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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23. 2021

같은 이과니까 괜찮은 줄 알았죠

시험이 얼마 안 남아서 아이들에게 매일 학교 끝나고 와서 기출문제를 풀게 하고 있다.

전국의 학교들을 샅샅이 뒤져서 출력해 3공 링에 다 정리해 놓고 오는 대로 풀고 채점한다.  

문제 풀고 틀린 것 해제하고 교과서 다시 보고 계속 반복하고 있다. 이제 거의 다 메꿔져서 아이들이 두세 개 밖에 안 틀릴 경지에까지 올라왔다.     



중2 재현이가 4시쯤 와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다는 듯이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월요일이 시험이다 보니 수학 시간에 선생님께서 자습서나 평가 문제집 풀어도 된다고 했단다. 재현이에게 들은 바는 다음과 같다.      



재현이는 7시에 과학 학원 가야 되니까 수학  시간에 과학 자습서를 펼쳐놓고 풀었다. 갑자기 선생님께서 오시더니 소리 지르며 자습서를 확 빼앗아 버렸다. 종이 울리자 이건 압수야! 하더니 교무실로 쏙 가버렸다.      

재현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너무 황당해서 물어봤다.  

    

아니 어쩌자고 수학 시간에 과학 문제를 풀었어?

예의가 너무 없네. 해도 해도 너무해.      


왜요? 같은 이과니까 풀어도 되는 줄 알았지요. 수학 선생님이 잘못한 거지 제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처음부터 과학은 안 된다고 했으면 안 꺼냈을 거 아니에요. 저녁에 과학 학원 가야 하는 데 그럼 어떡해요. 숙제 안 했는데  잘됐지 뭐예요.      


아니 뭐가 잘 됐어? 과학 자습서 뺏겼다며?     


뺏겼으니까 숙제 안 해가도 되잖아요. 저한텐 개 이득이죠. 학원에다 말하면 돼요. 숙제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할 거예요.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참 내, 다음 주 화요일에 시험이잖아. 책이 없으면 너만 손해지. 시험공부를 할 수가 없잖아?  

   

재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듣고 있던 아이들이 재현이를 엄청 부러워했다. 이렇게 반응하는 아이들을 보자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재현이 쟤는 숙제 안 해 가도 되잖아요. 개 이득이네. 개 좋아. 개 부럽네.   

   

좋아도 싫어도 잘해도 못해도 꼭 앞에다 ‘개’를 붙인다. ‘개’를 남발하고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단어가 ‘개’ 하나로 통일해서 말을 하고 있다.      

자습서를 뺏기고 나서 기분이 나쁜지 재현이가 계속 수학 선생님 성질이 더럽다고 투덜댔다. 옆에서 듣고 있던 승준이가 말을 건넸다.      


찢지는 않았어? 우리 반 가르치는 00 선생님은 다른 반에 가서는 찢어버렸다는데. 개 무서웠대. 아무튼 뭐, 재현이 너는 숙제 안 해가도 되니까 좋겠다.

      

승준이가 다시 한번 재현이가 '개' 부럽다며 내게 동의를 구했다.

 

과학 숙제 안 해도 되니까 재현이는 좋겠어요. 대신 재현이는 국어 숙제 많이 내주세요 한다.      


말에도 품격이 있다고 야단을 치면서 그렇게 정제되지 않은 말을 마구 쏟아내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했다.      



출처: Pixavay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니까 공부 재능이 없을 수 있어. 흥미를 잃을 수도 있고.
유튜브의 조승연 작가 강의 들어보니까 공부 못해도 savvy한 사람은 성공한다고 하더라.
‘눈치 빠르고, 현실 감각이 있는, 사회생활 잘하는’ 이를테면 예의를 지키면서도 요령 있게 행동을  잘한다는 거지.     
수학 시간에 과학 문제집을 떠억 하니 꺼내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누.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는 말도 있잖아.


공부 잘 못해도 눈치가 빠른 쌔비한 사람이 돼야 해 했더니 ‘젓갈’이 뭐냐고 속사포처럼 질문이 들어왔다.

산 넘어 산이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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