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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ug 03. 2020

언니는 틈만 나면 가출을 했다

『따귀 맞은 영혼』,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의 알아차림

큰 언니는 평범하지 않았다. 평범한 우리 가족들하고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언니는 동네에서 야하기로 소문난 명자 언니랑 자주 어울려 다녔다. 우리 집 옥상 장독대까지 올라와 건너편 고물상 집 큰딸인 명자 언니랑 맥주 염색을 주야장천 했다. 둘이는 세숫대야에 맥주 한 병을 쏟아붓고 땡볕에 빗질을 해댔다. 가수가 되고 싶어 노랗게 물을 들이며 내일을 흥얼거렸다.    

   

바람으로 잔뜩 부푼 언니는 저녁이면 외출을 했다. 그 당시에 우리 동네에서 언니가 제일 예뻤다. 미장원에서 영부인처럼 포도 머리로 틀어 올리고 밍크코트를 입고 나설 때면 같이 놀던 친구들도 우리 언니한테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깡마르고 까무잡잡해 어릴 때부터 별명이 베트콩인 나하고는 전혀 다르게 언니는 피부도 뽀얗고 윤기가 흘러 광채가 날 정도였다. 언니가 집을 나서면 골목이 다 환했다.      


언니는 허파에 바깥바람이 잔뜩 들어차 있어서 그런지 집안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지를 못했다. 잠깐이라도 바깥나들이를 하고 와야만 직성이 풀렸다. 방랑벽이 있던 언니는 집안에 일껏 있다가도 김장할 때면 집을 나가 열흘이고 한 달이고 있다가 들어왔다. 예전에는 김장할 때 기본이 100포기에서 150포기를 할 정도로 많이 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판에 언니는 약을 올리기라도 한 듯 때맞춰 집을 나갔다. 우리 집은 자전거포를 하고 있어서 기사까지 있어 대가족이었다. 가족이 많다 보니 김장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언니는 가출을 했다.

      

그랬다가는 슬며시 돌아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내곤 했다. 언니는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는, 들어줄 수도 없는 요구를 줄기차게 했다. 배우가 될 거니까 배우 학원을 보내 달라, 가수가 될 거니까 가수학원을 보내 달라고 졸라댔다. 틈만 나면 일본으로 가고 싶다고도 했다. 거기 가면 쉽게 배우도 되고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배우 학원에서 말해줬다며 엄마를 들볶았다.     

  

일본은 무슨, 고지식한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이야기였다. 결국 조르다 못한 언니는 결단을 내렸다. 부모님이 잠든 사이에 집안에 있던 돈을 훔쳐서 명자 언니랑 함께 달아났다. 집안이 뒤집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명자 언니네 엄마랑 우리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동네가 시끄럽도록 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서로 당신들 딸은 얌전하고 착하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명자 고년이 우리 순둥이 착한 딸을 꼬드겼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고, 명자 언니네 엄마는 진즉부터 우리 언니가 발랑 까져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등 서로 물고 뜯고 상처 주는 말들을 했다.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은 지 몇 달 있다가 언니는 거지꼴로 돌아왔다. 일본에 간다던 언니는 일본에도 못 가고 방안에만 처박혀 있었다. 말수도 줄었고 가만히 있다가도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엄마랑 싸우기 시작했다. 이유는 몰랐지만 언니의 얼굴에는 분노와 체념이 서려 있었다. 처음부터 가수 학원 보내줬으면 부산까지 가지도 안 갔을 거라며 틈만 나면 악을 쓰고 엄마랑 싸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의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담배 피는 시간도 길어졌다.     

 

출처: https://pixabay.com/


언니와는 13살 차이가 날 정도로 나와 터울이 컸다. 다른 집 언니들 같았으면 어린 막내 동생을 잘 보살펴 줬을 만도 한데, 꿈이 좌절되어서인지 언니는 의욕도, 삶의 애착도 없었다. 부산 갔다 온 이후로도 좌충우돌 언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계속 일으켰다. 자신의 삶 자체도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던 언니였기에 동생들과 살갑게 지낸 기억이 별로 없었다. 언니가 돌아온 후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언니랑 싸우고 우는 엄마를 보며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을 했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심부름도 자청해서 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공부도 열심히 했다. 엄마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싫은 일도 자진해서, 아니 찾아서까지 했다. 과도할 정도로 열심히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했다.   

