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반에서 문예반에서 나름 학교에서 날리던 친구들이었다
걷기 예찬을 하자면 끝도 없다. 산을 좋아해서 남들은 등산 가냐고, 산에 오르냐고 하지만 산 조차도 천천히 명상하듯 걷는다.
집 가까운 우면산을 1년 정도 다니다가 조금 시간과 강도를 높여서 청계산으로 2년 정도 걸었다. 그러다 북한산으로 방향을 바꾼 건 순전히 북한산 가까이에 사는 우리 ‘가족’ 친구분의 강력한 의지로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거였다.
사람이 보지 않으면 소망을 품을 수 없다고 한다더니 그동안 청계산만 좋은 산일 줄 알았었다. 고즈넉하고 비올 때 가면 더욱 좋은 것이 청계산이다. 물론 거리 상으로도 가까우니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해물전에 막걸리 한 병 시켜놓고 휘영청 바라보던 청계산의 달은 생각만 해도 정겹다. 우리 ‘가족’은 아직도 청계산만 좋아한다. 오죽하면 거기에 주말농장까지 신청해서 다닐까.
정작 북한산 가는 것을 뜨악해했던 나만이 북한산에 매료되었다. 사람이고 물건이고 다 인연이 있다더니 산 초입부터 청량하니 느낌부터 달랐다. 산이라면 갖춰야 할 웅장함과 구석구석 오솔길이 숨어있었다.
경관의 관건은 바위에 부딪치는 흰 포말들이었다. 동해 바다도 아니면서 하얀 거품이 넘실대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삼천사 아래쪽으로 콸콸 쏟아지는 물이나 북한산 유원지를 지나 북한산 계곡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물은 어찌나 시원하던지. 바위틈에서 물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아 ~ 내가 찾던 산이 여기네 하면서 단번에 빠져버렸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책의 실린 글도 날카로웠지만 서문에 쓰인 수사법이 일품이었다.
“샘물이 높은 바위틈에서 흐느끼고, 햇빛이 푸른 손에 차갑기만 한”
시(詩) 속 산수의 풍경을 관악산과 도봉산에 오르면서 노르웨이 출신의 저자는 벅찬 감격을 느꼈다고 한다. 실제 북한산에 오르면서 바위틈에서 흐느끼는 샘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북한산은 혼자 가도 좋았다. 경복궁 역에 내려서 구기동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코스도 아기자기하니 예쁜 길이 많다. 구기 매표소 자리에서 사자능선으로 가면 히딩크도 다녀 갔다는 보현봉도 보이고 이승만 대통령을 태어나게 했다는 문수사도 갈 수가 있다. 절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대남문 중턱에 도달한다.
대남문 정상에서 왼쪽 비봉 능선으로 내려가다가 삼천사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쪽 길은 거의 나무들로 우거져 있어 아주 호젓하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삼천사로 가기 전에 물을 건너야 한다. 물 건너기 반대편에는 위험하다고 굵고 튼튼한 두 줄을 쳐놨다. 동아줄을 넘어 높다란 언덕바지에 정말 하늘에서 넓적 바위 하나를 쿵 내려놓은 듯한 마당바위가 나온다. 그곳에는 우리들만의 특별한 추억이 서려 있다.
화요일은 쉬는 날이어서 친구들이 내 시간에 맞춰줬다. 코스모스처럼 기다란 L과 구절초처럼 쓸쓸해 보이는 H와 자주 산엘 갔다. 미술을 잘했지만 큰딸이어서 미대 가는 것을 포기하고 오빠와 남동생을 뒷바라지 한 L은 항상 작은 스케치북만 한 줄 없는 공책을 갖고 다녔다. 마당 바위에서 반대편 산을 바라보거나 내려다보면서 드로잉을 오래도록 했다.
“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미대가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재능이 아깝다며 엄마 오라고 면담하자고 해도 계집애가 무슨 대학이냐며 끝내 우리 엄마는 학교에 가질 않았어.”
그 바위에만 오르면 L은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뱉으며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마찬가지로 글 잘 쓰는 H도 큰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들어가 남자 형제들 뒷바라지를 했다. H도 손바닥만 한 수첩을 갖고 와서 시를 쓰곤 했다. 대학에서 하는 문예 경시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시를 잘 쓴 H도 결국 꿈을 접어야 했다. 둘 다 미술반에서 문예반에서 나름 학교에서 날리던 친구들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면 마음속에 가둬놨던 슬픔들을 다 쏟아내고 내려왔다. 그렇게 화요일의 그대들은 한 주의 묵은 서러움들을 산에다 거침없이 토해내고 왔다. 그곳은 우리들만의 퀘렌시아다. 투우사와의 싸움 중에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곳이 퀘렌시아란다. 우리도 이 마당 바위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우리를 위한, 우리만의 피난처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지금은 그마저도 못하고 있다. 각자의 형편들이 달라져서 산을 못 가게 된 지도 몇 해나 됐다. 코로나 때문에 못 가게 되기도 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성격이 조금 달라져서 긴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진 탓도 크다. 비록 장시간 짬을 낼 수는 없어도 한두 시간씩 토막 시간을 낼 수 있기에 정처 없이 걷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가까운 한강 고수부지를 자주 가는데 잠원에서 반포로, 이어서 동작대교까지 간다. 동작대교 위의 구름카페로 올라간다. 문학동네에서 하는 서점에서 노을을 바라보거나 책 조금 뒤적거리다가 서둘러 일터로 돌아간다.
늑장 부리던 저녁 해가 서쪽에, 때 이른 낮달도 자그마한 몸짓으로 떠있는 하늘을 뒤로하고 걷는 길은 고요함으로 충만하다.
비록 산은 못 가더라도 짬짬이 걷고 있으니 좋아했던 것이 좋아하고 있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