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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Sep 26. 2020

『팩트풀니스』에 대한 단상

우리는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들 힘들다고 하소연을 한다. 여행업을 하는 친구는 1월 코로나 이후로 잠정적인 실업이 아니라 아예 실업자가 됐다고 했다. 대형학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은 대낮부터 술에 젖어 산다. 과외하는 친구도 수업이 모두 끊겼다고 울상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강남의 고3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는데 하필 우리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초등부부터 중등부까지 모두 쉬고 있는 상태다. 엄마가 직장에 가야 해 아이를 그냥 집에 놔둘 수 없어 보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스톱이다. 



일을 갖고 있는 내 주변의 사람들도 이러다 큰일 나겠다. 희망이 없다. 이제 앞으로 뭘 해 먹고살아야 되냐며 고통스러워한다.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사람은, 살만하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지를 못했다. 

나 역시 타의적으로 정년이 앞당겨지는 건 아닌가 싶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우울지수가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던 찰나에  『팩트 풀니스』를 만났다. Factfulness는 ‘사실충실성’으로 번역되는 조어다. 미래로 갈수록 세상은 더욱더 부정적인 모습일 거란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 책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훨씬 괜찮다’는 주제를 갖고 논지를 펼친다. 




스웨덴 출신의 통계학자이자 의사인 저자 한스 로스링은 세계 보건기구에서 활동한 저명한 학자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을 깨기 위해 힘을 쏟는다.  



책에는 머리말과 연결해 3개의 문항으로 된 13문제가 나오는데 문제당 1점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성적은 2~3점 정도에 그치고 있다. 침팬지도 30%는 맞출 거라며 우리의 인식이 그만큼 몇십 년 전에 머물러 있고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통계학자답게 생활환경을 근거로 해서 만든 저자의 공이 느껴진다.



한스 로슬링은 우리의 극적인 본능 탓에 극단적인 세계관으로 세계를 이해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본능들로 사실과는 동떨어진 프레임으로 바라보기에 오류의 기반이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본능”     


“10가지 본능”을 거칠게나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간극 본능 The Gap Instinct :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두 가지 극으로 세계를 분리시키는 본능이 있다. 예를 들자면 ‘개도국’과 ‘선진국’의 구분인데 실제적으로 사람들이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곳에 사실은 인구 대다수가 존재한다.     

  

2. 부정 본능 The Negativity Instinct :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으로 부정적인 면이 훨씬 더 이슈가 된다는 것이다. 부정 본능을 억제하려면 나쁜 소식을 예상하라     


3. 직선 본능 The Straight Line Instinct: 많은 사람들은 인구가 ‘단지’ 증가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통계자료에 따르면 2030년 이후 인구는 정체한다고 한다. 직선 본능을 억제하려면 세상에는 다양한 곡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4. 공포 본능 The Fear Instinct:  공포와 위험은 다르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반드시 가장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공포 본능 탓에 그 위험성을 체계적으로 과대평가한다. 공포 본능을 억제하려면 위험성을 계산하라.     


5. 크기 본능 The Size Instinct: 사람들은 비율을 왜곡해 실제보다 사실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크기 본능은 세상의 발전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한다. 우리는 중국/인도가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이긴 하나 1인당 배출량으로 따져보면 친환경이라고 생각하는 북유럽 국가들이 훨씬 더 높은 배출량을 보유한다. 크기 본능을 억제하려면 비율을 고려하라.     




6. 일반화 본능 The Generalization Instinct: 사람은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그 범주가 오판을 불러올 수 있다. 일반화 본능을 억제하려면 내 범주에 의문을 제기하라.


7. 운명 본능 The Destiny Instinct: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으로 피할 수도 없고 빠져나올 수도 없기에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여긴다.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더딘 변화도 변화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8. 단일 관점 본능 The Single Perspective Instinct : 단일 관점 본능을 억제하려면 망치가 아닌 연장통을 준비하라.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봐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9. 비난 본능 The Blame Instinct :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것으로 어떤 심각한 사태가 잘못되었을 때 당사자 개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실은 시스템에 문제가 많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비난 본능을 억제하려면 희생양을 찾으려는 생각을 버려라.      


10. 다급 함 본능 The Urgency Instinct: 위험이 임박했다고 느낄 때 즉각 행동하고 싶게 만든다. 다급히 결정해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다급함 본능을 억제하려면 하나씩 차근차근 행동하라.     



 


10가지 본능 중에 생존의 존폐마저 걸려 있는 지금 내게 크게 와 닿았던 것은 공포 본능이었다. 이러다 정말 일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저런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책에서 제시한 공포 본능을 해결하기 위한 대처방안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어 위안이 됐다. 이제는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거창한 진실과 큰 그림은 그 위험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 후에는 다시 과감하게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뇌를 식히고 수치를 비교하면서 우리 자원이 미래의 고통을 멈추는 데 효과적으로 쓰이는지 점검해야 한다.

『팩트 풀니스』, p. 158    



사회적 공감력이 부족한 일부 몇몇의 사람들로 인해 코로나 2.5단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니, 확진 판정을 받았으면 조용히 칩거하며 있었어야지, 게다가 이동 동선과 접촉자까지 숨긴 건 뭐람 하면서 비난 본능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확진자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는 상황도 사실은 개인의 실책도 있지만 시스템 입력이 늦어진 결과로 인한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난 본능에 빠져 있으면 진실을 찾아내는 능력과 사실에 근거해 현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방해한다.  비난 대상에 집착하느라 정말 주목해야 할 곳에 주목하지 못한다. 또 면상을 갈겨주겠다고 한번 마음먹으면 다른 해명을 찾으려 하지 않는 탓에 배울 것을 배우지 못한다.

『팩트 풀니스』, p. 295  



상황이 어려울수록 나이를 들어갈수록 사실을 근거로 현상을 파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내 생각만 고집해 더 이상 새로운 걸 수용하고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팩트 풀니스”, 사실에 충실한 뉴 러너가 되어 그간의 갖고 있던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정해보려는 자세를 갖겠다는 결심을 했다.     

   


책을 쓴 한스 로슬링이란 사람에게 한없는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2개월의 시한부 삶을 살면서 써 내려간 그의 치열하고 숭고한 삶이 느껴져 읽고 나서도  책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했다.

더 나아지고 있다는 세상을 보여주기 의한 저자의 열정에 갈채를 보낸다. 





https://www.ted.com/talks/hans_rosling_the_best_stats_you_ve_ever_seen?language=ko






https://www.youtube.com/watch?v=To8QEKmmmog&ab_channel=TED%26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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