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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를 건너는 여자

사계절 돌아온 홍매가 충혈된 눈을 떴다 오늘도 어머니는 두부처럼 앉아 계

by 진순희

두부를 건너는 여자


이영식



피랍 365일째

어머니는 두부처럼 앉아계시다

요란했던 구급차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된

격리,

머리맡 수북이 쌓인 약봉지 펼치듯

사계절 돌아온 홍매가 충혈된 눈을 떴다

오늘도 어머니는 두부처럼 앉아계시다

세상 건너는 법 알려 주마는 듯

두부처럼 소리 없이 웃으며 고요하시다

반복의 틀에서 찍어지는 하루

5인실 병상 커튼과 링거 병에 둘러싸인

두부는 생각도 하얘지고 있다


내가 파먹고 버린 두부

내가 속을 썩여서 식용도 못 되는 두부

노인 병원 철제 침대 모판에 갇혔다

두부는 무엇을 도모하지 않는다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오늘도 어머니는 끝물 두부처럼 앉아계시다

두부를 건너고 있는 저 가슴속


연분홍 치마 휘날리는 처녀가 남아있는지

‘봄날이 간다’를 불러 달라 신다

백발 나날이 흑발로 갈아입고

텅 비었던 잇몸에 다시 이빨이 솟는다

식어버린 순두부 같은 계절이다


입술에 붙었던 이름 하나 둘 떼어놓으며

오늘도 두부는 파킨슨 씨와 놀고 있다

내, 어머니를 건너가고 있다






캡처.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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