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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y 13. 2021

“어린 ‘이’”에 대해 다시한번생각해보다

한 사람의 몫인 어린이에 관한 『어린이라는 세계』


요즘 글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좋은 에세이를 만나는 그 순간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가 그랬고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도 내게 잔잔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홍승은 작가의 에세이는 동사의 활용이 다채롭고, 문장을 전개하는 힘이 느껴져서 좋았다. 김소영 작가의 글은 에세이도 논술처럼 쓰게 되는 나의 글 습관을 고칠 수 있게 해서 의미가 컸다. 특히 내게만 소곤대며 말을 건네는 것 같아서 책 귀퉁이에 느낌을 써가면서 읽었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김소영 작가처럼 아이들 독서 교실을 운영하고 있어서 책에 소개된 경험들이 남의 일 같지 않고 친근했다.  

1부에 실려 있는 「선생님은 공이 무서우세요?」에는 어린이들의 허세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무용담을 자랑한다. 가령 책 속의 아람이는 피구 할 때 공을 이십 번도 넘게 피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을 한다. 팀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든가, 날아오는 공을 연속으로 피했다는 모험담 같은 것을 쉬지 않고 쏟다 낸다.  이 부분을 읽다가 우리 학원의 연지가 떠올랐다.     



 


연지는 해외에서 사오 년 살다 왔는데, 항상 먹을 것을 잔뜩 사 갖고 왔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욱 나눠줬다. 계란 프라이처럼 생긴 커다란 젤리를 사 오는가 하면 락앤락 통에 사과를 짓씹어놓은 듯 아주 잘게 썰어 와서 먹으라고 해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지난겨울이었다. 한눈에 봐도 기계로 짠 장갑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한 땀 한 땀(실제 연지가 이렇게 표현했다) 짠 거라고 했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하려다가 “아이구 대단하네. 연지야, 이 장갑은 꼭 기계로 짠 것처럼 정교하네. 다른 사람은 못 믿을 거 같으니까, 선생님이랑 말할 때만 네가 짰다고 해.” 했더니 연지 대답이 황당했다.     

 

“네. 천군마마를 얻은 것처럼 저는 좋아요” 한다.

     

느닷없이 ‘천군마마’를 얻은 것처럼 좋다고 했다.

‘천군마마’도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하지 않고 연지가 다른 날 왔을 때 알려줬다. ‘천 명의 군사’와 ‘만 마리의 말’ 이렇게 짝을 이뤄서 어휘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니 눈을 반짝이며 천군마마라고 했던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이들은 자기의 능력도 과시하려고 하고 분에 넘치게 어려운 말 쓰기를 좋아했다.

가령 내가 딸기잼 병을 못 따서 쩔쩔매고 있으면 얼른 나서서 따려고 했다. 5학년 현우가 낑낑대다 간신히 열었다. 현우도 힘들게 딴 것이었는데도, 뚜껑이 딱 열리자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곤 한 마디 한다. 다른 사람들은 천신만고 끝에 열었을 거예요.  선생님 그거, 요령이 있어야 따는 거예요. 하면서 과학적인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2부 「위로가 됐어요」에서도 감동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5학년 주이는 일요일인데도 영어 공부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 한 분이 ‘일요일인데 공부하느라고 힘들겠구나’하는 말을 듣는 순간 위로받았노라고 말을 한다.     

 

“위로가 됐어요”라고 할 때 주이는 오른손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 장면이 이따금 생각난다. 평소 주이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린이에게는 어른들이 환경이고 세계라는 사실을 그날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어린이라는 세계』, 146쪽          



어린이에게 “어른들이 환경이고 세계”라는 말에는 그 의미가 주는 묵직함이 있다. 그 울림이 전해져 바른 어른으로 괜찮은 어른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 『어린이라는 세계』, 41쪽     



이 책은 시종일관 줄곧 어린이도 일 인분의 몫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전한다. 「한 명은 작아도 한 명」에서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우리를 설득한다.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박하는 것 같다.

- 어린이라는 세계』, 197쪽     




저자는 아이들의 돌발 행동은 통제 불능이어서가 아니라 감각이 다른 탓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며 그림책 작가 안노 미쓰마사의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를 인용해 설명한다. 어른보다  두 눈 사이가 좁은 어린이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범위가 좁단다. 아이들이 좌충우돌 사고를 치는 것도 사실은 공간 감각의 차이로 로 인한 것이란다.      


‘어리다’라는 형용사는 “동물이나 식물 따위가 난 지 얼마 안 되어 작고 여리다”란 뜻을 지닌다. 이 책을 통해 어린이는 ‘작고 여린 사람’ 일뿐이지 부족하기 때문 어른이 마음대로 대상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었다.

어린 ‘이’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며 “어른들이 환경이고 세계”라는 말을 가다듬어 본다.   


   


당신은 활이로다.
그 활로부터 당신의 어린이들은 달리는 화살이 되어 튀어나간다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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