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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인생의 과제’에 춤추듯 즐겁게 몰두해야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

by 진순희

공대생의 심야 서재에서 하는 <콘텐츠 탐구반>에 참여하고 있다.

회원 중의 한 분인 P님이 계속 우울하다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것이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고. 그러다 보니 진도가 안 나간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본인이 계속 해왔던 것이고 그 분야에 대한 경험도 있어서 그냥 하면 될 듯 보였다. 그럼에도 아직 보완해야 될 것이 있다고 주춤하고 있기에 “언제까지 준비운동만 하실 건가요. 물속으로 얼른 뛰어들어 수영을 하세요!”라고 조언을 하고는 너무 앞서갔나 싶어 후회스러웠다.


그냥 듣고만 있어야 됐는데, 그분의 여건이나 심리적 상황에 대해 잘 모르고 섣부르게 거들었나 싶어 잠깐 동안이나마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보기에 P님은 완벽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어떤 상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당연히 거기에 못 미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 자꾸 시작을 미루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새벽에는 호진님이 진행하는 <건강한 자존감>(이하 건자감) 독서 모임을 했다. 오늘이 40주년 결혼기념일인데, 줌 링크를 내가 담당하게 되어 할 수 없이 학원에서 자고 진행을 하게 됐다. 평소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K님이, 자기는 요즘 화가 나고 매사 뭐가 엉켜있는 듯하다고 했다.

어질러놓는 사람은 세 명인데 집 치우는 것은 끝도 없이 나 혼자서만 해야 한다고. 그래서 아이들한테 화를 내고는, 그 화를 낸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다고. 뭐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투의 푸념을 했다. 현재 쓰고 있는 책도 초고 완성이 덜 됐는데, 풀어내지를 못하고 막혀 있는 상태라고 했다. 집안일도 완전무결해야 하고 글쓰기도 철저해야 하고, 아이들 돌보는 것까지도 완전해야 하는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듯 보였다.


다른 학인인 S님은 달리기를 해서 그런지 얼굴도 조그마해졌고 특히 슬림해진 것이 눈에 띌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작은 애 유치원 가 있는 사이에 40분 달리기를 하는 데, 그 사이 큰 아이는 온클 강의 듣고 10분 정도는 혼자 있는다고 했다.


듣고 있던 K님이 “나는 그거 못해. 아이 놔두고 불안해서 못 나가. 내가 있어야 해.” 하면서 당신 빠진 살이 나한테 다 붙었나 보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S님이 “우리 큰 애, 이제는 혼자 잘 있어. 그래 봐야 몇십 분인데 뭘. 온클 듣고 종이접기 하고 있으면 내가 도착하니까 괜찮아. 은근 큰애가 엄마가 나가 있는 걸 즐기는 눈치더라.”라고 라며 K님한테 이야기를 했다.

K님의 불안한 심리를 보며 『미움받을 용기』의 글이 떠올랐다.


캡처-미움받을 용기.PNG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라네.

-중략
우리는 저마다 달라. 성별, 연령, 지식, 경험, 외모까지 같은 사람은 없다네.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다는 것은 나도 순순히 인정해. 하지만 모든 인간은 ‘같지는 않지만 대등’한 존재일세.

-『미움받을 용기』, 105~106쪽


K님은 이 책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나’를 상정해놓고, 그것과 비교하면서 거기에 못 미치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보기에 K님은 정말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가정생활을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에 가깝도록 완벽하게 하려니까 성에 안차서 만족하지 못하는 듯싶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단순하게 살아라』의 저자 로타르 J. 자에베르트의 『넌 느리고 난 빠르다』의 내용을 말해주었다. 그는 우리 삶에 있어 진동추를 어느 방향으로 기울일 것인가를 결정하라고 우리에게 권한다.


“중점을 어디에 주는가는 자기 자신이 결정한다.
최고의 경력을 쌓고 많은 돈을 벌기로 결정했다면
여유를 가질만한 시간이 없다고 한탄해선 안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여유를 갖기로 결정했다면
남들이 더 많은 돈을 번다고 한탄해서도 안 된다.”



캡처-넌 느리고 난 빠르다.PNG


K님이 이달까지 초고를 마무리하기로 선택하고 결정했으면 집안일은 당연히 책 쓰기 할 때보다 에너지를 덜 쓰게 되는 것이 맞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이고. 에너지의 총량은 같은데 그거를 다 하려니까 짜증이 나고 불평이 생기는 거라고 또 쓸데없이 조언을 해버렸다.

나이 들어서는 입은 닫고 지갑만 열라고 했는데 오늘도 실패했다. 줌 수업이니 지갑은 못 열더라도 입은 다물었어야 했는데 그만 알고 있는 것을 톡 뱉어버렸다.



우리가 수시로 딴짓하다가 다시 원래의 일로 돌아가는 데 평균 25분이나 걸린다고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에서 발표한 바 있다.

우선 K님은 집안일은 나중에 하고 먼저 쓰는 것부터 먼저 해야 된다. 집안일하고 나면 지쳐서 글을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달 말이라는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 돌보는 것은 미룰 수 없더라도 원고 쓰기를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 책을 쓰고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다시 콘텐츠 탐구로 돌아가서, 공심님이 각자의 근황 토크부터 하자고 했다.

내가 첫 타자로 하게 되어 공대생의 심야 서재에서 하는 <조근조근 시쓰기>와 <신나는 책쓰기> 교안 만드느라 코피 터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동안 매일매일 브런치에 글을 발행해서 ‘자판기’라는 별칭을 얻는 내가 시 쓰기와 책 쓰기 수업을 맡고 나서는 일주일에 2~3번밖에 글을 발행하지 못한다는 얘기와 그럼에도 수업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도 재미있어 신이 난다고 했다. 아들러가 말하듯이 나의 ‘인생 과제’에 춤추듯 몰두하고 있다.



