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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도의 풍차

‘모딜리아니의 여자’처럼 매끈하게 뻗은 기다란 목이 문제였어요

by 진순희

백아도의 풍차


진순희



서해의 작은 섬

흰 상어의 이빨을 닮았다는 백아도에는

바람도 못 데려오는 풍차가 살아요


해변 따라

늘어선 풍력 발전기 네 자매

바람개비는 돌리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지요


긴 목에 세운 세 개의 날개로

바람을 데려오고 전기 불을 밝혔을 때

섬 주민들은 축제 분위기였지요


그 열띤 환호성도 잠시

‘모딜리아니의 여자’처럼

매끈하게 뻗은 기다란 목이 문제였어요


길게 드리운 실루엣으로

집열판에 그림자가 생겨서

네 자매의 목 20미터를 잘라 버렸다지요


키가 작아진 바람개비

결국 제구실을 못하고 퇴박맞은 채

눈칫밥만 축내고 있다네요


날갯짓은 물 건너간 지 오래

흰 상어 같은 이빨이라도 있다면

물고기라고 잡을 텐데


오가는 뱃사람들의 조롱거리나 되어

백아도 앞바다를 지키고 있어요.



풍차.PNG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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