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살아낼 수 있는 고독력을 길러야 한다.
한때 믿음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압구정동에 있는 대형교회를 다닐 때였는데 유독 내 마음을 끈 권사님이 계셨다.
인품도 좋으시고 유복하기까지 했다. 그분처럼 세상에서도 승리하며 살고 싶었다. 장 권사님의 남편분인 권장로 님은 교수님이셨다. 전문직을 갖고 있는 데다가 고전적 부자인 상속받는 토종 부자였다. 결혼생활이 윤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도 몇 십 만원 하는 버버리 블라우스를 집에서도 입고 지낼 정도였다.
헌금도 많이 할 뿐만 아니라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분이셨다. 불우한 이웃이 있으면 남 모르게 도움을 줘서 교인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장 권사님 보는 낙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 데 몇 주 동안 뵐 수가 없었다. 궁금해하고 있던 터에 장 권사님에 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쫄딱 망해서 아무하고도 연락이 되지를 않는다는 풍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녔다. 교회는 다니고 있었지만 사실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구역 식구들이 TV 나오는 유명인처럼 너무나 잘 살아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장 권사님이 따뜻하게 대해줘서 그나마 간신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차였는데 장 권사님이 없는 교회는 내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친한 집사님한테 교회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시험에 든 거라며 기도원에 가서 영적으로 무장해야 된다고 했다. 마지못해 기도원 가는 데 에 따라나섰다. 그때는 사찰집사님이 앉아서 밥을 퍼주면 받아서 식탁으로 옮겨가서 밥을 먹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받을 때였다. 밥을 퍼주는 분의 머릿수건이 흘러내렸다. 머릿수건을 다시 묶기 위해 고개를 드는 순간 그분이랑 눈이 마주쳤다. 장 권사님이었다. 깜짝 놀라 말을 붙이려 하니 밥을 푸던 손을 휘저으며 식탁에 가있으란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웬걸 장 권사님의 남편 되시는 권장로 님이 보였다. 체육 교수인 그 멋진 풍모는 온 데 간데없고 구부정한 노인만 있었다.
나중에 장 권사님한테 들은 얘기는 아들 사업하는 데 돈을 대줬다가 날벼락을 맞았단다. 그 흔한 통속 드라마처럼 아들은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서주는 바람에 아들도 실족했다. 그동안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잘 해온 덕분에 오갈 데 없는 당신들을 교회에서 사찰집사로나마 살게끔 해줬단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인생사 한바탕 꿈이었지 하는 장 권사님의 탄식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미래에셋의 강창희 부회장님의 강연을 즐겨 듣는다.
요즘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하는 구호가 “속지 말자 학벌, 다시 보자 스펙”이란다.
외고 출신에 유학파를 데려다 써봤더니 근성이 없고 힘든 일이 생기면 제풀에 나가떨어졌단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공부밖에 없는 도련님들만 와서 실패했단다. 이제는 뚝심 있고 씩씩한 사람만 뽑는단다.
처음부터 외국계 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았던 이들은 퇴직하고 나서는 룸펜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제대로 된 직업관을 심어줘야 고등 실업자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를 했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장 권사님의 아들이 근성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쉽게 빚보증이나 서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자신만 망하는 게 아니라 부모까지 못 살게 만들어 놨으니 지금은 왕래는 고사하고 소식조차 들을 수 없게 됐다.
코로나 이전도 그랬지만 지금은 젊은이에게 훨씬 냉혹한 사회가 됐다.
취준생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보니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캥거루족이 점차 증가하며 심지어 고령화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한국 직업능력개발원의 오호영 씨의 <캥거루족 실태분석과 과제>에 따르면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여력이 높을수록 자녀의 캥거루족 화가 증가된다고 한다. 20대 초 중반까지 충분한 지원을 받은 이들은 취업 능력이 높아져서 30대 이후에는 캥거루족 비율이 낮아지고 취업의 질도 높아졌다. 그에 비해 빈곤층의 캥거루족 비율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심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청년층의 노동 시장이 가구의 소득 계층에 좌우되는 정도가 편향될 수록 노력을 경시하는 풍조 또한 생겼다. 부모 도움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보니 타인의 성취를 쉽게 인정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한국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된다. 분노가 만연한 사회로 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
학원 오픈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구김살 없는 부부가 같이 상담을 왔다.
퇴근하기에 이른 대낮에 아이들 아빠를 대동하고 상담을 왔기에 전문직에 종사하는 줄 알았다. 등록한 지 몇 달이 지나 친해지고 나니 태우 어머니께서 속내를 드러냈다. 태우 아빠가 평생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단다. 회사엘 다니려고 하면 시어머니가 나서서 못 다니게 했단다. 그까짓 거 몇 푼 번다고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냐고 그때마다 돈을 주셨단다. 태우 아빠가 하는 일은 비디오 네다섯 개 빌려다가 종일 보는 게 그게 끝이라고 했다.