자신이 맡게 된 과제에 춤추듯이 하라는 것, 춤추듯이 살라는 말이 나를 두고 한 말 같아서 특별하게 다게 왔다. 『미움받을 용기』를 처음 읽을 때는 읽고 쓰는 데 급급해 제대로 소화를 못 시켰나 보다. 두 번째 읽으면서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독자가 잘 떠먹도록 도처에 버무려놓은 것이 눈에 잘 들어왔다.



『미움받을 용기』의 내용은 다 좋지만 특히 5장은 밑줄 그어가며 정독을 두 번이나 했다.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한 철학자와 냉소적이고 열등감 많은 청년의 다섯 번의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떻게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과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청년은 철학자에게 “자의식이 브레이크를 걸어서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한다”라고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이런 그에게 철학자는 공동체 감각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구체적인 것으로는 자기에 대한 집착 self interest을 타인에 대한 관심 social interest으로 돌리고, 공동체 감각을 기르라고 말한다. 이에 필요한 것이 ‘자기 수용’과 ‘타자 신뢰’, ‘타자 공헌’이란다.



자기 긍정과 달리 자기 수용이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책에서 든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60점 자리 자신에게 “이번에는 운이 나빴던 것뿐이야. 진정한 나는 100점짜리야”라는 말을 들려주는 것이 자기 긍정이다. 반면에 60점짜리 자신을 그대로 60점으로 받아들이고, “100점에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라고 방법을 찾는 것이 자기 수용임을 구분한다.

또 과제를 분리하는 것처럼 ‘변할 수 있는 것과 ’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자기 수용이란다.

“교환이 불가능함을 받아들이는 것. 있는 그대로의 ‘이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낸다. 그것이 자기 수용”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철학자의 이 말에 영특한 제자인 청년은 커트 보네거트 Kurt Vonnegut가 『제5도살장』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신이요,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라고.



공동체 감각은 ‘자기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돌릴 때 생긴다. 이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타자 신뢰’다.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 타자에 대한 신뢰가 없는 청년에게 철학자는 배신도 타인의 과제라고 말을 한다.

자기 수용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친구의 배신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속하기 때문에 타자의 과제이다. 따라서 타인을 신뢰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공동체 감각이란 자기 수용과 타자 신뢰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 공헌’도 필요하다.

아들러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사회에 지나치게 적응한 사람”이라며 거리를 둔다. 타자 공헌이란 ‘나’를 버리고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로 자리매김을 한다.


노동을 통해 타인에게 공헌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며,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단다.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받아들이게 된다. 일의 본질을 타자 공헌에 두면서 그것이 ‘나’의 가치임을 주장하기 위해 “화폐는 주조된 자유”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가져온다. 더 이상 일을 안 해도 되는 백만장자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어도 좋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소속감을 확인받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인정 욕구를 통해 얻은 공헌감에는 자유가 없단다. 우리는 자유를 선택하면서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주장을 부박하게나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에만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인 ‘공헌감’만 있어도 충분하다. 아들러는 이러한 공헌감을 행복이라고 정의한다.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우월감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자유로운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평범해질 용기“가 필요하다. ”평범해질 용기“란 도리어 그러한 목적을 위한 노동(키네시스적 인생)”이 아니라 바로 “지금과 여기”라는 현재를 살아가는 “놀이(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의 삶을 말한다.


말하자면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인생은 키네시스kinesis적 인생이라고 할 수 있고, 춤을 추는 인생은 ‘에네르게이아energeia적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 텔레스 따르면 일반적인 운동 이를 케네시스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시점과 종점이 있다. 따라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여정은 불완전하다. 반면에 에네르게이아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된 운동을 가리킨다. 달리 말하면 ‘과정 자체를 결과로 보는 운동’으로서 춤을 추는 것이나 여행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라


과거의 삶이나 미래의 목표에 초점을 둘 때, 지금 여기의 현재의 삶은 그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게 될 수밖에 없다.

“삶은 현재의 연속이다. 과거로 현재를 구속해서도, 미래로 현재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현재가 모여 미지의 목적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라는 아들러의 생각은 인생에 있어 의미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데, 그게 바로 나 자신밖에 없다고 언급한다.


자유를 선택할 때 인간이라면 헤매게 되는 게 당연하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지침으로 ‘길잡이引導 별’을 제시한다.


“우리 인생에도 ‘길잡이 별’이 필요하네. 그 별은 이 방향으로 쪽 가다 보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절대적인 이상향이라네.”

-『미움받을 용기』, 252쪽


그 별이 ‘타자 공헌’에 있다고 갈파한다.

선처럼 보이는 삶은 점의 연속, 인생이란 찰나(순간)의 연속이다. ‘지금’이라는 찰나의 연속이어서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이란 찰나 안에서만 존재한다.

이 책은 철학자의 입을 빌려 줄곧 아들러 사상을 전파한다.



찰나인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춤추고, 진지하게 사는 걸세. 과거도 보지 말고, 미래도 보지 말고, 완결된 찰나를 춤추듯 나는 거야.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도 필요 없네. 춤추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 테니까.

-『미움받을 용기』, 318쪽



준비를 더 해야 한다는 P님과 무엇인가 엉켜있다고 힘들어하는 K님에게 아들러의 희망을 전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타인에게 공헌한다는 길잡이 별”을 놓치지 않는 것.

세상이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관점을 통해서 바꿔 나가는 것이라고

아들러는 외친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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