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순희 Sep 01. 2020

오징어 눈깔

먹물처럼 캄캄한 길도 헤매지 않고 이곳까지 걸어왔다

오징어 눈깔   

   

진순희         


      

어린 시절 여덟 식구 둘러앉아 먹던 마른오징어

몸통과 긴 다리는 아버지와 오빠, 남동생이 차지했다

성별에 따라 달라지던 밥상 

이 견고한 규칙에 

고등어의 몸통과 대가리도 분리되었다    

  

울릉도 여행길에 사 온 오징어 한 축

짭조름하니 두근거리는 냄새에

살그머니 다락으로 올라갔다  

   

어른들 집을 비운 틈으로

오징어 맛에 눈이 뒤집혀

여덟 마리를 몽땅 먹어치운 날

규칙에 금이 가고 

여덟 개의 눈알만 뒹굴었다

어머니가 벽장문을 열 때마다 

몰래 삼킨 비밀이 튀어나왔다   

  

오징어 몸통처럼 

중심이 되고 싶은 그 시절 

여자들은 모두 

맛없는 눈깔만 질겅거렸다    

 

그 수많은 눈을 삼킨 덕분에 

먹물처럼 캄캄한 길도

헤매지 않고 이곳까지 걸어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시가 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