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을 보았다

기록은 뼈에 새기고 마음에 새기게 해서 나태한 습관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by 진순희


간헐적 단식 6일째다.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는 것 외에는 뭐 하나 진득하니 길게 하는 게 없었다. 그런데 간헐적 단식은 6일째 성공 중이다.

이름하여 ‘간단’이다.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로 ‘간단하게 살자’라는 캐치프래이즈를 표방한 간단 5기에 합류해 현재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간헐적 단식은 아주 핫한 데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하고 있는 다이어트 중의 하나다.

일정 기간 공복을 유지하는 식사법으로 연예인들의 성공담이 우리를 혹하게 했다.

간헐적 단식의 비밀 병기는 공복 시간과 관련이 있다. 위가 비는 시간이 길어지면 포도당이 제 역할을 다해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한단다. 게다가 공복이어서 소화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으니 단식 기간 동안은 몸이 자정 작용을 한다. 이때 몸의 대청소가 들어간다. 당연히 지방은 줄게 하고 체중도 감량하게 만든다.


예전에 걷기를 하며 만난 어떤 분은 요즘 간헐적 다이어트한다며 ‘간단’에 대한 예찬론을 걷는 내내 풀어놨다. 체중도 많이 줄고 피부에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며 사이비 교도가 간증하듯 열변을 토했다.

몇 달 뒤에 다시 보니 원래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니 민망했는지 고백을 했다. 밤마다 마시는 맥주 때문에 급격히 살이 쪘다며, 요요가 다시 왔노라고 했다.



출처: Pixbabay



나는 사실은 말만 다이어트해야지 하면서 그동안은 입으로만 하는 다이어트를 해왔다. 말로만이지 실천은 전혀 안 한다. 아니할 의지가 없다. 신체기관 중에 입이 제일 크다는 데 입으로 벌어 먹고사는 나는 힘든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무의식의 저변에 깔려 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몸에 좋은 것 먹어야 돼!
몸에 좋은 거 뭐 없을까 하며 촉을 세우며 살아왔다.


이러던 내가 이번에 ‘간단’ 커뮤니티에 들어간 것이다.

완전한 실행을 위해 체중을 공개했다.
단식 시간은 19:00~09:00까지 14시간으로 하고
매일 만 보 걷기, 한 달 동안 3kg 감량을 목표로 하고
먹은 음식을 구글 폼에 보내기로 선언을 했다.


매일 먹은 것을 빠짐없이 기록해서 올리는 것에 방점이 있다.『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모닝 페이퍼를 쓰고 있는 데 단연 간헐적 단식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게 된다.


오늘 쓴 구글 폼에 보낸 3줄 간단 일기이다.



조금씩이나마 변화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마치 간헐적 단식을 오래전부터 해왔던 사람처럼 야식에 대한 흥미가 사그라들어버렸다. 그동안의 습관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 그동안의 인연들도 어느 순간 퇴색돼 버리는 건 아닐까.
우리의 추억도 기억조차도 희미해지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공상까지 하고 있다.


출처: Pixabay



다이어트 일기를 쓰며 뜬금없이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데도 말이다.

아마 아이히만의 사유 없는 ‘성실성’이 생각났나 보다. 맞다, 그 아이히만이었다.

오래전에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600만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처형하게 했던 아이히만은 효성스러운 아들로, 자상한 남편으로, 자애로운 아빠로 살았단다. 히틀러의 지시에 성실하게 따랐을 뿐이라는 아이히만은 아마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으면 자신이 괴로웠을 거라며 또박또박 말을 한다.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을 참관했던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하며 '사유 없는 무지도 악이'라고 말한다.


정말 오랜 기간 밤늦도록 야식 먹는 습관에 배어 있었다. 밤늦게 퇴근해선 낮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리추얼처럼 계속해 온 일이 있다. 바로 혼자만의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넷플릭스 시청은 화석처럼 견고한 나만의 리추얼이었다.


넷플릭스를 보며 기네스 흑맥주 마시며 영화에 심취한다. 쇠가 닿는 것이 싫어서 흑맥주 마실 때만 쓰는 컵이 따로 있을 정도다. 수입 맥주를 사면 펍에서나 마실 수 있을 법하게 만든 유리로 된 컵이 사은품으로 들어있었다. 포르투갈에서 만든 거였는데 작은 항아리 모양으로 한 손에 쏙 들어가는 형태였다.


진갈색 거품의 흑맥주를 유리잔에 따르고 찰랑거리는 액체를 아주 천천히 음미하면서 영화를 본다. 오늘까지 만이라고 다짐을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저격하는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에 매번 무릎을 꿇는다.

넥플릭스는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순희 님을 위한 취향 저격 콘텐츠”하면서 어제와 비슷한 유형의 영화를 들이민다.


낮에 열심히 일한 당신! 충분히 쉴 자격이 있지~~

암~ 당연히 있고 말고~ 하면서 참 쉬운 여자인 나는 0.2초 정도의 잠깐동안 망설이는 척을 한다. 맥주 한 모금을 입술에 적시며 이내 손은 재빠르게 클릭을 한다.


이렇게 길들이기 쉬운 내가 넷플릭스와 기네스를 딱 끊었다. 그것도 끊은 지 6일 됐다. 얼마나 길게 갈지 모르겠으나 정말로 넷플릭스 생각이 눈곱 만치도 안 난다. 기네스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히만처럼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한, 미화해서 말한다면 성실성이 높은 나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간단방”에 선언한 대로 3kg 감량은 성공할 드하다. 이렇게 단식을 잘 지키고 있는, 말 잘 듣는 나를 고급지게 ‘자기 암시가 강한 사람’이라고 우기며 잘 따르고 있다.


출처: Pixabay


성공을 예견하는 이유는 한지에 물 스며들 듯 물들기 쉬운 여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록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매일 자신이 섭취한 것을 기록하는 행위는 저절로 먹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했다. 기록은 뼈에 새기고 마음에 새기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 기록하는 행위는 그동안의 나태한 습관을 일순간에 망각하게 만들었다.


아이히만은 쓸데없이 말 잘 듣고 성실해서 인류에 많은 해악을 끼쳤다지만 이번 간헐적 단식을 정성스럽게 하는 건 다르다. 나의 성실함이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않기에 ‘간 단방’의 규칙을 성의껏 잘 따라 할 것이다.


체중도 줄이고 건강도 좋게 할 것임이 분명하기에 나태하게 하지 않으련다.

넷플리스와 특히 기네스 흑맥주가 아무리 유혹해도 내 절대 넘어가지 않으리.

요요가 올 자리도 결단코 만들지 않으리라.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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