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순희 Jul 27. 2020

결국, 몸이 먼저였다

'마음상함'에서 빠져나오기- 『따귀 맞은 영혼』

밖으로 달려 나가기     


속이 시끄럽거나 우울감이 밀려올 때면 햇빛 속으로 달려 나간다. 오로지 시선을 앞에만 두고 어깨를 쫙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걷는다. 빠른 걸음으로 걷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산란했던 마음은 고요히 가라앉는다. 일터 뒤의 오솔길을 왔다 갔다 네 번 왕복하고 나면 만보 이상 걷게 된다. 내친김에 한강 고수부지로 나간다. 탁 트인 전경과 하늘을 보며 걷다 보면 동작 대교 남단에 있는 구름 카페까지 가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카페에 올라가 차도 마시고 책도 읽는다. 한강의 노을과 야경을 구경하며 우울한 감정을 다른 데로 돌려버린다.  

    

동작대교에서 반포를 거쳐 부지런히 거슬러오면 이미 삼 만보 가까이 걸은 뒤라서 그런지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얼른 반신욕부터 해야겠다는 일차원적인 욕망에 사로잡힌다.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우울한 기분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다. 몸을 괴롭히고 나니 마음은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된다.  

      

마음을 수선하려면 몸이 우선이다. 몸부터 챙겨야 영혼을 건강하게 돌볼 수 있다. 

한근태 작가의 『몸이 먼저다』에 의하면 자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우뚝 서서 롱런하는 사람들이나 변화의 파도를 잘 타는 사람들은 몸 관리에 철저하다고 한다. 꾸준히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내는 사람들은 자기 몸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바쁠수록, 잘 나갈수록 몸이 먼저”라고 부르짖는다. 

     


몸이 먼저다


“예전에는 호랑이 굴에 잡혀 가도 정신만 독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려도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면 어떻게 호랑이 굴에서 빠져나오겠는가? 몸이 약해지면 정신도 무너져 내린다”라고 『그만둬도 괜찮아』 의 저자 유재경은 힘주어 강조한다. “몸이 좋아지면서 많은 것들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라고 밝힌다.  


강철 같은 정신은 있어도 강철 같은 몸은 없다지 않던가. 대부분 몸이 무너지는 순간 정신 또한 허물어진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 때문에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는 ‘마음상함’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의 하나로 『따귀 맞은 영혼』에서도 ‘몸을 움직이기’를 제안한다.  

      

『따귀 맞은 영혼』은 책의 제목도 제목이지만 책 표지에 강렬하게 꽂혔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따귀 맞은 영혼』의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표지 그림에 발이 멈췄다고 했다. “음영이 있는 회록색 벽을 바탕으로 한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는 그림(<생각에 잠긴 여인>, 뮌헨 렌바흐하우스 시립 미술관 소장)”있는 책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던 것도 다 표지 덕분이라고 고백한다.    

  

그림 <생각에 잠긴 여인>에 나타난 여인의 모습은 ‘손으로 턱을 괴고 몸은 전체적으로 앞으로 좀 기울어진 모습으로 슬프다고도, 그렇다고 딱히 화가 났다고도 할 수 없는 초점이 애매한 시선’ 이어서 역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처럼 독자들 또한 눈길을 멈추게 한다. 설령 그것이 독일에서 본 그림 그대로는 아니었어도 어쨌든 한국의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책 표지만 봐도 책의 내용이 짐작이 갈 정도로 책 내용과 표지가 서로 매칭이 잘 된 책이다.      



