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순희 May 20. 2019

베껴쓰기로 하는 일취월장 글쓰기

글쓰기의 지름길인 베껴쓰기

   잠을 잘 수가 없어, 삶이 우울해서 천 권을 읽었네, 만권을 읽었네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단. 그 경험을 책으로 써서 무슨 무슨 독서법이라는 이름으로 서점에 깔렸다. 독서 경험과 관련된 간증 형태의 책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독자는 그런 경험을 함께 나누려한다.


   많은 책을 읽으면 당연히 쓰고 싶은 욕구도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책을 읽고 쓰다 보면 조리 있게 생각하는 능력이 생긴다. 생각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대화 또한 논리에 맞게 잘 풀어내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말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거나, 아마 말하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일 것이다. 특별히 수행을 하는 수도자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많은 글을 접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TV 속의 자막이라든가, 거리의 현수막, 길거리의 간판들이 시시때때로 읽어달라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읽는 것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고, 카톡에다 자기의 생각을 남기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쓰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글은 우리 삶에서 말 못지않게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말은 잘하면서 심지어 어려운 글도 잘 읽으면서 쓰라고 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겁부터 먹는다. 쓰기를 두려워 하는 것은 비단 어른들만이 아니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쓰지 말고 토론만 해요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 아예 싫어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바로 '베껴쓰기'이다. 글쓴이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서 쓰는 베껴쓰기가 그 해결책이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학생들은 부담을 갖는다. 요즘 학생들은 알다시피 학교 끝나자마자 곧바로 학원으로 직행한다. 이러다 보니 몸으로 뭔가를 하는 것에 부담을 갖는다. 아니 힘들어 하고 귀찮아한다. 돈벌이 하는 직장인보다도 더 빡빡하게 산다고나 할까. 심지어 주식을 편의점의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글쓰기의 지름길인 '베껴쓰기'도 심리적 압박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영어 단어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남아서 늘 빽빽이 했던 기분 나쁜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어학원 갔다 온 녀석이 손 밑이 까매서 왔다. 아니 왜 이렇게 손이 더러워 했더니 단어 시험통과 못해서 계속 빽빼하게 깜지 쓰고 왔단다. 똑같은 단어를 열 번 스무 번 가득 채우고 왔다며 씩씩댔다.


   

글을 잘쓰기 위한 비법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글쓰기를 싫어한다. 게다가 바쁘기까지 한 학생들을 베껴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조차 모른다. 왜 그럴까?

스마트폰이 일상이 되어버려 예전과 달리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를 통해 정보를 습득한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으로 검색을 하며 자료를 얻는다. 시각적이고 자극적인 새로운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즉석 음식 먹듯 정보를 흡입한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독서나 읽기, 쓰기 보다는 감각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쌓는다. 그러다보니 얻은 지식들이 피상적인 것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클릭 한 번으로 정보를 쉽게 구한다. 이러다보니 당연히 깊이 생각하는 것을 꺼려한다. 심지어 어떤 사안에 대해 생각하는 그 자체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낸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베껴쓰기만한 것이 없다. 원문을 그때로 따라서 쓰는 베껴쓰기는 글쓰기 수업에서 아주 요긴하다. 글을 읽고 분석하고 의견을 나눈 후에 그대로 베껴쓰기를 한다. 베껴쓰기로 글쓰기의 기본기를 다지게 되면 자신만의 생각이 들어간, 나만의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베껴쓰기는 한꺼번에 진행되는 종합적인 활동이다. 글을 쓰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베껴쓰기는 소설가나 시인 등 예술활동을 하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 꾸준히 행해져 왔다. 논술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활용해 왔던 방법이다. 짧은 시간에 원하는 목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베껴쓰기의 중요성은 글쓰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말하고 쓰는 것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필사하기, 말하자면 베껴쓰기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사설을 활용한 베껴쓰기의 실제 

540 × 274    31.'좋은 글 베껴 쓰기', 기대 이상의 효과 있다 - 프리미엄조선  premium.chosun.com

 

   '안희정 사건'을 두고 지도한 학생들이 쓴 내용들이다. 성폭력이라는 사안을 두고 각각의 생각이 바뀌는 과정을 보자. 베껴쓰기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팀을 나눠 수업을 했다. 한 팀은 전처럼 처음부터 글을 쓰도록 하고, 다른 팀은 원문을 따라 쓰는 베껴쓰기를 진행했다.


   <갈 길 먼 '미투'현실 드러낸 '안희정 재판9한겨레 사설-2018년 7월27일)>을 활용하였다. 사설의 내용은 안희정 충남지사의 전 수행비서 김지은씨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다. 1심에서 검찰이 안지사에게 4년 징역을 구형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안지사에게 적용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최고 징역 5년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1년 이상 실형이 선고된 예가 드물다고 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만이 나를 살게 하는 유일한 힘"이라고 피해자 김지은씨는 말한다. 사설은 그녀의 말이 헛되지 않도록 공정한 법의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사설-2018-07-27] - 갈 길 먼 '미투'현실 드러낸 '안희정 재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 1심 재판에서 검찰이 4년 징역을 구형하며 내달 선고만을 남겨두게 됐다. 전 수행비서인 김지은씨가 지난 3월 방송에 나와 피해를 고발한 이후 진행된 공방과 재판 과정은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졋다. 어느 성폭력 피해자든 고통의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일이지만, 안씨의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이자 평소 젠더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을 해온 그이기에 더 더욱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은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너나없이 #미투 이후 한국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후 과정을 짚어보면 근본적으로 얼마나 달라졌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베껴쓰기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학생을 글을 보면, 사설의 첫 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다시피 한 것을 볼 수 있다. 학생의 글은 지문 그대로 옮겨 적는 수준에 불과했다.



