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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26. 2021

말썽쟁이가 큰 일을 냈다

왜 있지 않은가?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손에 쏙 들어오지 않는 아이 말이다. 현준이가 그랬다. 인근의 다른 학원 원장님이 소개해서 들어온 아이인데 부모님이 두 분다 서울대 출신으로 00 로펌의 변호사라고 했다. 게임만 해서 학부모들이 현준이랑 같은 팀을 하는 것을 꺼려하는 아이인데 당신은 그 아이의 잠재력을 믿는다고 했다. 공부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단어도 다른 아이보다 빨리 암기를 하고 문제도 눈치가 있어서 잘 푼다고 했다.

    


현준이를 가르치는 동안 시간과 마음을 아주 많이 썼다.   학원에서 하는 건 주1회 수업하지만 주 중에 한 번 더 불러서 숙제도 학원에 와서 하게 한다. 집에서 하겠다는 아이가 있으면 숙제 검사라도 하느라 한 번 더 오게 한다. 중간에 점검하는 날이 있으면 아이들이 수업 전에 바로 숙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점검하는 날 바로 전에 하게 된다. 그래서 꼭 오게 하는데 현준이는 미꾸라지처럼 쏙쏙 빠져나갔다. 저만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친구도 PC 방에를 데리고 가서 다른 어머니께서 숙제 검사하는 날을 현준이랑 겹치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도 받았었다. 현준이를 가르치려면 완전 보살이 되어야 했다.

           


그런 현준이가 국어 역사 모두 백점을 받아왔다.

전화를 해서는 “선생님, 제가 해 버리고 말았네요.”라고 말을 했다.      

못 알아듣고는 “국어 시험 어땠어?” 했더니  

   

“제가 쌍백점을 맞아버렸네요. 국어랑 역사 다 백점 맞았어요.”     

얼결에 “어머, 네가? 진짜?”  

   

진짜라니깐요. 국어. 역사 다 백점이에요.     


현준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백점 맞아 신이 난 아이한테, “네가? 진짜?”라니 급 반성을 했다. 얼른 표정관리를 하고는 현준이 축하한다고, 잘했다고 수습을 했다. 그러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쌤이 문제 동향을 봐야 하니 시험지를 가져오라고 했다. 실은 못 믿어서였다. 그런데 현준이가 자랑이 하고 싶었던지 벌써 친구랑 학원 문 앞에 와 있었다.   

   

다섯 명 한 팀에 세 명만 백점 나와도 피자 두 판을 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시험지를 보자마자 “쌤이 그냥 두 판 쏠게. 현준이가 너무 잘해줘서 쌤이 쏠게” 했다. 어머니께 전화는 드렸어? 했더니 아니요, 저녁에 오시면 말할 거예요 하기에 빨리 전화드려.


기쁘고 아름다운 소식은
초를 다투어 보내야 해.
 시험지는 분석해야 하니까
학원에 기증하고,
내일 시험 잘 보라며
 덕담을 하고 보냈다.  

     


어제 아이들 보내 놓고 정리를 하는 데 기출문제랑 국어 카페에서 뽑은 문제랑 나무 경영아카데미에서 출력한 문제지들이 탑처럼 쌓였다. 주석 교과서를 링제본 한 거랑 프린트만 빼고 그동안 풀었던 링제본 묶은 것을 다 빼서 테이블에 모아두니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극성 맞게 많이도 풀게 했다. 안 외워진다는 아이들한테 내 것으로 되려면 적어도 76번은 암기해야 한다는 교육학 실험 결과를 알려주며 독려했다. 신이 감동하도록 공부를 해보자고, 그래도 안 되면 그거야 말로 신의 영역이니까 그만 해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76번 정도 하면 다 되니까 그 반절만이라도 하자고 계속 격려를 했다.  

    


떡볶이를 끓여 먹이면서 때로는 컵라면으로, 꼬마 오븐에 빵을 구어 핫초코랑 먹이며 붙들어 놓고 시켰다. 그것도 못 하는 아이한테는 강남 인강 배속을 빨리 해서 노트에 정리하며 듣게 했다.  공부할 내용이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뇌에 스며들도록 했다. 출판사 사이트에 들어가 PPT 자료를 다운받아 그 PPT 보면서 스토리텔링으로 말할 수 있도록 했다.  키높이 책상에 책을 갖다 놓고 칠판에 판서하면서 자기 스스로 설명하게도 했는데 아이들이 이걸 굉장해 좋아했다.  

목이 쉬도록 설명을 하고 깔끔하게 외우지 못하는 아이들은 다시 불러다 가르쳤다. 어제 밤에도 열시 반에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부터 쿱타까지 반복해서 설명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목소리도 안 나오고 몸이 부은 듯 무거웠다.


현준이의 때아닌 굿뉴스로 그동안 현준이 가르치며 애가 타던 생각은 다 사라져 버리고 흐뭇했던 기억만 떠올랐다. 현준이는 나무한테 미안할 정도로 출력해준 문제들을 70% 정도밖에 못 풀었다. 그것도 싸우듯 야단쳐가며 다독이며 롤러코스트 타듯 현준이와 씨름을 했다.


현준이가 공부는 안 해도 유쾌해서 친구들이 좋아했다. 4차원 같은 대답을 해 웃게 만들었던 기억만 떠올랐다.  결과가 좋으니 힘들었던 과정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제 때 오지도 않고, 숙제도 안 해오고, 남겨서 시키면 아예 자버리고,  시간도 잘 안 지키며 말썽만 부리던 현준이가 정말 큰일을 냈다.

현준이 말마따나 “큰일을 내버렸다”.


가족들과의 저녁 모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내 마음은 평온하다.

아이들이 잘해줘서도 뿌듯하지만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흡족한 상태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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