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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n 12. 2021

원장님 반에 어떻게 가요? 『다윈 지능』

현준이가 수학학원을 그만뒀다. 지난 중간고사 시험을 잘 봐서 하등의 그만둘 이유가 없는데 그만둬버렸다. 그만 둔지도 몰랐는데 수학학원 원장님께서 연락을 해왔다. 현준이 어머니께서 보낸 문자까지 캡처해서 보내왔다.      


내용인즉 현준이가 수학 학원 쉬고 싶다고. 쉬면 다시 못 들어간다고 했는데도, 일단 그만 쉬겠다고. 매번 지각하고 수업 분위기 흩트려놓아 죄송했다고. 여러 모로 신경 써주셨는데, 정말 죄송했다는 내용이었다.    

  

수학 원장님은 고등부만 수업을 해왔는데 이번에 중등부도 한 반 맡아서 하고 있다고 했다. 현준이가 오면 당신이 맡아서 가르칠 거라고도 했다.

그러지 않아도 틈만 나만 우리 학원에 학생들을 소개해 보답할 길이 없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내가 나서보겠노라고 자청했다.      

 

저녁에 수업하러 현준이가 왔기에 수학 학원 왜 그만뒀냐고 했더니 지쳐서 그만 다니고 싶단다.  

 

지난 금요일에 수학 학원 그만두고 뭐했는데?    

 

PC방이요. 노는데 조금 불안했어요.    

  

수학 원장님께 다시 전화드려서 다니겠다고 하셔.   

  

그만뒀는데 어떻게 다시 다녀요?    

 

원장님이 너 딱 붙잡고 가르치시겠대. 그러니 다시 가셔.    

  


원장님 반엘 어떻게 다녀요?
다시 가더라도 원장님 반에는 안 갈 거예요.
 원장님 반으로 가면 저 가르치던 쌤은 뭐가 돼요.
쌤이 못 가르쳐서 원장님 반에 갔다는 걸로 되잖아요.
저는 그렇게 못해요.
아무튼 이제 쉬고 싶어요. 지치기도 하구요.     


 

안 가겠다는 아이를 앉혀놓고 설득했다.      


현준아 우리 아들들 키울 때 난 학원에 크게 기대하는 게 없었어. 나처럼 일하는 여성들은 아이들이 안전한 곳에 있으면 그걸로 땡큐야. 공부는 어차피 지가 하는 거고. 막말로 학원에서 수강료 받고 가르치는 데 엉터리로 하겠어? 현준아 어머니께서 강단에 계시니까 연구하실 수 있도록 네가 안전한 곳에 있어야지.   



월요일에 가겠다며 현준이가 옆에 있던 절친 민태도 꼬드겼다.

수학 원장님께 이 상황을 다 전했다.

전화기 너머로 탄성이 들려왔다. 공통의 화제로 현준이 얘기를 했다. 그 어린 친구가 남까지 배려하고 속이 꽉 찼다며 덕담을 나눴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이 지역에서 수학이랑 국어 꽉 잡고 서로 잘해보자며 훈훈하게 마무리를 했다. 그런데 월요일에 다시 수학 원장님한테 현준이가 안 왔다는 문자가 왔다.    

  

현준이가 갈 거라고, 안 다닌다고 했다가 다시 가는 거에 대한 민망함이 있는 것 같긴 한데, 갈 거라고 안심을 시켜드렸다. 일요일에 오면 다시 말해보겠노라고도 했다.

그런데 희소식이 있었다. 오늘 현준이 어머니께서 현준이 다시 다닐 수 있겠냐고 문자가 왔단다.

국어 원장님 덕분이라고, 열심히 하겠노라고 현준이가 다시 다니게 된 것에 대해 내게 공을 돌렸다.    

  

수학 원장님의 열성적인 모습을 보 급 반성을 했다. 아이가 그만둔다고 하면 나하고와의 인연이 여기까지 인가보다 하고 쉽게 마음을 접었다. 다른 학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한테 안 배우면 지네 손해지 하는 소심한 베짱이 있었다. 자기애가 누구보다도 강한 나는 , 공부하러 올 아이들이 정 없으면 책 읽고 글 쓰면 되지 뭐 하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학생 하나 그만두면 애달아하고 다시 다니도록 전방위로 노력을 해서 그런지 수학 학원은  1타 강사가 운영하는 학원처럼 아이들로 미어터졌다. 콩나물시루처럼 아이들로 꽉 찼다. 수학 원장님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애를 써야 제자리도 유지하고 앞으로 나아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미치자 최근에 읽은 ‘붉은 여왕’이 떠올랐다.  

최재천 교수의 『다윈 지능』의  「눈먼 시계공」 편에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겨울 나라의 엘리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앨리스가 붉은 여왕에게 손목을 잡힌 채 큰 나무 주위를 도는 장면이 나온다. 한참을 헐레벌떡 뛰어도 항상 제자리에 서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앨리스에게 붉은 여왕은 아무리 달려도 주변 세계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고 말한다. 밴 베일런이 바라보는 진화는 다분히 비관적인 개념이다. 진화란 제법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획하고 준비하는 게 아니라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저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다.

-『다윈 지능』, 99쪽      





고1 학생들에게 내가 건네는 말이 있다. 공부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는 아이들이 많은 지금 , 열심히 공부해야지 고3 때면 힘들다고 엄포를 놓는다. 아무리 달려도 주변 아이들이 모두 달리고 있으니 지금 여기 이때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자리라도 지키려면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해야 하니까 고1인 현재 달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준이가 원장반에는 안 들어가고 본래 자기가 있던 반으로 들어갔다. 원장님 반엘 어떻게 가겠냐고 했던 ‘의리의 현준’이는 원래 반으로 들어가 잘 다니고 있는 중이다.

수학 학원이 제자리를 지키고 유지하도록 현준이가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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