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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l 20. 2020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ㅡ<달콤한 인생>

우리는 언제 따귀 맞은 영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선우: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강 사장: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위의 장면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대사이다. 영화 속 인물인 선우(이병헌)는 호텔 매니저로 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조직 폭력배 보스 강 사장(김영철)의 오른팔이다. 강 사장의 크고 작은 일을 해주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절대 권력을 지닌 보스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우리와 종이 다른” 아이라고 칭한  젊은 애인 희수(신민아)이다. 희수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의심을 가진 강 사장은 자기가 없는 3일 동안 선우에게 그녀를 감시하라고 한다. 만일 사실이면 ‘처치하라고까지 명령하며 강 사장은 자신의 사랑관을 들먹인다.  

    

“내가 속고는 못 살잖냐. 속아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마”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평온한 일상이 지나는가 싶었는데 웬걸 미행 사흘째 희수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현장을 급습한다. 평소 냉정한 일 처리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그에게 온 한 순간의 망설임. 선우는 없었던 일로 하자고 “기회를 줄게”라는 말로 희수에게 제안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거 아니잖아요. 지워지는 거 아니잖아요.”라고 희수는 말한다.   

   

돌아온 보스는 희수에게 곧장 달려가는데 이미 희수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선우는 그녀에게 계속 연락을 한다. 보스와 함께 있는 희수는 전화를 받지 않고 보스는 희수의 심경 변화를 눈치챈다. 결국 강 사장은 선우를 제거하기로 손을 쓴다.     


도대체 뭐 때문에 흔들린 거냐, 그애 때문이냐?     


대답 대신 선우는 유리창에 비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보스의 여자를 사랑해 나락으로 떨어진 선우는 이후 조직 전체 상대로 전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엔딩 부분에서 총에 맞은 선우는 희수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는 손에서 떨어지고 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희수를 생각하며 웃는다. 나무는 흔들리고 희수의 음악을 듣는다. 죽음의 순간을 맞는 선우의 앞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때로 사랑은 한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 <달콤한 인생>에서처럼 보스가 느낀 모욕감으로 인해 선우의 생명이 위협당한다. 모욕감은 실제 선우의 죽음으로 상쇄된다.  좌절감이나 불안감, 분노 수치심 등과 같이 모욕감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마음이 상한 것을 책에서는 "영혼이 따귀 맞았다는 표현을 했는 데, 그 책이 바로 『따귀 맞은 영혼』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사회적 거부이든 정서적 거부이든 그것으로 인해 모욕감을 느끼는, 내상을 입은 아픈 영혼들의 상처에 대해 말을 한다. 저자는 “마음을 다친다는 것은 마음에 따귀를 맞는 것과 같다”라고 묘사한다. “이는 우리 얼굴 위로 떨어지는 주먹질,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깊은 아픔을 주는 일격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인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현재 뮌헨에서 심리치료사이자 수련 감독자로, 치료사 전문과정 교수로서 활동 중이다. 비난, 배척, 거절, 따돌림 또는 무시 같은 것들은 스스로의 “가치가 깎인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는 데서 치명적이다. 저자는 내담자들과의 심리치료 체험을 바탕으로 모욕감이란 단순히 욕설이나 비난 같은 적극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당연히 이해받을 것이라 기대했던 곳에서 자신의 기대만큼 사랑이나 인정, 협조를 받지 못하는 상태 역시 우리의 마음에 예리한 상처를 입힌다.     

 

각인된 상처는 개인의 건강한 자존감을 뒤흔든다. 흔들리고 망가지면서 발생하는 마음의 염증은 우리 마음의 면역 체계를 깨뜨린다. 어지럽고 혼란해진 면역체계는 현재에 일어나는 일상의 온갖 사건은 물론이고 과거에 있었던 일까지 소급해 전에 없던 강력한 힘으로 다가오게 한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공격적인 것 못지않게 마음의 상처를 낳는다. 이로 인한 우울한 정서는 겁에 질려 급기야는 상대에게 대항하기를 포기하고 지레 물러나서 숨을 곳만 찾게 한다.      


