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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y 16. 2021

내 삶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치우며

『죽은 자의 집 청소』,  산 자의 마음 청소

책을 읽다 보면 간간히 어떤 책은 유난히 내게 친절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문체가 몽글몽글한 경우나 내용이 카스텔라 씹을 때처럼 부드럽고 달달할 때 그런 기분이 든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왠지 친근감이 들었다. 여러 곳에서 이 책을 갖고 독서 모임을 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런가 보다. 『죽은 자의 집 청소』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미 읽은 것처럼 익숙했다. 게다가 김완 작가는 지난주에 읽은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에 “오늘 세상은 당신에게 친절한가?”라는 추천의 글을 통해 이미 눈여겨봤었던 터였다.      


추천사의 실린 문장이 빼어나서 다른 공책에 옮겨 적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그날 그곳에 일어난 일이 지금 여기에서 안락한 내 마음을 상상의 검은 피로 물들이고, 절망의 화염으로 불 붙이고, 죽음의 벼랑 끝까지 위태롭게 몰아세운다.”가 그것이다. 시를 전공한 저자답게 문장 구사력이 탄탄하다.

“상상의 검은 피로 물들이고, 절망의 화염으로 불 붙이고”와 같이 은유와 대구법을 활용했음은  물론이고 종결어미 ‘~고’를 사용해 전체적으로 문장의 리듬감을 살리고 있다. 리듬감은 읽는 이의 잠자고 있던 감각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의 작가 에디트 에바 에거는 유대인 대학살의 홀로코스트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사람이다. 과거로부터 숨어버리기로 결심했지만 임상 심리치료사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있다.

김완 작가는 이 책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의 추천사에서 “오늘 세상은 당신에게 친절한가? 세상의 태도는 나에 관한 내 믿음에 달렸다. 정작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친절한가”라며 우리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죽은 자의 집 청소』 1장 「캠핑 라이프」.

특수 청소부인 저자에게 맡겨진 곳은 자살한 젊은 여성의 원룸이었다. 자살 현장에서 마주한 연분홍색의 텐트. 짐이라곤 천장과 바닥을 잇는 금속 봉으로 이루어진 옷 보관 랙뿐이었다. 베란다에는 그녀의 모든 살림을 옮길 수 있는 다섯 개의 납작한 박스가 전부였다. 잠시 머물고자 꾸민 텐트 외엔 그 흔한 티브이도 화장대도 없었다. 도시가스 공급 관에 목을 매 자살한 그녀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연분홍 텐트의 정수리였을 거라고 저자는 추측을 한다. 텐트 뒤에서 발견했다던 그녀의 책 제목을 읽는 순간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나 읽힐 법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참 소중한 너라서』, 『행복이 머무는 순간들』, 『아주, 조금 울었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였다.      

가혹한 세상에선 참 소중한 너가 될 수 없었기에 그녀에게 행복이 머무는 순간들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는 더더욱 없었다. 내 마음도 몰라주는 세상에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내 마음도 모르면서’ 한탄하며 아주 조금 울었으리라. 그리곤 생을 놓았을 것이다.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기에 죽음을 선택했으리라.


『분리수거』는 자살 직전에 분리수거까지 하고 죽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에게 친절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택한, 착하디 착한 여성에게 작가는 애잔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녀를 스스로에겐 착하진 못한 사람이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착화탄으로 실수 없이 죽기 위해 청록색 천면 테이프로 창문마다 꼼꼼하게 막아놓았다. 하다 못해 화장실이나 싱크대의 배수구까지 집안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찾아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착화탄이 재로 남으려면 분명 라이터 같은 점화장치가 있어야 했는데, 그녀는 그 점화 장치마저도 가정용 분리수거함에 종류별로 다 구분해서 넣어두고 자살을 했다. 금속 토치램프와 부탄가스 캔은 철 모으는 칸에, 화로의 포장지 택배 상자는 납작하게 접어 종이 칸에, 부탄가스 캔의 노즐 마개는 플라스틱 칸에 가지런히 정리해놨다.  

    



건물 청소하는 이에 따르면 죽은 301호 아가씨는 너무나도 착한 사람이었단다. 그 착한 여성은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자신을 공격함으로써 생을 마쳤다.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기 못하고 도리어 자시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라고 저자는 애통해한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 『죽은 자의 집 청소』, 27쪽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느끼는 지금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 스스로를 해치는 자살은 개인적 병리 현상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행위라고 이미 100년 전에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간파한 바 있다. 뒤르켐 이전에는 자살을 인종이나 기후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설명해왔다.  

