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엄한 칼날 속에서도 나를 벼리게 하는 공부
종종 공부가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연장에 가서 때로는 다양한 책을 통해 사숙함으로써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다. 관심 있는 저자가 진행하는 독자와의 만남은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누가 초대한 것도 아닌데 철학자든 과학자든 예술가든 강연이 있다고 하면 초대장을 품에 지닌 것처럼 달려 나간다.
공부에 대한 애착은 십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조간신문을 보고 진주행 새벽 버스를 탔다. 재불 화가 이성자 씨의 창원 도립미술관 전시회에 가기 위해서였다.
"전쟁 통에 혼자 프랑스 간지 57년... 평생 그린 작품 고향에 바칩니다"
란 표제에 마음이 동해 창원 도립미술관까지 한걸음에 나선 것이다. 뜻하지 않게 이혼녀가 되어 전쟁 중에 홀로 프랑스에 갔기에 고독과 쓸쓸함으로 그림이 점철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림에는 삶에 대한 환희로 넘쳤다. 전체적으로 밝고 환상적인 분위기여서 평온한 느낌마저 갖게 했다.
불어와 의복 디자인을 배워 가면 혼자 살아도 밥벌이는 하겠다는 생각으로 프랑스로 간 거였는데 길을 바꾸게 됐단다. 인생은 복잡계로 이루어져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공부를 하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깨닫게 된다.
평일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관람객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서울서 새벽차를 탔다고 하니 담당 큐레이터가 깜짝 놀라며 배웅까지 해줬다. 급기야는 2층 사무실까지 뛰어 올라가 두툼한 도록까지 챙겨줬다.
지금도 훌륭한 강의 소식을 듣거나 읽고 싶었던 책을 보면 설레다 못해 가슴이 뛴다. 흥분 수치가 높아져 말의 속도마저 빨라진다.
강의 중독증에 걸린 중증 환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지식에 목말라한다. 책을 읽기 위해 때로는 강연장에 얼굴을 내밀기 위해 늘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닌다. 가방에는 언제나 책을 넣은 채로. 심지어 만리장성 갈 때도 배낭에 책을 넣어가서 가족한테 지청구를 들었다. 공부하길 즐긴다.
강연을 들으며 빼곡히 적고,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며, 글로 정리한다. 사회는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냉혹한 사회에서 어리바리했던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조금씩 공부가 쌓였기 때문이리라.
공부만큼 잔잔하고 오래가는 행복이 있을까 싶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공부는 읽고 본 것을 바탕으로 쓰는 행위가 포함된 것을 지칭한다.
공부하면 행복하다. 행복의 개념을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사전에 실려있다. 공부할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것이다. 물질적인 소유가 짧고 강렬하다면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동안은 평온하니 잔잔한 행복감으로 물든다. 마음 받이 맑지며 흐뭇한 만족감으로 여운 또한 길다.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공부를 한다. 끊임없이 읽고 보고 쓰는 행위를 반복한다.
양질의 독서를 한 후 글을 쓰는 동안 몰입의 상태에 빠져든다. 뮤즈의 여신이 오지 않아도 꾸역꾸역 쓰다 보면 한지에 물 스미듯 내적인 충만감으로 차오른다. 이러한 충만감은 일상의 공허함을 사그라들게 한다. 사실 반복되는 일상은 공허함의 연속이다. 탈출하고픈 지루함이다. 따분하고 싫증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공부만 한 것이 없다. 공부는 그날이 그날인 일상에 윤기를 더할 뿐만 아니라 작고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물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담소하는 즐거움, 정갈한 음식을 먹을 때의 기쁨, 한적한 오솔길을 걸을 때의 아늑함도 나를 살맛 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도 내게 있어선 공부할 때의 성취감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공부할 때만이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공부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살게해 준다. 평범한 나날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게 한다. 냉엄한 사회의 칼날 속에 나를 벼리게 한다. 아울러 내 마음 속에서 최선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다. 행복의 척도도 내 안에서 찾게 만든다. 결국 공부의 의미도 구도하듯이 나 자신에서 구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선조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던 '오래된 미래'라고 볼 수 있다.
책은 내가 옳고 따르는 신념이 틀리지 않았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의심할 바 없이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를테면 삶의 지표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자기에 대한 인정은 물론 스스로에 대한 명백한 확신을 갖게 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실제 가치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다. 묵묵히 맡은 일에 몰입하는 것이 나를 위대하게 한다."라고 하지 않던가.
공부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이 갖고 있는 내면의 북소리를 듣게 한다. 위엄이 있고 당당하게 걸어 나가게 한다. 행복의 기준을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사회적 성공을 넘어선 내면의 자유라 한다면 또 인격적 성숙이라 한다면 공부는 내면의 자유함은 물론 인적적으로 성숙함을 가져다준다.
잔잔한 호수의 물 주름을 발견하게 하는
공부, 너는 나를 자유케 하는 열정이다.
<<명문대 합격 글쓰기>>의 저자 진순희, 인사드립니다 ~~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