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제 앞가림 잘하는 아들에게 불행은 예기치 않게 왔다. 어미가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나서서 그런지 두 아이 모두 때이르게 철이 들어버렸다. 순등순등한 데다가 자기 앞가림을 잘해서 취업도 어렵지 않게 했다. 그런데 취직한 회사의 퇴근이 너무 늦은 게 흠이었다. 대기업이라지만 퇴근이 들쭉날쭉했다.
그러던 어느날 외국계 기업에서 스카웃 제의가 오자 그냥 단숨에 계약을 해버렸다. 집에서 20분 이내의 거리인데다 6시 퇴근이라는 말에 홀렸던 듯 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일하고 싶어 했던 아들은 회사도 가까운데다 퇴근 시간이 보장되는 조건에 혹했다. 평소 신중한 성격의 아들답지 않게 억대 연봉을 받고 외국계 기업에 스카우트됐다는 소문만 무성하게 남긴 채, 이직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 이직이 화근이었다.
남편은 아들이 첫 직장으로 대기업에 다니자 너무나 신나했다. 남편 세대의 남자들은, 특유의 그 회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그러했기에 유난히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아들이 다니는 회사를 틈만 나면 입에 올릴 정도로 뿌듯해 하던 회사였다.
아들은 좀더 생각해보라는 아빠의 만류도 뿌리치고 강행을 했다.
이직한 지 얼만 안 돼 계속 지사장이 이상하다고, 이해할 수 없다며 볼멘 소리를 했다.
“미국 유학을 했다는 사람이 영어도 못하고 쫌 그래요.” 하면서 미심쩍어 했다.
일 하는 방식이 투명하지 않다고도 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회사의 수장이니 뜻을 잘 받들고 회사생활 잘 하라며 다독였다. 딱히 도와줄 것이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서야 계약할 때 만난 사장의 느낌이 너무도 안 좋았다고, 그때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날벼락같은 해고 통지서를 받고 나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노동청에 이의 신청을 하고 서류를 준비하던 나날이었다. 벌건 대낮에 해고 통지서를 받은 아들이 얼마나 황망해 할까 하면서 길을 걸으며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기도를 했다.
아들 앞에서는
"그 회사는 인재를 보는 눈도 더럽게도 없지. 오히려 잘됐어. 그런 사람하고는 일을 안 하는 게 백번 낫지, 나아!"
하면서 태연한 척했다.
말하는 거와는 달리 내 몸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히말라야 고지에 올라간 듯 귀가 먹먹했다. 복숭아 씨 같이 딱딱한 것이 중간에 걸린듯 했다.
아들 앞에서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지만 내 아들에게 닥친 예기치 못한 불운으로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서너 시간도 잠 못 이루는 나날이 이어졌다. 입맛도 없는데다 조금만 먹어도 얹혀서 까스활명수를 달고 살던 그 어느 날이었다.
얼굴의 근육이 뻣뻣해 지는 것 같았다. 이빨이 묵직하더니 양쪽 어금니의 느낌이 이상했다. 묵지그레한 윗어금니에 혀를 대었더니 뭔가 밀리는 듯했다. 혀에 힘을 조금 줬더니 이빨이 쭈욱 밀려났다. 아들이 해고통지서를 받은 지 한 달만이었다.
무서우셨구나!
깜짝 놀라서 치과를 갔더니 스트레스가 많았나보네요. 이가 간신히 붙어있어요. 발치하고 임플란트 해야 한다고 했다. 임플란트라구! 전혀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양쪽 어금니 모두 안 좋은데, 상태가 심한 오른쪽부터 하자고 했다. 잇몸뼈가 부족하다며 뼈이식 수술도 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치아를 제거하고 골이식 수술을 하러 갔다. 임플란트 시술이 아프지도 않고 쉬운 거라고들 했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도 있어서 가족들이 오겠다는 것을 극구 말리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한겨울에 혼자서 갔다.
출처: Pixbay
내 차례가 되어 마취를 하려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병원 천장이 위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듯했다.
잘못 봤나 싶어 똑바로 봤다. 올려다 본 천장이 아까보다 좀더 빠르게 나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 넓디넓은 천장 전체가 내려오면서 나를 호떡 누르개로 꾸욱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소리가 쿵쾅거리면서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양손이 덜덜 떨리면서 몸이 흔들렸다. 순간 공포심이 밀려왔다. 숨도 못 쉬면서 헐떡거렸다. 너무나 무서웠다. 목구멍 저 어래에서 불규칙하게 짐승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취를 하려던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당황하며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하며 놀래서 물었다.
철부지 어린 아이처럼 “너무 무서워요. 무서워요. 죽을 것만 같아요.”하면서 온몸을 떨면서 흐느껴 울었다.
그때였다. 우리 아들 반절도 안 먹어 보이는 간호사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대학 병원에 저런 어린 간호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솜털이 뽀송뽀송하니 상큼한 얼굴이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내 앞으로 몸을 낮추더니 나를 감싸 안았다. 나를 안으면서 토닥이며 말을 했다.
출처: Pixbay
“무서우셨구나! 무서우셨어~~”
나를 안은 상태에서 천천히 내 팔을 쓰다듬었다.
"처음엔 누구나 다 무서워해요."
그래도 울음이 멈춰지질 않았다. 한 20여분을 그렇게 울었던 듯하다.
한참을 안고 있더니
“근데 마취할 때만 쬐끔 따끔하지, 견딜만 하세요.
부담되면 오늘 꼭 안 하셔도 돼요.” 하면서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며 나의 뜻을 묻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 싶어서 내가 먼저 뼈이식 수술을 하겠다고 나섰다.
수술을 끝낸 뒤 “그 봐요. 별 거 아니지요. 하나도 안 무섭지요?” 좀전의 상황이 어처구니 없었다는 듯이 의사선생님이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애들처럼 꺼이꺼이 운 것이 부끄러워서 얼른 도망치듯 나왔다.
남편한테는 뼈이식할 때 울었다는 말은 한 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어땠냐고 묻는 남편한테
“그거 별거 아니던데요. 금방 끝나더라구요.” 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수 개월 후 임플란트 하러 가면서 걱정부터 앞섰다. 그 간호사를 만나면 창피해서 어쩌지 하는 마음 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른 환자를 보살피고 있어서 그 간호사와는 마주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