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기도가 앞서야 했다
진순희
밀기만 하면 열리는 줄 알았다
영어가 벼슬인 세상에
한몫해보겠다고 원서를 집어들었다
하필이면 철학서적
그것도 프랑스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
명절 귀향길 물결처럼
꼬리에 꼬리를 잇는 문장들
뼈대 파악도 어설픈데
내 몸의 내비게이션 오래전 구형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길
사막에서 샘물 찾듯 막막하니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 꽃 저 꽃 기웃거리며
발 빠르게 날아다니는 꿀벌이었다
꽃잎의 언저리만 어지럽히고
한 모금 꿀도 따지 못했다
슬라이딩 도어 앞에서 늘 먼저 미끄러졌다
생각해 보니 기도가 앞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