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골목 앞에 늘어서 있는 의자들, 가지런한 좁은 골목 사이로 비추는 파란 하늘.
<밤의 테라스>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밤하늘이 파랗다.
고흐가 생전에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도 밤이지만 검정색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던 그 밤하늘이다.
검은색을 제외한 파란색과 보라색과 초록색을 사용해 밤하늘을 그리려 했다며 프랑스 남부 아를르에서의 삶을 묘사했다. 파란 밤하늘에는 흰 빛의 별들이 솜사탕처럼 굵직굵직하게 떠있고 카페의 건물은 짙은 라임색으로 했다. 노란색의 밝은 분위기가 고흐의 아를르에서의 행복했던 삶을 짐작하게 한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프라하의 체스키 크롬노프에서 만났던 에곤 실레 미술관이 생각났다.
<밤의 테라스>의 골목도 에곤 실레의 미술관 골목길과 비슷해 보였다. 단지 고흐의 골목이 환한 노란색이었다면 에곤 쉴레의 골목은 은빛의 골목길이었다.
아들이 체코에 가 있는 동안 한 번도 시간을 내지 못했다. 정작 아들이 있는 동안은 가보지 한 곳이었다. 한글 지원이 안 돼서 얕은 영어 실력으로, 아들한테 네가 그립다는 말을 연애편지 쓰듯 보내는 나날이었다.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동안 꼭 가보리라고 체코와 관련된 자료들은 다 찾아서 보고 읽고 모으고 했다. 구시가지부터 신시가지까지 싹 다 훑고 영상자료들은 개인이 만든 것까지 샅샅이 봤다. 아들이 있는 곳과 관련된 것은 뭐든지 빠뜨리지 않고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느라고 바빠서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가보질 못했다.
그러다 남편 모임에서 부부 동반으로 동유럽 여행을 가게 됐다. 여행 계획을 세우며 기필코 에곤 실레는 보고 오리라 다짐했다. 가이드가 센스 있게 버스 이동 중에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틀어줬다. 일정 내내 프라하에 흠뻑 취하게 만들어놓곤 잔잔한 체스키 크롬노프 마을에 우리를 떨궈놨다. 체스키 크롬노프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중세 유럽의 마을을 쉽게 만날 수 있을 만큼 아기자기했다. 마을의 크기도 용산구만 해서 하루면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보다도 체스키 크롬노프가 특별했던 것은 그곳에 내 사랑 에곤 실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부터 에곤 실레의 독특한 그림인 <구부린 무릎으로 앉은 여자> 푹 빠져 있었던 나는 그를 만나겠다는 일념 하에 짧은 영어 실력으로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 좁은 골목길에 에곤 실레 미술관이 있었다. 저녁 무렵에 만난, 골목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는 미술관이 아주 정겨웠다. 2층은 에곤 실레에 관한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작은 TV에 그냥 틀어놨다. 영상으로 만난 에곤 실레는 언뜻 보기에 카프카와 분위기가 많이 비슷했다.
여기 이곳, 스페인 독감으로 28살에 생을 마감한 에곤 실레를 만나러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을까? 고등학교 때 일이었다. 미술에 재능은 없었지만 그 분위기를 좋아해서 미술반에서 활동을 했었다. 그 시절의 우리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미술대전에 특선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있으셨다. 많이 봐야 잘 그릴 수 있다고 해서 미술 선생님은 계속 좋은 그림들을 우리들에게 던져줬다. 그림을 본 후에는 귀찮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말해보게 했다.
그때 보여줬던 그림 중에서 피카소 보다도 에곤 실레의 <구부린 무릎으로 앉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진초록의 스미즈 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무릎을 구부리며 빤히 쳐다보고 있는 눈에 멈춰졌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 에곤 실레의 처제라는 데 저 사람은 무슨 까닭으로 저런 차림으로 포즈를 취했을까? 하는 상상으로 머리를 채웠던 듯하다.
사실 우리들의 관심은 그림보다 에곤 실레의 드라마틱한 삶의 이야기에 관심이 더 많았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때 그런 식으로 수업을 받았던 것이 아주 앞선 교육을 받은, 제대로 된 문화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에서 추억에 잠기다 1층 기념품 매장으로 내려왔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 그려 있는 검은색 티셔츠 하나를 사서 남편에게 건넸다. 웬일로 미술관에 딸린 화장실로 가더니 그 자리에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냉큼 갈아 입었다. 나도 여행가면 항상 구입하는 마그넷 몇 개를 샀다. <구부린 무릎으로 앉은 여자>와 체스키 크롬노프 전경이 담긴 것과 천문 시계와 성당이랑 성이 있는 것 등을 챙겼다.
저녁 무렵의 미술관 앞마당은 고흐의 <밤의 테라스> 나오는 골목과 사뭇 비슷했다. 미술관 바로 앞에 테이블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술관 바로 건너편에 카페가 있었다. 카페의 앞마당이 미술관과 마주 보고 있어 마치 에곤 실레의 앞마당처럼 연결되어 있는 모양새였다. 그럴 정도로 작은 골목 안에 터를 잡고 있었다.
에곤 실레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혀 분위기 좋은 카페 의자에 남편을 앉히고 사진도 찍었다. 아주 고즈넉해서 그런지 한참을 거기에 앉아 있었다. 마치 일어서는 것을 잊어버린것 처럼 시간을 보냈다.
고흐의 <밤의 테라스>에서 밤하늘의 별이 뜨기를
체스키 크롬노프의 에곤 쉴레 미술관 앞 카페의 골목길에서
그렇게, 그렇게 한참을 우리는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