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샘이란 내가 가진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세는 기술이다."
근 2주 동안 책을 못 읽고 글을 쓰지를 못했다.
새해 들어 한 결심이 1일 1 책 1 글 발행하기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무너져 내렸다.
'호사다마'라더니, 성지를 서울대 보낸 것이 빌미가 됐다. 성지가 서울대 간 것이 학원 광고하려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공을 들였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잠시도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 말을 전해준 사람만 아니면 말을 한 당사자를 만나서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소리를 한 거냐고?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아이를 장삿속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그게 아니라고 반박의 말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당신은 매사를 그렇게 삐딱하게 한 자락 깔고 보느냐고 정색을 하며 물어보고 싶었다.
학원 광고하려고 공을 들였다는 성지는 그냥 보통의 아이였다.
성지를 처음 본 것은 중1 때였다. 성지 오빠 민혁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스승의 날이라고 성지 어머니께서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했다. 민혁이랑 같이 밥 먹는 자리에 동생 성지를 데리고 나왔다. 식사를 끝내고 천천히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서 성지가 책을 읽고 있었다.
민혁이 동생이 책도 열심히 읽네요 하면서
무슨 책 읽고 있는 거야 했더니
학교 필독서를 읽는다고 했다.
독서록에 쓰려고 읽고 있어요 하기에
이번 시험은 잘 봤냐고 물어보니
영어 시험이 아쉬웠어요. 본문을 몽땅 다 암기했는데 학교에서 나눠준 프린트에서,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는 데서 나와서 틀렸어요. 하면서 다시 책을 들었다.
그때 당시 성지의 중학교 평균 점수는 80점대 후반이었다.
내가 만난 성지의 기억은 여느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보였다. 다만 눈빛이 살아 있어 야무져 보였다. 밥 먹으러 와서도 독서록 낼 책을 읽는 성실한 친구이기에 잘 가르치면 재목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성지만 특별히 재목이 되겠다는 촉이 오는 게 아니라 학습력이 웬만하고 성실하면 재목으로 자라나는 데, 아니 재목으로 키우는 데는 무리가 없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성지와의 수업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그런 성지를 학원 광고하려고 공을 들였다는 말에 쉽사리 납득이 가지를 않았다.
중1 꼬맹이가 특출 나야 얼마나 뛰어나겠는가? 중1부터 서울대 갈 아이라는 것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달라지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27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숱하게 봐었던 터였다. 그런 변수가 많기에 “얘는 서울대 갈 아이니까 작정하고 키워야 해” 하며 다가가는 선생님들은 없다. 고작 중1인 아이를 무슨 수로 예측을 한단 말인가.
합격자 발표 이후 성지가 주변 학원에 인사를 다니며 서울대 가게 된 모든 공을 나에게 돌렸다. 오랫동안 국어학원 다니면서 독서를 많이 하고 글쓰기를 수도 없이 해서 그런지 고등학교 가서도 어렵지 않았단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독해가 잘 되었고, 글쓰기까지 자연스럽게 가능했단다. 그 결과 상도 많이 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생기부를 찬란하게 채울 수 있어 수시로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모든 영광을 우리 학원에 헌사했다는 말을 들었다.
성지가 인사하러 간 그 학원 원장님은 성지가 서울대 간 것이 이외였던 모양이었다. 성지가 성실하게 자기 앞가림 정도 하는 아이인 것 맞지만 크게 뛰어나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던 듯했다. 성지가 서울대 간 것이 못내 궁금했는데 성지한테 우리 학원 얘기를 듣고는 부랴부랴 국어를 시켜야겠다고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성지 이야기를 듣고 그 원장님이 전화를 주셨지만 시간이 서로 안 맞아서 대기자로 기다려야 될 형편이었다. 인근 학원에도 다니고 우리 학원에도 몇 년 동안 보내고 있는 정연이 어머니께 국어 학원에 대해 물어봤었나 보다. 정작 몇 년째 보내고 있는 정연이 어머니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당신 자녀는 우리 학원에 몇 년 동안 보내고 있으면서도 그 학원 원장님 아이는 다른 국어 학원을 추천한 정연이 어머니의 마음이 궁금하다못해 서운하기까지 했다.
정연이에게 정성을 기울였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암기 과목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시간만 쓰고 있는 정연이에게 교과서 읽는 방법을 알려줬던 일, 초시계 공부법으로 시간을 재며 빨리 여러 번 공부하게 했던 일,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교사용 CD에 있는 문제를 출력해서 준 일, 내신코치에 들어가서 열 개 학교 이상의 기출문제를 준비해 줬던 일, 소논문 쓰는 법을 몰라 새벽 두시까지 논문 사이트 들어가 자료 찾는 법, 소논문에 이미지 넣고 각주 처리 하는 것 등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정연이에게 정성을 쏟았건만 나에 대한 평가는 고작 ‘학원 광고나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공이나 들이는 약삭빠른 선생’에 불과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생각이 나고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두 주 이상을 무겁게 지내다 『프로이트의 상자』를 읽으면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책에 따르면 부러움, 시기심, 질투는 같은 동네에 모여 산단다. ‘남이 잘되는 것을 샘 하고 미워하는 마음’인 시기심은 모든 언어권에 있을 만큼 인류의 본성이란다.