마음상함은 자기 자신을 온전하고 한결같은 존재로 경험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감정에 상처를 입힙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깊은 불안에 빠지게 되고, 무력감과 실망 · 고통 · 분노 · 경멸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상처 받은 마음은 상대로부터 완강히 돌아서서, 복수와 응보應報를 끊임없이 궁리합니다.    

- 『따귀 맞은 영혼』, 22쪽     


『따귀 맞은 영혼』의 저자 배르벨 바르데츠키가 상담할 때 이론적 토대로 삼고 있는 것은 '게슈탈트 심리학'이다. 게슈탈트 심리학 이론에서 이러한 현상을 체험의 '접촉 주기 장애'라는 용어로 규정짓는다. 외부로부터 자극이 왔을 때 인간은 그것을 자신에게 의미 있는 욕구(게슈탈트)로 형성하여 인식한다. 인식한 그 순간부터 자기 안의 에너지를 있는 대로 끌어모아 이 욕구를 해결하는 데 전력투구를 한다. 마침내 욕구가 채워지게 되면 있었던 게슈탈트는 해체되고 그 욕구는 인식 저 너머의 배경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 가지 체험이 완성된다.    

   

게슈탈트는 생성되고 해체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특히 자신의 힘으로 성취했을 때 자아는 만족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자신의 인성을 살찌우게 해서 앞으로 맞게 될 고난이나 괴로움과 같은 다른 변화에도 열린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가 게슈탈트의 생성-해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가 있다. 해결되지 않은 게슈탈트는 내면에서 떠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체증에 걸린 것처럼 자신의 체험을 소화해내지 못하게 된다. 점점 자기 자신과 유리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했듯이 “게슈탈트 심리 치료의 목표는 스스로 책임을 떠맡도록 돕는 것”이다. 내담자 스스로 ‘잃어버린’ 자신의 부분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숨어서 존재하던 감정이나 욕구, 능력 같은 잃어버린 부분과 만나도록 해준다. 그런데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인식하지 못하면 게슈탈트의 생성-해체 과정은 마무리될 수가  없게 된다.      


게슈탈트 심리 상담에 따른 치료의 초점은 내담자에게 이 '해결되지 못한' 욕구를 찾아내어 해소하도록 하는 데있다. 게슈탈트의 생성-해체 과정을 완결시키지 않은 채 이별을 과감하게 실행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참된 의미의 새 출발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접촉을 끊지 않으면서” 자신의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고백하고, 납득시키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접촉을 계속할 때 그것이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한다.      


마음상함에서 벗어나는 방법     


마음상함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자신의 감정과 직접 대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과거의 상처에 두려움 없이 대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시각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만 집중했던 시각에서 타인과 공감하고 이해하는 관점을 보일 때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을 열어놓음으로써 오히려 마음 상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럴 때 마음상함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스 강 사장이 자신의 감정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용기만 있었어도 선우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속아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젊은 여인을 향한, 다 늙은 남자의 말은 차라리 사랑을 구걸하는 절규로 들린다. 강사장은 속아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자신이 쏟은 만큼  자신을 향한 희수의 사랑에 확신이 없었다. 그런 강 사장에게 선우의 희수에 대한 사랑은 용인할 수 없는 모욕감을 주었다. 그랬기에 선우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바쳐야만 했다.    

  

우리는 언제 따귀 맞은 영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위엄의 손상’을 입어 선우를 죽여야만 했던 강 사장 이하 모욕감을 자주 느끼는 우리에게 『따귀 맞은 영혼』에 있는 표현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늙어가는 것은 겁쟁이들의 몫이 아니다”라고 베테 다비스 Bette Davis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현실을 마주하고 능동적으로 현실에 대처해갈 용기를 이뤄낼 때에만 우리는 우리가 당한 일, 우리에게 충격을 준 일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 마음상함이 우리의 삶에 독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습니다.   

-『따귀 맞은 영혼』,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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