  

세월이 이만큼 흘렀는데도 너무 과할 정도로 열심히 살아낸다.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까지 살아야 하는데 라고 의구심을 보여도 어린 나이 때부터 붙은 열심 DNA가 아예 본드처럼 붙어버린 듯하다.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엄마에게 선물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셈이다.    

   




어떤 일을 잘했을 때, 예를 들어 말을 빨리 배운다거나 다른 아이들보다 그림을 잘 그렸을 때, 또는 학교에서 일들을 했을 때에만 아이를 칭찬하고 관심을 보인다면, 그 아이는 일을 뛰어나게 잘해서 부모를 기쁘게 해 주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래야 부모의 관심을 끌 수 있으니까요. 사실 이러한 관심은 별 특별한 성과가 없더라도 받을 수 있는 건데 말입니다. 어쨌든 이 경우에 아이가 자기 자신에 관해 체험하는 것이라고는, 나는 아무 가치도 없고 오로지 내가 이루어내는 일만이 중요하다는 것일 겁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며 인간으로서 서 자기를 특징짓는 건 무엇인지, 자기에게 어떤 개인적 가치가 있는지에 관한 생각들이 이 아이에게는 없습니다.      

-『따귀 맞은 영혼』, 48쪽     



엄마가 싫어하는 일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뜻하지 않게 미술반에서 활동하게 됐다. 미술 시간에 구성을 그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앞에 멈춰서는 느낌이 들었다. 올려다보니 미술 선생님께서 내 그림을 뚫어져라 보고 계셨다. 미술반에 들어오라고 해서 활동을 잠깐이나마 했다. 그것도 아주 잠깐. 미술반 전시회를 신세계 화랑에서까지 할 정도였는데, 그만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딸이 미술 하는 게 싫다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뒤도 안 보고 깨끗이 포기했다.    

  

볼프 Wolf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찬란한 겉모습 뒤에는 아무런 감정의 방어책도 없는, 절망한 아이가 있다. 남들의 인정을 갈망하고 자기의 참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기를 갈망하는 한 아이가.”      

-『따귀 맞은 영혼』, 49쪽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나중에는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무던히도 애쓰며 살아온 시간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하늘을 보며 문득 혼잣말을 한다. 엄마, 나 잘하고 있지. 이만하면 엄마 딸로서 괜찮지 하면서 말이다. 내 마음의 만족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에 흡족하도록 자기 검열을 하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출처: https://pixabay.com/




만족감은 사람의 내면에서 솟아납니다. 그러려면 우선, 자신과 세상에 대해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과 삶을 업신여길 이유가 저절로 없어집니다. 먼 미래에, 먼 목표점에 도달할 필요 없이, 지금 여기서 이미 그 성취감을 맛보았으니까요. 지금 내적인 충만감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마음상함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따귀 맞은 영혼』, 223쪽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성실하게 살아낼 수 있었고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따귀 맞은 영혼』의 서문에 따르면 “게슈탈트 심리 치료의 목표는 스스로 책임을 떠맡도록 돕는 것”이라고 한다. 게슈탈트 치료법은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전경과 배경, 알아차림, 지금 여기 있는 것처럼 다루기 등이 그것이다. 게슈탈트는 어느 한순간에 가장 중요한 욕구나 감정을 전경으로 떠올릴 때 형성된다. “개인이 어느 한순간 주로 인식하게 되는 욕구나 감정”이 전경 foreground이 되고, 나머지 관심 밖의 부분은 배경 background이 된다. 지금 여기 이 순간 나의 의식 전면에 떠오른 게슈탈트 알아차림이 중요하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의 내적인 동기와 만족감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된 요즘이다. 

나를 지배하던 전경을 알아차리고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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