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깨끗하게 가렵니다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가 더 이상은?

by 진순희

참, 참, 참 ~~

아이들이랑 수업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말들을 해서 나를 어이없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기특한 대답을 해서 나를 먹먹하게 할 때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일요일 한 시팀 수업을 할 때였다.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를 읽고 토론에 들어갔다.

나: 하리하라가 의미하는 게 뭐지?

태은: 인도 신화의 두 신이 결합한 거예요. 창조와 생명의 신인 ‘비슈누’와 종말과 파괴의 신 ‘시바’의 결합형이 바로 하리하라하고 해요. 제 생각에는 과학의 양면성을 보여주기 위해 지은이가 ‘하리하라’를 끌고 온 거 같아요.


나: 오! 과학의 양면성까지 ~~ 멋지군~~



정확하게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독서 퀴즈 문제를 내고, 좀 더 깊이 있는 읽기를 하기 위해 심화 문제도 내서 능동적인 책 읽기가 되도록 했다.


평상시처럼 토론거리들을 몇 가지씩 찾아오게 해서 서너 개로 추린 다음 토론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열띤 토론의 장으로 이끌게 한 것은 태은이가 갖고 온 <죽음 같은 잠, 생체 냉동> 편이었다.

책에 소개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캐나다에서 13개월 된 아기가 영하 20도의 날씨에 기저귀만 찬 채로 나갔다가 10시간 만에 발견됐다. 잠들어 있다 깨어보니 엄마는 옆집에 가고 없었다. 아기가 엄마 찾으러 밖으로 기어 나왔다가 눈에 파묻혀버렸다. 구조대가 출동해 10간 만에 찾아낸 아이는 이미 꽁꽁 얼어붙어 있어서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누구도 살아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는데 의료진들이 언 몸을 녹여주자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다. 손과 발에 동상을 입은 것 외에는 정상적으로 움직였단다.

냉동 인간은 영화나 SF 소설에서 많이 다뤄졌다. 더 이상 낯선 주제가 아닌 것이 되었고, 실제 현실에서 인간의 난자와 정자, 수정된 배아까지 냉동에 성공했다.

죽음이 두려운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해 냉동인간 corpsicle을 꿈꾸게 되었다. 저온 생물학 cryobiology의 힘을 빌어 현실화되고 있는 추세다.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에 따르면 저온 보존이나 저체온 수술, 인공 동면 등을 기본 골자로 해서 연구되고 있단다. 생식 세포나 수정란의 보존과 같은 ‘저온 보존’과 저체온 수술은 현재 시도되고 있다. 그에 비해 인공 동면은 아직 시험 단계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인공 동면 기술을 이용한 냉동 인간에 주목하는 이유는 현세에서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더라도 기술이 진보한 미래에는 고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란다.


삶이 영원토록 지속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장수할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될 그날까지 기다리지 않을까?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만 있다면 꽁꽁 얼려서 집어넣더라도 그런 편을 선택하지 싶다.

다음 문장은 태은이가 갖고 온 토론 논제이다.

<만일 불치병에 걸렸을 때 냉동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면 쓸 것인가, 쓰지 않을 것인가?>


매사에 적극적인 영지는 그 기회를 쓰겠다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은 계속될 것이다. 불치병에 걸렸다고 계속해서 나의 미래를 걱정하며 살 수는 없다. 그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냉동 인간이 되어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건강한 몸으로 변신할 핑크빛 미래를 기대하며 기꺼이 깊은 잠에 빠지고 싶다.


언제나 똑 부러지고 자기 앞가림 잘하는 채림이는 쓰지 않는 걸 선택하겠다고 했다.

쓰지 않겠다. 미래에 다시 깨어나도 치료법이 있을 거란 보장도 없다. 차라리 마음의 준비를 하며 가족들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의미 있게 살다 가겠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지금 내 삶에서 관계들이 떨어져 나가는 게 두려워서 일 것 같다. 그런데 냉동 인간이 됐다가 깨어나면 내 원래의 삶은 이미 남아 있지도 않을뿐더러, 친구나 가족도 다 가버리고 없을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 다 죽고 없는데, 그때 지구 상에 나만 홀로 덜렁 남아 있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영지 옆을 보니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혜린이가 보였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지 아닌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혜린아 네 생각은 어때?


했더니 그제서야 “저요?” 한다.


"그래, 냉동 인간이 될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건데?" 했더니

잠시 생각하는 척도 하지 않고 곧바로


“저는 그냥 깨끗이 갈 겁니다. 아휴, 뭘 구질구질하게 더 살려고 해요? 불치병 걸렸다면서요?

그저 갈 사람은 빨리빨리 가줘야 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가 생각하기에 냉동 인간이 되고자 하는 시도를 그저 욕심 많은 어리석은 사람으로만 봐서는 안 되지 싶은데?”


“그럼, 선생님은 냉동 인간이 되고 싶으세요?

“아니 이 사람아? 내가 질문한 거잖아.”


“저는 갈 때 되면 깨끗이 미련 없이 가는 게 인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이지요. 생명이 유지되는 시간도 한정이 되어 있으니까, 우리가 노력하면서 사는 건 아닐까요? 천년이고 만년이고 죽지 않고 영원히 오래 산다면 그날이 그날인 것 같아서 재미가 덜할 것 같은데요. 긴장도 안 하고 살 것 같아요.

마르고 닳도록 산다면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가 더 이상 안 나올 것 같은데요.”

“혜린이 이제 보니 완전 철학자네. 생각도 깊고 아주 독창적이야.”

“뭐 이런 것을 가지고 그렇게 놀라셔요. 제가 원래 한 클라스합니다. 클라스가 다르지요.”

“그래, 정말 다르긴 하네.”

이렇게 말을 하며 토론에 참여한 아이들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논술할 때는 자신들이 말하고 쓴 것이 정답이니까 매사에 자신감 있게 쓰고 말하라고도 했다.

다만 타당한 근거와 신뢰성 있는 논거를 갖고 와야 정답이 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아이들이랑 수업하다보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

생각지도 못한 말들을 해서 내게 자극을 준다.

나를 다시 한번 가다듬게 하는 스승의 얼굴로 다가온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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