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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Dec 02. 2020

과거에 덜미 잡히지 않도록  “앞쪽으로 튀어”

기분이 좋도록 조절하고 칭찬하며 “최고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가을바람이 아니 겨울로 가는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런 날이면 불안하고 우울하다. 땅 밑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때도,

가슴을 시리게 하는 바람이 있었다.


반대하는 결혼을 억지 부려서 기어이 관철시켰다. 봄이 오기 전인 2월 말경에 했는데 몇 달 살지 않아 바로 추석이 왔다. 속없이 웃기만 잘하는 남편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주변 언저리에서만 맴돌았다. 세상살이에도 알맹이가 되지 못했다.



추석 전날까지도 수금을 한다고 쏘다녔지만 불발이었다. 친구한테 어렵사리 돈 몇 푼 빌려서 가는 친정길은 발걸음이 무겁고도 멀기만 했다. 옷도 얇게 입은 데다 마음까지 시려서 그런지 한기마저 들 정도였다.



친정에 도착하던 그날, 위아래를 훑어보던 친정 식구들의 눈빛이 아직도 서늘하게 내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다.

이 사람이랑 결혼 못하면 죽을 거라고 수면제까지 털어놓고  난리 치며 한 결혼 생활이 초라하다 못해 남루하게 보였나 보다. 입덧까지 심해서 죽을 지경이었는데도, 안쓰러워하기보다는 사는 게 그 모양이냐는 듯이 친정 엄마는 말없이 혀만 차다 고개를 돌렸다. 막내딸로 곱게 자란 친정엄마다운 행동이었다.

주춤거리는 나와는 달리 눈치 없는 남편은 갈비에 잡채가 차려진 음식을 보자 코를 박고 먹기에 바빴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는데도 몸이 좋지 않거나 하면 영락없이 친정 문을 들어서던 그날의 꿈을 꾼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윤택해지고 안정이 됐는데도 가을로 넘어가는 바람이 불 때면 늘 불안하고 쓸쓸하다. 지구 상에 나홀로 똑 떨어져 있는 듯이 막막하고 외롭다. 헛헛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한강 고수부지를 2만 보쯤 하염없이 걷다 오면 그나마 휑한 구멍이 메워진다.     

 

출처: Pixabay



이런 불안은 나만 오는 게 아닌가 보다.

『힐빌리의 노래』 의 저자 J.D 밴스도 힐빌리 출신으로는 드물게 대단한 성공을 했다. 하지만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엄마와 같은 힐빌리의 심성이 발현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힐빌리 Hillbilly ’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 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백인 쓰레기라는 뜻의 ‘화이트 트래시’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레드넥’이라는 더 모욕적인 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햇볕에 그을려 목이 빨갛다는 데서 유래됐다. 교육 수준이 아주 낮고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미국의 시골 백인을 가리킨다. (책 『힐빌리의 노래』에서 인용)      


    

러스트 벨트 지역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출처: 조선 BIZ


미국의 중서부 지역인 이곳은 오대호 인근의 과거 제조업 공업 지대이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일리노이, 인디에나, 아이오와, 웨스트버지니아, 업스테이트 뉴욕 등이 포함되어 있는 이 지역은 과거 제조업의 호황기 때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었다.      



1940년대 암코 Armco는 J.D 밴스의 할아버지처럼 학력이 달리는 오하이오주 미들타운 사람들을 수천 명씩 고용했다. 이들에게 상당 부분 돈을 벌게 해 줄 만큼 제조업이 번성하던 시기였다. 1960년대 이후 제조업 관련 규제들로 인해 경쟁력이 서서히 약화되면서 신흥국인 일본과 한국 등의 미국 시장 진출로 미국 전역의 제조업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러스트 벨트 지역의 타격이 컸다. J.D 밴스가 성장한 오하이오주의 미들타운도 이곳에 속했다.     

  


현재는 경제 구조의 변화로 가장 뒤처진 곳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까닭에 제조업을 되살려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자의 구호는 이 지역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는 러스트 벨트 지역을 집중 공략하여 2016년 백악관의 주인 자리를 거머쥐었다.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힐빌리의 노래』가 잘 설명하고 있어 베스트셀러가 됐다. J.D 밴스는 작가로서의 성공은 물론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힐빌리로서 예일대학교 로스쿨 출신으로 실리콘벨리의 잘 나가는 젊은 사업가다. 그런 그도 과거에 발목 잡힐 까 봐 불안해한다.  


