 기부천사     


작심삼일로 헬스장 기부천사가 되어본 사람은 알리라. 결심이 얼마나 종잇장처럼 얇은지를. 

『해빗』에는 자신의 의지를 과신하기보다 좋은 습관을 들이는 방법에 대해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웬디 우드 교수가 안내하는 좋은 습관을 들이는 ‘습관 설계 법칙’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을 중심으로 늘 똑같은 상황을 유지하라. 
 2. 좋은 습관을 방해하는 ‘마찰력’을 제거하라. 
 3. 어떤 행동을 유발하는 자신만의 신호를 찾아라.  
 4. 행동 그 자체가 보상이 되도록 설계하라. 
 5. 습관의 마법이 시작될 때까지 이 모든 것을 반복하라.     


출처-  https://hub.zum.com/daily/21278


수강료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지자체에서 하는 체육센터에 등록을 했다. 버스로 이동해야 해서  등록해놓고 물에 들어간 것은 한 달 동안 딱 두 번이었다. 일터 바로 앞에 있는 헬스장을 놔두고 반값 가까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한 정거장 거리의 헬스장을 결제했다. 거기도 딱 PT 시간에만 갔다. 한참 만에 운동화 찾으러 갔더니 이미 폐업한 지 오래였다. 큰 맘먹고 산 운동화만 날아가버려 속이 쓰렸다. 아, 『해빗』을 먼저 읽었더라면 의지와 사투를 벌이는 무모한 짓을 안 해도 됐을 텐데.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거였으면 비싸더라도 가까운 곳을 선택했어야 했다.  


기껏 결심해놓고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거리 마찰력 때문이란다.     

 

2017년 2~3월 한 데이터 분석 업체가 750만 대의 스마트폰 기록을 수집했다. 이 업체는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헬스장을 얼마나 멀리까지 다니는지 분석했다. 약 6킬로미터 떨어진 헬스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한 달에 5회 이상 방문했다. 이와는 반대로 약 8.2킬로미터 떨어진 헬스장에 다니는 사람들의 방문 횟수는 월 1회에 그쳤다. 겨우 2킬로미터 남짓의 차이가 다섯 배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 『해빗』, 「7장 습관 설계 법칙 2: 적절한 곳에 마찰력을 배치하라」, 164쪽    

  

수영장이 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헬스장은 멀어서 운동하는 데 실패를 했다. 가뜩이나 운동하기 싫어하는 데다 거리까지 있으니 심리적으로 부담이 됐다. 이런 것을 간파한 저자는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단 하나의 개념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 단어가 마찰력이 되길 바란다”고 조언한다.   


결코 애쓰지 않아도 되는 습관으로 자리 잡으려면 마찰력이 없어야 된다. 최소한 주 2~3회 정도의 운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면, 그 공간은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가깝고 쉬운 곳에 있어야 한다. 수영이나 헬스를 마음을 먹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면 그 ‘마찰력’부터 없애는 것이 순서다.

      

작지만 거대한 철학을 담은 ‘미즈 앙 플라스(Mise en Place)’     


‘미즈 앙 플라스(Mise en Place)’! 

프랑스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장들이 원칙으로 삼는 문구이다. ‘제자리에 놓다’라는 의미가 말하듯 주방장들은 조리도구와 식자재가 제자리에 놓이기 전엔 요리를 시작하지 않는단다. 비의식적 자아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문구는 “불필요한 마찰을 감소시키기 위해 고안된 작지만 거대한 지혜”이다.    

  

‘미즈 앙 플라스’는 조리하는 행위와 몸이 하나가 되어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부러 생각할 필요도 없게 요리와 관련된 모든 것은 잘 정렬되어 있다. 요리사는 무의식적으로 요리하는 행위, 그 자체에만 모든 힘을 쏟게 된다. 이렇게 반복된 행위를 하다 보면 습관으로 형성되는 것은 당연하다.   

   

잘 배열된 ‘미즈 앙 플라스’ 정도는 아니어도 쉬운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선 간헐적 단식을 하는 프로그램에 등록하려 한다. 나의 의지력은 생각만큼 강하지 않기에 습관으로 자리 잡도록 마찰력을 최소화하려 한다. 야식을 끊고 건강해지려 한다. 습관처럼 비 의식적 자아를 움직이게 하려면 의식적으로 꾸준히 행함이 필요하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단다. 별이 빛을 받아서 빛나는 것처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간헐적 단식을 통해 나의 몸을 빛나게 하련다. 비의식적 자아가 눈부신 활약을 하도록 의식적 자아를 반복하고 독려하다 보면 머지않아 “노력 중독자”에서 “습관 설계자”가 되지 않을까. 


‘해빗’으로 꾸준히 몸에 새기다 보면 내 몸에도 해가 비치는 해빛으로 물들겠지.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빛나는 거야."                                 -<라디오 스타> 중에서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빼어난 비유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를테면 욕망을 억제하라고만 하는 것은 “압력밥솥처럼 분노가 폭발할 때까지 욕망과 충동을 억누르고 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표현이라든가 인간의 인내심이란 “갓 나온 수프보다도 빨리 식어”버릴 정도로 얄팍함을 보여준 문장들은 무릎을 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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