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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l 25. 2020

지금, 여기, 세상을 이해하다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에 대한 단상

공간에 대한 개념이 없다


아이들에게 세계사를 설명할 때 참 난감한 상황에 부딪친다. 공간 개념이 없어도 너무 없다. 위치는 고사하고 이집트가 유럽에 속하는 줄 하는 학생도 있다. 대부분의 중학교가 중2 때부터 역사를 가르친다. 그런데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구성은 한국사랑 세계사가 혼합이 되어있다.      


중2부터 역사 시험이 있다 보니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어렵지 않게 대비를 한다. 문제는 전혀 역사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이다. 자습하러 오는 학생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계지리를 눈으로만 읽고 지도를 그려보려고 시도조차 안 하려 든다. 국어를 가르치기는 하지만 안타까운 친구들은 옆에 붙어서 공부하는 법이라든가 시험 때 시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해준다.   

   

예전에는 공부할 때는 당연히 기름종이를 많이 썼다. 공부할 곳을 펼치고 기름종이를 위에 얹고 중요 부분은 까맣게 사인펜으로 색칠을 하고 까맣게 빈 곳을 맞추어 가며 공부를 했다. 지도 같은 경우에는 기름종이 위에 지도를 그려 넣기도 해서 기본적인 지리적 위치 등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세로로 연표를 그린 다음 해당 사건이나 중요한 것을 써놓으며 암기를 했는데 요즘 학생들은 도무지 손으로 쓰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공책에 써 놓은 글씨를 보면 글씨를 쓴 자신도 못 알아볼 정도로 글씨를 쓴다. 펜으로 쓰는 기능이 퇴화되고 있는 중이다.  

    


역사를 다룬 기존의 책들은 ‘사건’을 중심으로 정치나 전쟁의 맥락에서 접근했다. 그런데 사실 역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돈과 관련되어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역사를 제대로 살펴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사건과 정치의 이면에는 언제든 돈 문제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특하게도 돈의 흐름으로 세계사에 접근한 책이 있었다. “돈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는가”라는 부제를 단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이다.    

  

그런데 저자 오무라 오지로의 이력이 참 독특하다. “학생 시절부터 돈과 경제의 역사를 연구해왔으며 지금까지 필명으로 낸 저서만 30여 권에 이른다”라고 적혀 있다. 학생 시절부터 돈과 경제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그랬는지 직장도 일본 국세청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아무튼 세계사를 알기 쉽게, 어렵지 않게 설명해서 중학생 아이들도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돈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다. 특히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본주의의 논리가 더할 나위 없이 세졌다. “지금은 돈이 곧 권력이며,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원리”라며 “달러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가 아랍 국가들이 석유를 거래할 때 반드시 달러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영국은 국가차원의 해적 행위를 통해 부강해진 나라이다. 근대적인 조세와 은행을 한 발 앞서 정비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전쟁에 드는 비용을 조달할 수 있었다. 막강한 군사력은 곧 경제력으로 이어졌다. 금본위제를 채택한 1822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이 1913년까지 90년 동안 영국의 물가지수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금본위제 이후 안정된 금융을 구축한 셈이었다. 이때부터 국제무역에 쓰이는 공통된 통화인 ‘기축통화’로 파운드로 거래되었다.      


책 표지의 광고 문구가 “산업혁명, 금 본위제 채택부터 냉전시대, 석유 파동, 중국 AIIB 설립까지 과거에서 현재, 미래의 세계정세와 경제 구도를 단숨에 꿰뚫어 보다”이다. “지금, 여기, 세상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을 얻고 싶은 경제적 인간을 위한 똑똑한 세계사”라는 문장에 걸맞게 심도 있지는 않으나 상식으로나마 세계정세와 경제 흐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교양으로 한 말씀할 정도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가정 경제나 국가의 부흥은 돈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어떻게 세계사의 ‘흐름’에 기여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어 그 부분이 미흡하긴 하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이 날 때 조금씩 읽어두면 세계사의 큰 줄기를 지루하지 않게 알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한쪽으로 치우쳐서 서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이 세계 무대에 부상하게 된 이유를 일본은 전쟁 전부터 ‘초고도 경제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 힘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를 테면 “ 일본 경제는 전후에 급격히 성장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전쟁 전 경제성장 쪽이 더 굉장했다”라는 식이다. 일본이 저자만이 지닐 수 있는 편견과 왜곡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서양 중심으로 펼쳐져 있어 동아시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빠진 것에 있다. 아시아인인 일본 사람이 집필하면서 동아시아가 누락되어 있어 ~으로 보는 ‘세계사’에 세계사 부분이 온전하게 실려 있지 않아 ‘세계사’라는 제목이 무색할 지경이다. 

      

에도시대까지의 일본은 직업 선택의 자유, 교통의 자유, 토지 매매의 자유가 없었다. 원칙적으로 태어난 지역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으며 가족의 생업을 이어받아야 했다. 농민으로 태어났다면 태어난 지역에서 평생 농민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지정된 작물 외에는 다른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98쪽     



일본에 가면 유명한 우동집이나 떡집 등은 삼대는 기본으로 해서 가업을 이어받은 곳이 많다. 언젠가 TV에서 일본 명문대 출신의 아들이 아버지가 하던 소박한 우동 가게를 가업으로 물려받아서 하는 것을 보고 일본은 가업을 잇는 전통이 있나 보다 하고 짐작을 했었다. 가업 잇기는 개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기업에도 있었다.


일본의 건설업체인 '콩고구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기업으로 578년에 세워졌다. 무려 40대에 걸쳐 1,400년 이상을 지속해 오고 있는 셈이다. 일본인들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고 내심 흐뭇해했는데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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