         


어느 구름에 비가 들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힐빌리의 노래』는 영화 <힐빌리의 노래>로도 만들어졌는데, 주인공이자 저자인 J.D 밴스의  회고록이 바탕이 됐다.

밴스의 엄마 베브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400명 중의 차석을 할 정도로 영특한 여성이었다. 18살에 아이를 낳는 바람에 그녀의 앞길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에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되고, 매번 애인을 바꿔가며 삶을 엉망으로 만든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아들인 J.D. 밴스에게도 폭력을 휘두른다.          



 J.D. 밴스가 고백하듯이

“이들 가운데 누구라도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엉망이 됐을 것이다”라고 고백하듯이 그의 주변에는 따뜻함과 상냥함을 갖춘 이들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혹은 자발적인 선택이었어도 그 선택은 그의 인생에 서광을 비춰줄 만남이 되었다.   


   

밴스는 애인을 자주 갈아치우는 엄마로 인해 매번 아빠 후보자와 같이 사는 것을 거부하고 조부모와 같이 살기로 했다. 부모보다는 할바 Papaw 할마 Mamaw를 선택해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성장했다. 그 집안 처음으로 대학, 그것도 명문대학인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것은 물론이고 그 지역 사람이 차마 꿈꿀 수 없는 직업을 갖게 됐다.


       

J.D. 밴스가 소개하는 통계에 따르면 러스트 벨트 지역의 아이들은 운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는 정도다. 그보다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 비참한 미래를 앞둔 아이들 중 하나였던 J.D. 밴스는 엄마 대신 교육에 열성적인 할마를 선택한다. 그 선택의 결과로 할바의 정서적 안정 속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할모가 J.D. 밴스에게 가르쳐준 신학은 비록 단순했지만 교훈은 분명했다. 그가 건전한 사람으로서의 성장하도록 도왔다.



인생을 만만하게 산다는 건 신이 허락한 재능을 낭비하는 것이므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기독교인의 의무를 다하려면 가족을 잘 보살펴야 했다. 꼭 엄마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용서를 실천해야 했다. 신은 모든 계획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는 결코 절망할 필요가 없었다.   

- 『힐빌리의 노래』, 152쪽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와 마이애미대학교에 모두 합격할 걸 알았지만 진학 대신 해병대에 입대를 했다.

제대군인 원호법의 혜택을 받아 재정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미들타운의 ‘학습된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상상도 못 할 수준의 빈곤에 시달리는 라틴계 이주자나 흑인 집단 보다도 힐빌리와 같은 백인 노동 계층이 염세적이고 비관적이라는 설문조사도 있다.

J.D 밴스는 군에 있으면서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미들타운에서 아이비리그 졸업생을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건 유전적인 문제나 기질적 결함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게 된다.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며 살아왔다는 사실 또한 인지한다. 이런 백인 노동 계층의 사람들에게 변화시키고 싶은 것으로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을 꼽는 이유이다.

 


예일대에 합격해 지금의 아내인 우샤를 만나고 학부도 예일 출신인 그녀의 도움으로 낯선 세상인 예일에 적응해 나갔다. 편집 위원이라는 저널 경력이 취업에 유리한지 아닌지 갈팡질팡하는 그에게 저널의 역할을 정확하게 알려준 에이미 추아 교수가 곁에 있었다. J.D 밴스는 우리에게 타이거 맘으로 알려진 에이미 추아 교수의 100만 달러짜리 조언을 얻는다.    


  

“판사나 교수가 될 거라면 편집위원 경력이 유용해요. 그게 아니면 시간 낭비일 뿐이고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겠다면 일단 도전해보세요.‘  

   - 『힐빌리의 노래』, 349쪽     



이 조언 덕분에 도전을 해서 정보 격차를 해소할 수 있었고 그 뒤로도 에이미 추아 교수로 인해 사회적 자본의 덕을 많이 봤다. 그 결과 약물 중독자인 엄마나 떠나버린 아버지 후보자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 호사다마랄까 승승장구하며 신분 상승을 향해 가고 있던 그에게 문득문득 과거의 악령이 뒤를 밟고 따라와 괴롭히고 있음을 느낀다.    


