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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y 08. 2019

위대한 사람들의 비밀 병기

원전을 그대로 베껴쓰기

  활달하고 통통한 여학생이 평소와 다르게 시무룩해하며 학원에 왔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했더니


  "선생님, 저 학교에서 남자애들이 뚱땡이라고 놀려요. 저 보고 야생 하마래요".


  "무슨 소리야, 이렇게 귀여운 하마가 어디 있다"라고 했더니


  "저만 보면 야! 저기 야생 하마 지나간다면서 자기들끼리 키득거려요. 심지어 우리 반에 좀 뚱뚱한 외톨이 남자애가 있는데, 저 뚱보랑 사귀어 보는 건 어때 하더니 책상을 치면서 웃기 시작했어요. 여자애들도 슬그머니 웃으면서 걔네들 뜻을 따르는 것 같았단 말이이에요."


하더니 동조하는 그 여자애 들이 더 얄밉다며 수업 내내 집중을 하지 못했다. 심난해하는 아이를 붙잡고 명성황후 얘기를 해줬다.

고(故) 이만익 화백이 제작한 뮤지컬 ‘명성황후’의 포스터출처: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903021001#csidx97fcb0aa77ee6c69e5894754416ca09

  

고종은 결혼하고서도 명성황후를 한동안 찾지 않았다. 어느 날 명성황후랑 대화를 해본 고종은 그녀의 지혜에 탄복했다. 그 뒤로는 명성황후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 명성황후는 자신이 지닌 지혜 덕분에 고종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명성황후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얘기해주면서 외모보다는 실력을 기르는 데 힘쓰라고 독려했다. 이어서 클레오파트라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도 해줬다.


  일찍이 "나를 정복하는 자는 오직 나일뿐"이라고 기염을 토한 여성이 있었다. 남자들을 파멸로 이끄는 세기의 팜므파탈로 자리매김한 클레오파트라! '나일강의 검은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의 미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지성 작가의 <<스무 살 클레오파트라처럼>>에서 보면


  클레오파트라, 그녀의 외모는 어떠한가. 금붕어처럼 툭 튀어나온 두 눈, 매부리코, 여기저기 깨지고 검게 착색된 치아들, 사각턱, 두툼한 목덜미, 통통한 손발과 허리, 150 센티미터쯤 되는 작은 키, 거무칙칙한 피부......

한마디로 추녀의 조건은 모두 갖춘 외모다.

                                 -<<스무 살 클레오파트라처럼>>, 이지성/차이 정원


  추녀의 조건을 있는 대로 죄다 갖춘 클레오파트라에게 도대체 무슨 비법이 있었을까? 세계 최고의 남자를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 같은 걸출한 남자들을 어떻게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예전부터 남성들은 여성의 위치를 그녀가 지닌 성적 매력과 동급으로 봤다.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는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에서 파스칼조차도 여성의 힘을 육체적인 매력에서 찾았다고 지적한다. 익히 알고 있듯이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이 세상의 모습이 영 딴판으로 바뀌어버렸을 것이다"라고 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역사의 행로를 바꿀 수 있다고 가정한 셈이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사용한 히든카드는 그렇게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녀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보는 순간 사람을 사로잡을 만한 것도 아니라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오파트라는 만나는 남자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플루타르코스는 그녀가 상대의 "넋을 빼았을 수 있었던 이유"를 클레오파트라의 뛰어난 화술과 달콤한 목소리에서 찾았다.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그녀의 이야기는 지적이고 생동감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재치가 있었던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말하자면 클레오파트라의 놀이터는 유럽 전체 도서관의 10배의 책을 갖고 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었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매일매일 책을 읽었으며,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지성을 단련했다.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지식을 갖춘 클레오파트라와 대화를 하는 동안 남자들은 그녀에게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엄청난 독서력 덕분에 그런 대화술이 가능했다.

게다가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의 묘미를 돋보이게 하는" 달콤한 목소리로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자들은 그녀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유혹하는 비밀 병기는 결국 도서관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아름다웠던 진정한 이유는 방대한 양의 지식으로 무장된 세련된 매너와 화술에 있었다. 이러한 능력은 사람을 설득하는데 아주 유용했다. 그것은 당시 이집트를 호시탐탐 정복하려 했던 카이사르나 안토니우스 같은 로마의 영웅을 설득해 이집트의 안위를 지키는데 이바지했다. 클레오파트라의 명석함이나 야망 등은 그녀의 위치를 확고부동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클레오파트라의 뛰어난 화술이라는 것도 영양가 있는 내용이 있을 때여만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쓸데없는 농담이 아닌 알차고 풍성한 이야기는 결국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대규모 '클레오파트라' 축제 / 연합뉴스TV ...YouTube

 

 수사학으로 기본기를 갖춘 데다, 풍부한 독서로 지식을 갖춘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똑똑한 여성을 남성들은 불안해했다. 플루타르코스는 19세기 미국의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이 높게 평가했던 사람이다. "만일 전 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그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라톤 전집 >>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을 구해낼 것이다"라며 그를 인정했다. 

하지만 플루타르코스처럼 위대한 남자도 뛰어난 지략을 갖춘 클레오파트라는 두려웠던 것일까? 정신적인 매력을 갖춘 클레오파트라를 음탕한 여인, 집시로 규정한 것을 보면.  


  클레오파트라가 살던 당시에는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능수능란한 말재주가 필요했다. 가족이더라도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상황에서 능숙한 말솜씨는 불가피했다. 상대를 내 편에 서게 하려면 나를 따를 수 있는 논리가 입에서 술술 나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전을 읽고 암송하는 수밖에 없었다. 암송하기 위해서는 원전을 그대로 베껴 쓰는 일을 해야 했다. 물론 이렇게 습득된 지식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의 대명사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도 베껴쓰기를 철저히 했다. 라틴인문고전을 원전으로 읽기 위해 초등학생용 라틴어 교재를 활용했다. 암기할 때까지 수 십 번 읽고 베껴쓰기를 했다. 그것도 순전히 독학으로.


  클레오파트라가 살던 당시에도 경쟁이 치열했지만 지금이 그때보다 더 못하다고는 할 수 없다. 고대 시대가 왕족끼리의 파벌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개인 간의 역량을 다투는 시기라 오히려 모든 개개인들이 경쟁에서 자유로운 수가 없게 됐다. 경쟁을 넘어서 이제 자기 착취로 이어지는 '피로사회'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잘 버티는 사람들은 글쓰기와 말하기로 준비된 사람들이다. 좋은 콘테츠가 있으면 말이 조금 어눌해도 사람들이 주목을 한다. 내용이 알차고 풍부한 말과 글을 담아내려면 양서를 읽어야 한다. 읽고 난 후에는 그 책의 중요한 부분들을 베껴서 옮겨 적는다. 정성스럽게 옮겨 적으면서 표현과 문체를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단순히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가며 마음을 다해서 베껴쓰기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글쓰기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글쓰기 고수들도 처음엔 베껴쓰기로 훈련을 했다.





제가 책을 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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