미국의 저술가 해럴드 코핀 Harold Coffin은
“시샘이란 내가 가진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세는 기술이다.
시기심은 비교에서 생깁니다. 나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그 대상이 되면 시기심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그가 나와 달리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단정하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의 상자』, 151~ 152
곰곰이 생각을 해보며 정연이 어머니의 입장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정연이 어머니 생각에 인근 학원 원장님의 자녀 채형이가 우리 학원에를 다니게 되면 그 아이에게만 신경 쓰고 정연이한테 집중을 못 할까 봐 걱정이 된 듯하다. 그 원장님은 본인 학원의 수강생도 많지만 발이 넓어서 많은 곳을 연결해 줄 수 있었다. 실제로 채형이가 등록한 후에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다. 소개는 한 두 명만 했는데, 그분들이 팀을 짜 오고 다른 학생들을 데리고 왔다. 게다가 내가 쓴 책을 읽고서, 책에 소개된 공부법을 활용해 가르쳐 달라고 원생이 들어오기도 했다.
짐작하건대 정연이 어머니 생각에는 채형이 어머니처럼 학원을 운영해 네트워크가 넓은 것도 아니고 해서 아마 위기의식을 느꼈을 듯했다. 하긴 체형이 어머니께 부정적인 말을 한 것을 보면 마당발이었어도 절대 다른 아이들 소개는 안 해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세는 기술”인 시기심을 발휘해 애꿎은 나만 상처를 입었다.
정연이 언니 정민이가 성지와 같은 학년이었는데, 성지랑 성적이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실제로 몇몇 과목은 성지랑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만 과학중점학교와 일반고등학교라 입시에 접근하는 것부터가 달랐다. 같은 학원에서 공부해 점수가 비슷하게 나왔더라도 비교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격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과학중점학교에서는 학교 자체에서 생기부에 올릴 프로젝트나 여러 가지 상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대비를 해줬다. 거기서부터 차이가 났다.
성지가 노력해서 아니면 뛰어나서 서울대 합격했다기보다는 학원 광고하려고 공을 들인 나 때문에 서울대 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찌 보면 마음이 편하였으리라.
“시기심은 세상을 제대로 읽는 균형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처럼 타인의 노력을 좀처럼 인정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것도 나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잘 될 경우에 시기심은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킨 빵처럼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시기심은 평준화 전문가입니다. 내 수준을 높일 수 없으면 남의 수준을 깎아내리려 애씁니다. ‘시기심의 나라’에는 전망 좋고 편리한 고층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높이의, 똑같은 모양의 규격화된 이층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내 집이 조금이라도 덜 좋으면 더 불만이 생깁니다.
『프로이트의 상자』, 156
타인을 비방하고 수준을 깎아내리려는 시기심을 상대가 갖고 있는 지를 아닌 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프로이트의 상자』에서는 상대가 시기를 하는지 안 하는지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빈정대는 사람, 깔보는 사람, 지나치게 칭찬하는 사람도 시기하는 사람이란다. 아부에 가까울 정도의 입발림은 사실 시기심을 감추고 정반대 방향으로 공격하는 거란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을 쓴 마크 트웨인은 “내가 이룬 성공 속에는 항상 나의 제일 친한 친구들조차 언짢아할 그 무엇이 있다.”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가 겪는 불행한 일에서 우리는 싫지 않은 무엇인가를 느낀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심지어 시기심을 가진 사람은 남의 불행을 보고 약간의 고소한 기분을 느끼는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 표정을 짓기도 한다.
사실 누구나 가벼운 정도의 시기심은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심은 때론 자신을 부단하게 노력하게 만든다. 스스로 연단해서 발전하게 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상대가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경우에 나는 그 상황을 아니면 그 사람을 피해버린다. 물론 정면돌파를 하지 않아서 비겁해 보일 수도 있다. 부딪쳐서 내상을 입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데 이렇게 도망치는 것은 비단 나만이 그런 것만은 아닌가 보다.
아는 사람이, 이웃의 친한 사람의 시기심의 신호가 감지된다면 최대한 멀리 줄행랑을 치라고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로버트 그린은 말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되도록 멀리 떨어뜨려 시기심을 모면하라고 조언한다.
자조적인 농담을 늘어놓고 남들이 당신의 성공을 잘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게 최선이다. 어쨌거나 당신의 성공에도 약간의 행운은 포함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당신을 시기할 수 있는 사람과 당신의 성공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행운이 따랐음을 강조하거나 운의 역할을 과장하라. 상대가 가까운 사람이라면 최대한 그들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하라.
이때 상대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조심하라. 마찬가지로, 작가 앞에서 다른 작가를 혹은 예술가 앞에서 다른 예술가를 칭찬하는 실수는 절대 범하지 마라. 칭찬의 대상이 이미 죽은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동료들 사이에서 능동적인 시기심의 신호가 감지된다면 최대한 멀리 줄행랑을 쳐라.
『인간 본성의 법칙』, 451쪽
한 사람의 말 한마디로 생각지도 않게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규칙적으로 읽고 쓰던 습관이 뒤엉켜버렸다. 반 달 이상 흐트러지게 할 정도로 내 마음을 휘저어놓았다.
시기심,
그 찬란한 단어는 힘이 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