   

개인이 서로 유대를 맺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는 슬픔을 나눔으로써 유대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형태의 자살은 이기적 자살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기주의는 자살에 기여하는 요인일 뿐만 아니라 자살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다. 이 경우에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유대가 느슨해짐으로써 삶과의 연결 고리 역시 약해진다. 사생활 문제가 자살의 직접적 계기이자 결정적 원인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우발적인 원인에 불과하다. 개인이 사소한 충격 상황에서도 자살하는 것은 사회가 그를 자살의 쉬운 먹잇감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 『자살론』, 269쪽 중에서       

 


『자살론』에 따르면 사회적 힘이 개인의 자살률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이기적 자살’은 사회적 통합 정도가 낮고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과의 결속이 약하거나 깨져서 고립되어 있을 때 많이 나타났다. 사회적 환경과 자살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며 “사회적 묵인과 무관심”이 사회적 연결고리가 약한 구성원들을 자살로 이끈다고 피력했다.      


저자는 뒤르켐처럼 죽음을 순수한 자살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생을 저버리는 것은 자신이겠지만 “전기를 끊는 행위는 결국 죽어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권유 타살은 아닐까?”라며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는 입장을 보인다.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장의 아홉 번째 글인 『서가』를 읽으며 남의 일 같지 않아 심란했다.

“고령의 책과 갓 태어난 신간까지 한 시렁에 나란히 품고 있는” 서가書架. 오십여 년의 세월이 뭉뚱그려진 서가를 보며 저자는 “그 주인의 십자가 같은 것은 아닌지” 되뇌인다.

책에 헛헛증 걸린 사람처럼 책을 사 모은다. 아니 갈퀴로 그러모으듯이 책을 산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욕망은 크게 없는데 책에 관해서는 쓸데없이 과욕을 부린다. 책이 넘쳐나는데도 욕심을 내어 서평단 활동도 놓치지 않고 있다. 순전히 그놈의 책이 좋아서이다. 읽지 않아도 만지기만 해도 흐뭇하다. 아니 흡족하다 못해 든든하다. 그런데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평온하게도 하는 내 책도  내가 떠난 두에는  천덕꾸러기가 되겠지.  내 서가도 「서가」에서처럼 다 해체되고 없어져 버리겠지. 보잘것없는 회색재로 남겠지.     

 

호모 파베르인 도구적 인간이 지성을 이용해 자살 도구를 고른다는 내용도 서늘했다. 호모 파베르는 앙리 베르그송이 인간의 특성으로 천착했었다. 베르그송은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특성을 지성으로 봤다.  그는 ‘호모 파베르’의 지성이 인류를 성공으로 이끌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류사회를 해체로 이끌 위험한 요소라고 봤다. 김완 작가는 죽은 자의 직업과 자살할 때 사용한 도구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기술한다.      

IT 엔지니어는 ‘랜선’을 이용해 목을 매 자살을 하고, 학교 과학실에 화학 실험용 약품을 납품하는  회사 대표는 화학 약품을 팔에 주사한 뒤 피를 토하고 죽고, 농부는  맹독성 농약인 ‘그라목손’을 마시고 목숨을 끊는다.

     

자살에 쓰인 도구를 발견할 때면 고요했던 내 마음에 한순간 파고가 일렁인다. 또 그것이 죽은 이의 직업과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깨달으면 심란해지고, 양가적인 감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런 자살 도구는 죽은 이가 맞닥뜨려온 하루하루의 일상과 생계를 밝히는 수단인 동시에, 죽음에 이른 과정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집 청소』, 236쪽  


         


김완 작가는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하며 내 삶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으로 확장한다.

죽은 자들이 남겨 놓은 쓰레기를 치우며 정리하는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남기고 또 어떻게 남기고 떠나야 하는 것인지?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슬프고 안타까운 현장에서도 ‘인간다움’을 놓지 않은 어느 특수 청소부의 기록”이라고 띠지에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다.


저자가  죽은 자의 입장에서 위로를 하고 치유를 하고 있어 따뜻함이전해졌다

죽은 자의 삶에 대한 기록이지만 오히려 지금 이곳에서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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