『따귀 맞은 영혼』의 저자 바르테츠키는 게슈탈트 심리학을 기초로 해서 ‘마음상함’이라는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독일어로 ‘형태’ ‘모습’을 뜻하는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간의 심리학이 개별적이고 미시적인 것들에 천착해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을 개별적이고 미시적인 한 요소에 국한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통합된 반응으로 보는 심리학인 ‘게슈탈트 심리학’이 나중에 인지 심리학에 영향을 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하는 데 적합하다는 게슈탈트 심리 치료법을 적용한 저자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여러 임상사례를 제시해 책을 엮어냈다. 배우자들 간의 무심함, 사랑이 무산될 때의 무력감, 연인들 간의 사소한 갈등, 친구 사이에서의 경쟁심, 직장에서의 압박이나 능률 저하, 심지어 상담치료에서 받는 마음상함까지 관계에서 일어나는 마음상함들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마음상함은 “상대가 나와의 관계를 내가 중시하는 것만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마음이 언짢아진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의리를 저버렸다는 느낌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것이지요. 우리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신뢰가 단단히 묶인 관계일수록, 우리가 마음을 심하게 다칠 가능성은 커집니다. 가까운 관계일 경우 우리는 상대가 자신에게 항상 호의적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 기대가 깨졌을 때 상심하는 겁니다.     
-『따귀 맞은 영혼』, 153쪽     


그동안 마음 상한 일이 있으면 꾹꾹 참다가 이도 저도 안 되면 아예 관계를 끊어내기 일쑤였다. 그것만이 쉽게 할 수 있고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고양이 쥐 생각하듯이 내가 이런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절교를 하는 것이 상대에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따귀 맞은 영혼』에서는 ‘마음상함’이 있더라도 관계를 끊는 대신 거리두기를 하라고 권한다.   

   

책에서 읽은 내용 중 선별해 대처 방안 몇 가지를 선택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관계를 희생해가면서 마음의 이민을 떠나기보다는 “마음 상했음을 고백하기”이다. 마음 상함 음 우리 자신에게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둘러싼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에 “관계를 끊는 대신 거리두기”를 한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물러남,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함, 방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함, 감정을 적당한 수준으로 축소시킴”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면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시종일관 두려움 없이 다시 체험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끊는 고립 상태에서 탈피해 활발한 삶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기에 마음상함을 이겨내는 편으로 내딛게 된 셈이다.        

   

마음이 상하는 것은 현재의 사건 이전에 원초적인 마음상함이 이미 내재되어 있음을 전제한다. “자기 고유의 심리적 주제 인식하기”에서는 특별히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마음상함의 주제가 있는데 이것을 잘 짚어내야 함을 이른다. 또 다른 대응 방법으로 ‘몸을 움직이기’가 있다. 저자는 마음상함을 딛고 일어서는 일도, 마음상하기 쉬운 성향을 변화시키는 일도 언제나 몸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몸을 움직여서 감정을 표현하거나 정리하는 행위는 마음상함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능한 한 앉아서 지내지 마라.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면서 얻은 게 아니라면 어떤 사상도 믿지 마라.
 -니체     

힘이 있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겠다는 의지로 움직일 때 마음상함을 치료할 수 있다. 상심, 분노, 모욕감, 희생을 자처하는 태도들은 모두 마음이 굳어져 있는 상태이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자신을 느끼고 더 나아가 자신의 몸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마음상함을 이겨내도록 자신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 밖의 대안으로 자존감 확립하기, 변화의 열쇠는 접촉, 사물을 다르게 보기 등이 있다.      

 

마음상함은 미래에 무언가를 기대했을 때 그것이 어그러졌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하여 저자는 현재를 충만하게 느끼며 사는 동안에는 마음상함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이미 넘치도록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제 현재에 떠억 발을 딛고 서겠다는 결심만 하면 되는 것”이라는 틱낫한의 글을 인용하며 지금, 여기, 현재에 충만하게 살면 불행해질 이유가 있겠냐고 묻는다.     

  


삶은 바로 지금 여기, 이곳에만 있습니다. 지금 여기가 그대 인생, 최고의 순간입니다 
- 틱낫한,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 80~81쪽      


기대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를 포함하고 있기에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실망하게 된다. 이에 비해 희망은 미래를 향하고 있기에 여기와 지금이라는 조건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기대 대신 희망을 품고 느긋함을 지닐 때 마음상함이라는 함정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제언한다. 

     

마음상함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 대안이 있지만 결국 몸을 움직임으로써 마음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었다. 마음 챙김도 몸이 먼저다. 

     

시 한 편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하느님, 제게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일
느긋함을 주소서.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은 변화시킬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두 가지를 서로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프리드리히 크리스토프 외팅거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여기, 세상을 이해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