태우 어머니는 처음엔 자기가 결혼을 잘한 줄 알았단다. 이제는 무료한 이 일상이 지옥 같다고 했다. 남정네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와야 자기도 숨통이 트일 텐데 종일 밖에 나가지도 않고 비디오랑 TV 하고 씨름만 하다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못 살겠다고 태우 아빠한테 난리를 치면 시댁 가서 고자질이나 하고 돈 한 뭉치를 개선장군처럼 갖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태우 아빠를 업신여기게 된다고 했다.
이런 태우네 가정을 보면서 재테크보다도 자녀가 자립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 특성상 아이들이 주말이면 친가로 외가로 저녁 식사를 꼭 하러 간다. 아이들 하는 말이 더 걸작이다. 우리 아빠뿐만 아니라 00이네 아빠도 할아버지가 훨씬 부자라고 했다. 걔네나 우리나 할아버지가 생활비를 다 대준다고 스스럼없이 말을 한다.
우스갯소리로 교통사고만 안 당하면, 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 아니 백이십 살까지 산다고 한다. 저성장 시대에서는 평생 현역이 최고의 노후보장이다. 내 아이를 전문가로 키워내야 한다. 그도 저도 안 되면 내가 전문가가 되어 남은 생을 보내야 한다.
국민연금 생생 통계에 의하면 작년 국민 연금 수급자의 52%가 월 30만 원도 못 받았다고 했다. 80%가 50만 원 이하이고, 3%만이 100만 원 이상 받았다. 놀라운 것은 국민 연금이 없는 사람이 38%나 됐다. 최근 5년 사이에 국민 연금을 받는 사람이 28% 증가한 데 비해 가입자 증가율은 채 6%가 안됐다. 국민 연금이 없거나 실업 등으로 국민 연금을 내지 못하는 ‘잠재적 공적 연금 사각지대’가 전체 18~59세 인구 중 자그마치 42%였다.
이웃의 혜린이 어머니가 당신 시어머니가 달라졌다고 하소연을 하러 왔다.
지방의 유지인 혜린이 할머니 오실 때마다 침대 밑이랑 식탁 구석에 오십만 원이고 백만 원이고 놓고 가셔서 아이들이 엄청 좋아한단다. 혜린이 어머니조차도 시어머니 기다리는 게 낙이었다. 어떤 때는 돈을 아주 많이 놓고 가서 공돈 생겼다고 밥도 사주곤 했다. 그러던 시어머님이 요즘은 돈을 한 푼도 안 주신단다. 그 이유가 이웃사람들이랑 노는 데 재미를 붙여서 해외여행으로, 전세버스 대절해서 일주일씩 놀러 다니느라 당신 쓸 돈도 모자라신단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며 시아버지랑 두 분이 노는데 푹 빠져서 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전에는 혜린이 목소리를 하루라도 못 들으면 난리를 치시고 애가 보고 싶어 득달같이 올라오시더니 이제 그것마저 없어졌단다. 도리어 혜린이가 할머니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할 정도로 무심하단다.
좋은 점도 있다고 했다. 예전의 시어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기에 혜린이 아빠가 부모만 바라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하게 됐단다.
자녀 리스크에서 벗어나려면 남의눈을 의식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태우 아빠처럼 평생 캥거루족을 만들지 않으려면 부모부터 소신을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의미를 찾게 해야 한다. 장 권사님처럼 노후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요즘 젊은 부부들처럼 부부별산제 하듯이 해서 자녀의 경제관을 제대로 심어줘야 한다. 혜린이네 시어른처럼 자녀들과의 애착관계를 분리해야 한다.
자녀 리스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적인 문제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경제관념을 심어줘야 한다. 초혼의 시기가 점점 늦어짐에 따라 첫 아이 또한 늦게 낳고 있는 추세이다. 부모가 퇴직 후에 자녀가 사회에 진출하는 상황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경제적 관념이 없는 자식 때문에 노후가 불안정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경우는 얼마나 많던가?
자산을 연금화해서 자녀로부터 돈을 분리하는 게 우선이다. 현금이나 부동산 자산은 유동화하기가 쉬워 자식이 어려움에 처하면 지원을 해 주기가 쉽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돈을 연금으로 묶어버리면 이 문제에서 피해 갈 수 있다.
태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남의 눈을 인식해 자녀를 번듯한 직장에 다니게 해야 한다는 마음부터 접어야 됨을 느꼈다. 부모들은 주말에 자녀들이 와서 잠깐 왔다 가는 것에 일희일비할 '애정 취약계층'으로 머물러서도 안 된다.
유연 사회다. 어디든 연이 닿아있고 끈이 연결되어 있다. 부모 또한 바쁘고 돈 쓸데가 많으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기댈 마음을 덜 갖게 될 것이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을 때 비빈다.
호환마마보다도 더 무서운 자녀리스크를 막고 싶은가요?
은퇴 후의 돈은 연금 자산으로 묶어두고 홀로 살아낼 수 있는 고독력을 기르세요.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