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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l 22. 2020

“코코넛과 상어 중에 뭐가 사람을
 많이 죽일까?”

-보이지 않는다고 차별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요구합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외쳤던 목수 출신의 다니엘 블레이크. 올해 나이 85세인 캔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일을 못하게 된다. 질병 수당을 받기 위한 심사에서 기각당하고, 구직활동을 증명하지를 못해 실업 수당까지 끊기는 총체적 난국을 맞는다.    

    


평생 인터넷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데 인터넷으로만 신청해야 하는 복잡한 시스템과 원칙만을 주장하는 공무원들 앞에 결국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영화는 시종일관 사회보장 시스템으로부터 한 개인이 소외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냉철하게 보여준다. 다니엘 같은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지 제도이지만 수당 수령 직전까지 가서 심장병이 도져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래도 다니엘 블레이크에게는 그를 도와주려는 싱글맘 케이티나 옆집 청년, 복지 상담사 등이 있다. 이에 비해 임시 계약직 어른장의 준말인 ‘임계장’의 주변에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임계장은 ‘고·다·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라고 해서 붙은 말이란다.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은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기업에서 38년간 정규직으로 일하다 60세에 퇴직한 베이비부머 세대이기도 하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사 년여 동안 네 곳의 일터를 전전하며 노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정년퇴직을 한 사람도 사무직은 아쉬운 부탁을 동반한 누군가의 천거가 있어야 가능했다. 설사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하더라도 곳곳에 ‘벽’이 쳐져 있었다. 상사는 ‘나이 잡수신 노인’을 어떻게 부려먹냐며 난감해하고 젊은이들은 대면하기 어려운, 껄끄러운 존재로 인식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원죄에 가까운 것”이라는 저자의 독백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거절하기 어려운 분의 부탁으로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의 ‘완강한 거부’를 본능적으로 느낀 저자는  새 직장을 단념하게된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의 행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시밭길이다.        


정년퇴직한 노인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는 최저임금을 주는 그것도 단기 비정규직에 한했다.  

“급여는 상담 후 결정”이라는 적힌 곳은 최저임금 이하의 봉급을 준다는 의미였고, 단순 노무직은 “근골격이 좋으신 분”을 요구했다. 퇴임 후 저자는 버스 회사 임계장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이 일은 배차 업무만이 아닌 하루 400건이 넘는 탁송 업무까지 해야 했다. 


“40도를 넘나드는 한여름 오후에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땀이 안경알을 가려 앞을 볼 수 없을 지경”일 정도로 강도 높은 일을 했다. 일만 힘든 게 아니었다. 공무상 드는 비용은 회사 비용으로 처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개인이 처리해야 했다. 임계장 그들은 “회사의 보급이 전혀 없는 병사들”처럼 일해야만 했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임계장 이야기』, 39쪽     


하루 종일 수하물을 싣는 일은 투수가 9회를 완투하고 다음날 다시 9회를 또 던지는 것처럼 날마다 9회를 완투하는 나날로 이어졌다. 화물칸 뚜껑에 부상을 입게 되어 회사에 무급 휴가를 달라고 했을 때 회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며 바로 해고 통지를 했다. 저자는 말한다. “산재를 입은 직원을 치료해 주는 것은 그들이 알아야 하는 세상 물정이었다. 그들을 세상 물정이라는 말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들었다”라고.     


읽으면서 울컥하는 대목들이 많았다. 벌이가 없는 가운데 빚이란 무서운 것이기에 


“치열하게 살다 보면 병도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 믿기”로 

하고 다시 아파트 경비원과 빌딩 경비원을 겸업하며 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살아낸다.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음식물 잔반통을 씻고 있을 때 놀러 가는 차림새의 부자가 지나가다 멈춰 선 아이가 “경비 아저씨 힘들겠다” 하니  “너도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는 말에 망연자실한다. 

석면 가루 가득한 지하실에서 밥을 먹으며 생각한다. 지하실의 터줏대감인 고양이는 밥 먹는 내내 쳐다보고, 흘린 밥알에 개미 떼는 새카맣게 몰려든다. 처량한 생각에 “정말 공부를 안 해서 이렇게 된 것일까?라고 자조한다.      

경비원들의 노동 실태가 이렇게까지 열악할 줄은 몰랐다. 명찰을 차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주민이 있어 관리소에 명찰 얘기를 하니 이곳에서도 자비 부담하란다. 고용의 안정성도 보장 못하면서 업무에 들어가는 소모품 구입도 셀프로 하라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부 입주민들의 편견에 찬 갑질도 가관이었다. 정말로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경비원에게 아무 일이나 다 시켜도 되고 그 사람의 노동이 원래 나를 위해 봉사하는 업무라고 생각한다.”는 윤지영 변호사의 분석이 이를 반증한다.   

  

비정규직지원센터에 경비원들이 원한 세 가지가 눈물겹다. 

“몸을 씻을 수 있는 곳,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잠을 잘 수 있는 곳”   

더운 여름이면 샤워 시설이 없기에 공동 화장실에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고, 경비 초소 실내 온도가 너무 뜨거워 간이 텐트에서 야영하며 잠을 자야 했다. 하지만 경비원들이 힘을 합해 목소리를 냈을 때 돌아오는 건 해고였다.      

아들의 전문대학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빌딩 경비원까지 병행하지만 4년 여 시급 일터에서 네 차례 큰 부상을 당한다. 부상은 해고로 이어져 다른 임계장에게 인계되었다. 네 번째 직업은 터미널 요원이었는데 불볕더위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매연과 먼지 속에서 과로해 면역체계가 무너져버려 척추 감염까지 됐다. 

      

월급값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모습에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승객들에게 대답해 주기 위해 도시의 시내버스 노선을 모두 외우고 터미널 문화관에서 하는 공연 스케줄과 갤러리의 미술 전시회 내용도 숙지해 뒀다 알려주고, 주자장의 주차 요금표도 외우고 외국인들이 자주 물어오는 것을 러시아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정리해 익히고 했어도 퇴근하다 쓰러진 후에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해고, 그 두려운 해고였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코코넛과 상어 중에 뭐가 사람을 많이 죽일까?” 케이티의 아들 딜런에게 묻는다. 너무나 작은 집에 살아 ADHD처럼 산만해졌다는 딜런은 “코코넛이에요”라고 말한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코코넛이라고 불리는 복지 시스템이 오히려 다니엘 블레이크와 같은, 임계장과 같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경비원을 서비스 노동자로, 관리 서비스 노동자로 법적인 신분을 전환하지 않는 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경비원들은 경비업법에 따라 시설 경비와 감시를 주로 하는 감시직 근로자로 규정되어 있기에 근로기준법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너무 높이 매달린 코코넛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혜택을 받기에 복지시스템은 아주 높이 멀리에 있다. 저자 조정진이 “감시직 근로자에서 아파트 경비원을 제외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젊은이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지만 노인들은 그런 헛된 꿈을 꾸지 않는단다. 육체적 고단함도, 정신적 학대도 나이를 먹으니 견딜 수 있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임금 차이는 감내할 수 있었지만 시급 노동자에게 일상처럼 행해지는 정신적 ·육체적 학대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것에서 오히려 노동 르포로 읽힌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노동이 한낱 응석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생명이 위협받는 참혹한 여건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일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젠 덜 힘들다고 전한다.    

  

가장 마음이 아린 것은 가족에게 남기는 말이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노동 일지로 대신 써낸 내용을,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는 그의 말에 책장을 쉬이 덮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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