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인연처럼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by 진순희

영화 <문라이트>는 배리 젠킨스 감독이 맥크레이니 작가가 쓴 글을 토대로 만들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서민 공동주택 단지에서 성장한 감독과 작가의 경험이 반영된 이야기다. 부모의 무관심과 또래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주인공 샤이론은 열 살이 되던 해 동네 마약상 후안을 만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캡처.PNG 출처: 네이버 영화



작가 맥크레이니는 어린 시절 아들처럼 돌봐 주었던 블루라는 마약 중개인 아저씨로부터 후안의 캐릭터를 차용했다고 말한다. 작가는 어느 주말 생부의 집에 다녀온 날 블루가 라이벌 마약상의 총에 죽었다는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듣게 된다. “그날부터 주의를 기울이자고 결심했어요. 내가 없으면 세계도 없다는 걸,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소중한 좋은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는 걸 알았습니다.”라고 토로한다. 정말 순식간에 소년 맥크레이니의 인생에서 블루 아저씨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좋은 인연도 끝까지 가는 게 아니라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산을 좋아해 틈만 나면 북한산에를 간다. 그날도 대남문까지 올라가 쉬고 있는 데 노인 한분이 강아지를 땅에 떨어뜨려놓고 말을 붙였다. 버스를 타려고 집을 나섰는데 웬 강아지 한 마리가 튀여나와 졸졸 따라오기에 그냥 안고 버스를 탔단다. 북한산에 올라 대동문에서 죽 거슬러 대남문까지 왔는데 저놈의 강아지 새끼가 탈진을 해서 움직이질 못한다고. 내 한 몸뚱이도 힘든데 쟤를 어떻게 안고 내려가냐며 버리고 가버렸다.



쓰러져 있는 강아지가 못내 신경이 쓰여 하산하는 다른 분한테 조금만 내려가시면 아래 등산 매장이 있으니 거기다 강아지를 맡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산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도중에서 내려와 등산 매장엘 들렀다. 꼬질꼬질한 강아지가 줄에 묶여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들에게 전화해 강아지 키울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흥분하며 키우겠다고 했다.



목욕을 시키고 나서 보니 축 늘어져서 곧 죽게 될 것만 같았다. 주말이라 동물병원이 다 놀고 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물에 설탕이랑 소금 조금 넣어 먹이면 탈진된 것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주말 내내 마음을 졸이다가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생후 백일도 안 된 어린 강아지란다. 새끼 강아지가 두 시간 내내 등산을 해서 탈진한 것 같다며 수액을 맞히고 우리 집에 와서 살게 됐다. 우리 가족은 어린 강아지가 초년부터 너무 고생을 했으니까 앞으론 행복만 하라고 ‘행복이’라고 강아지 이름을 지었다.


기쁨도 잠시 시골 출신의 우리 ‘가족’은 무슨 개00를 집안에서 키우냐고, 털은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대뜸 화부터 냈다. 이런 사람이 ‘행복이’ 바라기로 변한 사건이 있었다.

우리 가정은 두 아들도 새벽같이 학교 갔다 바로 학원 가면 11시나 돼야 들어오고 나도 일 때문에 오밤중이나 돼야 들어오는 패턴이었다. ‘가족’은 초저녁이면 퇴근을 하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 ‘가족’이 들어오면 행복이의 흥분 게이지는 갑자기 오르기 시작한다. 너무 반가워 거실에서 뛰어올랐다가 다시 안방 침대로 오르고 뛰어오르다 머리를 쿵하고 세게 다쳤다. 그 순간 행복이가 기절을 했다.



그 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남편이 떨리는 목소리로


“얘가 나를 반가워하며 뛰어오르다가 넘어져서 졸도를 했어.
졸도르을 ~~ 나를 기다렸다구 ”


그 뒤부터 우리 ‘가족’은 틈만 나면 강아지 간식인 육포를 사다 나르기 시작했다. 아이들 간식은 안 사도 행복이 간식은 꼭 챙겼다.



그날도 북한산을 갔다가 저녁 수업이 있어 얼른 내려왔다. 학원으로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가족’이 풀 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빨리 와 봐. 우리 산책하는 그 길로.”

“무슨 일인데요. 수업 중인데......”

“얼른 와 봐.”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모르는 남자 둘이랑 아들과 남편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웬일인가 싶어 다가갔더니 행복이가 눈을 뜬 채로 죽어있었다. 오줌 뉘러 데리고 나왔는데 줄이 느슨했다보다. 행복이가 급했던지 쌩하고 달려 나갔는데 마침 일방통행로로 잘못 들어온 차가 빨리 나가려고 과속을 했나 보다. 애를 안고 울고 있는데 행복이의 몸이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행복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북한산에 가서 만나 북한산에서 내려온 날 그렇게 갔다.



8년 여를 우리에게 행복을 주고 떠난 ‘행복이’의 흔적을 지우려 집안의 행복이와 관련된 물건은 싹 다 치웠다. 그래도 곳곳에서 행복이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포털 사이트에 비번이 틀릴 때 질문으로

'내가 가장 아끼는 것'에 '강아지 이름은’을 넣어둬 불쑥불쑥 만나게 된다.



“그날 내가 줄을 놓치지 않았어야 했는데, 줄을 꽉 잡고 있었어야 했는데.”


남편의 후회가 산처럼 쏟아졌다. 심약한 남편은 그 충격으로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얼마 안 있어 큰 병에 걸렸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함께 오래갈 거라는 인연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수 있음을 우리 집 업둥이 ‘행복이’를 통해서 알게 됐다.(사실 내가 선택해서 데려왔으니 업둥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인연이라는 것도 언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한계를 인식해 지금은 이 순간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그 상황에, 현재에 집중하게 됐다. 행복이가 우리에게 남긴 선물은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호라티우스의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처럼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기에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려고 한다.

행복했던 인연도 사라질 수 있기에.




캡처.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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