학생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 1심 재판에서 검찰이 4년 징역을 구형하며 내달 선고만을 남겨두게 됐다. 전 수행비서인 김지은씨가 지난 3월 방송에 나와 피해를 고발했다. 안씨의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건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이자 평소 젠더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은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베껴쓰기를 진행한 반은 먼전 소리 내어 3번 읽게 했다. 모르는 어휘를 찾고, 사설과 관련된 유튜브의 동영상("안희정 지사 성폭력"/JTBC 뉴스룸)을 시청하게 했다. 다시 소리 내어 한 번 더 읽어보게 한 다음 글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베껴스기를 하게 했다. 집중해서 읽도록 했다. 베껴쓰기 한 후에는 600~800자 글쓰기를 했다. 물론 베껴쓰기를 실험하지 않은 반도 동영상 시청은 했다.

   그동안은 베껴쓰기를 하지 않고 바로 글을 쓰게 했다.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라고 하면 처음부터 스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던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베껴 쓴 과정을 통해 충분히 이해가 됐는지, 어려워하지 않고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소 글을 슬 때와 같이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도록 했다. 글의 첫 부분은 읽는이의 시선을 끌도록 한다. 사설이었기이 6하 원칙에 의해 사건 정리를 한다. 말하자면 독자에게 정보를 주는 방식이다. 쉽게 읽히도록 자신의 경험을 담은 에피소드를 써도 된다. 글의 중간 부분은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 즉 메시지를 전달한다. 피해자 김지은씨의 용기라든가 성포격에 대한 대처 방안 등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학생글1


  김지은씨가 용길ㄹ 낸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안희정지사와 관련되 또 다른 여성들이 김지은시를 보면서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해야한다. 싫다고 단호하게 거부를 해 피해를 막아야 한다. 도한 성폭력 가해자에 처벌 강도를 높여야만 한다. 솜방망이 처벌로 또 다시 성폭력을 저지르게 해서는 안 된다.  

남자들이 성폭행을 하는 이유는 대체로 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으로 죄를 짓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성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갖도록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


  학생1은 김지은시의 용기에 지지를 보냈다. 도 성폭력 가해자의 처벌 강도들 문제삼았다. 아울러 현실에 맞는 올바른 성교육이 필요함을 말했다.



학생글2


   김지은씨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용기를 내어 방송에서 안희정의 만행을 고발했다. 그러한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안희정이 1심 재판에서 받은 형량은 4년 징역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달 선고도 남아있을뿐더러, 1년 이상 실형이 선고된 예도 정말 보기 드물다. 그에 비해 김지은씨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 심지어 그녀가 증거자료로 낸 병원진단기록가지 선정적인 제목으로 내보내졌다. 김지은씨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방송을 한 것이었다. 국민들에게 보호를 받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네티즌의 뭇매를 맛고 있는 그녀를 보며 오히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숨어버렸다. 두렴움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


   이런 사태들을 막기 위해선  더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서로 연대해혀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또한 성폭력을 당하지 않오록 더 강력하게 뿌리쳐야 한다. 김지은씬 J사 인터뷰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부"를 했다고는 했지만, 안희정 지사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김지은씨는 웬만하면 참고사는 성격이라 자기가 싫다고 했기 때문에 안지사가 알아들을 것이라고 했다. 김지은씨는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 표명을 했어야 했다. 과연 그랬으면 성폭행을 당했을까 의문이 든다.


   학생2는 피해 여성들의 연대를 주장했다. 적극적인 거부의사를 밝히지 못했던 김지은씨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 다시 학생글을 보도록 하자.


  학생글1


  안희정 지사는 4년 징역을 선고받았지만 현실적으로는 1년 이상 실형을 사는 사람이 없었다. 다라서 처벌을 좀 더 강화해서 제2의 안희정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김지은씨를 사회에서 잘 감싸줘야 한다.


  학생글2


   김지은시는 안희정과 관련되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가 있다고만 하고, 그것에 대해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다. 국민들에게는 '알 권리'가 있다. 만약 그녀가 정녕 국민들에게 보호를 받고 싶었다면, 그 사건까지도 얘기해야 마땅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어린이, 청소년 성교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집붕을 하고 듣게 하려면 관심을 끌게 해야 한다. 유용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생물학적인 얘기만 하고 있으니 당연히 아이들은 성교육시간을 지루해 하고 집중도 안한다.

제2의 김지은씨 같은 피해 여성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다 쓴 글들에 대해 학생들끼리 서로 피드백을 했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삶에게 강력한 거부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나왔다. 가해자는 직장에서의 상사다. 말하자면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감히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은 법이 그것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글을 쓰라고 하면 몇 줄 쓰고 말았던 학생들이다. 원문을 복사한 수준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나탸냈다. 원문을 요약 정리해서 적절히 표현했다. 베껴쓰기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이제는 조목조목 근거를 들며 쓰게 되었다. 아이들은 읽기만 했을 때보다 베껴쓰기를 하니 기억데 더 남았고 내용도 정확하게 이해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어려운 지문이 나오면 한 번씩은 써 봐야겠다고 말한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 베껴쓰기만 제대로 해도 달라지는 것이 놀랍다.

 대한민국에서의 "갈 길 먼 '미투'현실"처럼 우리 청소년들의 글쓰기도 갈 길이 멀긴하다. 하지만 베껴쓰기로 글쓰기의 걸음마는 뗐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다.



제가 책을 냈습니다. ~^^


 

     

   

작가의 이전글 위대한 사람들의 비밀 병기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