  

엄마의 환영, 벽장 속 괴물    


 자신 안에 있는 엄마의 모습, 힐빌리의 문화가 나타날까 걱정했다.

그런 그가 갈등을 대하는 방식은 항상 투쟁 아니면 도피하는 것이었다. 우샤와 의견 충돌이라도 생기면 피해서 도망쳤다. 우샤와 싸우다 블랜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불 같은 기질의 늪으로 빨려 들어갈 까 봐 근심했다. 이런 이유로 싸움을 피하려 했지만 우샤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책망했다.


도피와 투쟁만이 회로에 내장되어 있었던 J.D. 밴스는 급기야 엄마의 행동 그대로 우샤에게 언성을 높이고 고함을 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극도로 불안해진 그는 낯선 상담사에게 자신을 감정을 털어놓기보다는 도서관 행을 택했다.


 심리학 관련 책을 읽으며 린지 누나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 ACEs: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라는 것을 알게 된다. ACEs는 유년 시절에 겪은,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만큼 충격적인 경험으로써 성인기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ACEs는 신체적 트라우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CEs에 속하는 감정이나 경험은 다음과 같다.    



■ 부모에게 욕설을 듣거나 모욕감을 받은 적이 있다.
■ 부모가 밀치거나 멱살을 잡거나, 혹은 부모가 던진 물건에 맞은 적이 있다.
■ 가족이 서로 의지하는 것 같지 않다.
■ 부모가 별거 혹은 이혼했다.
■ 집안에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복용자가 있다.
■ 집안에 우울증 환자나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 있다.
■ 사랑하는 사람이 신체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 『힐빌리의 노래』, 363쪽     



ACEs는 어디서나 일어나지만, 석사 이상의 학위를 지닌 사람들 중에 ACEs를 경험한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J.D. 밴스는 심리학 공부도 하면서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넘기며 과거에 덜미를 잡히지 않으려 애를 썼다.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성공한 사람들도 자신에게 닥친 행운처럼 유사한 형식의 개입이 있었다고 토로한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모범이 될 만하고, 꿈을 꾸게 할 만한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것이 있어야 소망을 품을 수 있기에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주어 저 너머의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환경을 이겨내고 보다 다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에팔래치안주립대학교에서 편입생 관리를 담당하는 제인 렉스 역시 노동 계층 가정에서 자랐고, 최초로 대학에 진학했다. 40년 가까이 훌륭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자녀 셋을 바르게 키웠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주변에 귀감으로 삼을 만한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은행장이어서 저도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거든요. 저 너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렇게 세상에 노출이 돼야 꿈을 품을 수 있어요.”

 - 『힐빌리의 노래』, 382쪽      


 J.D. 밴스는 할모 할바나 로리 이모와 우샤와 에이미 추아 교수와 같은 좋은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꿈을 품어 마침내 목표를 이뤄냈다. 힐빌리 지역에만 있었으면 절대 이루지 못할 성공을 세상 밖으로 나옴으로써 해냈다.      



J.D. 밴스나 '나' 또한 과거의 트라우마가 언제든 뒤를 밟고 따라와 덜미를 잡을까 노심초사할 때가 많다.

밴스는 엄마와 화해를 하고 힐빌리 가족의 눈으로 본 회고록을 써내고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상처에서 벗어났다.


나 역시 심리학 모임인 ‘마음담론’에서 활동하며 읽고 쓰면서 아픔이 많이 희석됐다.

인지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필링 굿』 책을 읽으며 셀프 치료사가 되어 나를 치료하고 있다.


 늘 기분 좋은 상태가 되도록 스스로 조절하고 칭찬하며
 “최고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의 미덕은 J.D. 밴스의 솔직하고 겸손한 화법이다.

“내가 사랑하는 몇몇 사람이 구해주기 전까지 나는 시궁창 같은 삶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었다.”라며 성공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밝힌다. 


삶 속에서 여성들 덕분에 오롯이 설 수 있었음을 언급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힐빌리 출신이지만 그 문화의 잘못된 점, 그릇된 가치관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어 흡입력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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