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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l 23. 2021

원숭이도 쉽게 배우는 '모음 체계"

안팎으로 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한동안 방학 특강을 개설하지 않았다. 코로나의 장기적인 레이스로 반을 만들 수가 없었다. 특히 이번 방학은  더욱 그랬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연장 제안도 있는 마당에 특강 팀을 열기가 부담이 됐다. 게다가 이달 말까지 탈고해야 할 책도 있고 성인 대상의 책 쓰기 강의와 글쓰기 강의가 길게 잡혀 있어서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부랴부랴 방학 특강을 깔게 된 것은 새로 들어온 고3 학생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 알아야 할 기본 문법조차도 몰랐다. 예체능 준비하느라 학업에 쏟을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닌 일반고 학생인데 말이다. 어떻게 저걸 모를까 할 정도로 기본 실력이 쌓여있지를 않았다. 기본 개념조차 모르고 문맹 아닌 문맹으로 지냈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있는 중학생들에게 나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헛된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세월이 흐른 다음에라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문법 특강을 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학기 중에는 국어 문법을 통으로 한 권 나갈 수가 없다. 학교 시험은 문학. 비문학. 문법 파트를 섞어서 시험을 본다. 문법은 품사 부분이나 음운의 변동과 관련해서 정확한 발음, 문장 등 일부분 그 학기에 해당된 것만  시험 범위에 들어간다. 문법 전반에 관한 큰 흐름을 공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면에 문법 책은 모음 체계, 자음 체계와 음운의 변동이 들어가 있는 <음운>과 품사, 단어, 형태소가 포함된 단어의 짜임을 공부하는 <단어와 어휘> 부분과 문장의 성분과 문법 요소를 공부하는 <문장>과 한글의 창제 원리와 가치, 언어의 본질과 기능,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이 들어간 <언어와 국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학 때만 특별히 할 수 있는 공부다.   

   

방학식이 7월 20일인데, 18일 밤 12시에 구글 칸바로 수업 내용을 만들고 중학 국어문법 4주 특강 안내문도 작성했다. 19일 월요일 아침 10시에 학부모님들께 문자와 카톡을 날렸다. 1차 개강을 21 수요일 오전반과 24일 토요일 7시 타임을 개설했다. 방학 하기 하루 전에 공지를 해서 일정이 너무 빠듯했다. 방학식 바로 다음날 수업이어서 그런지 학부모님들의 문의가 없었다. 채연이 어머니께서만 진즉에 알려주시지 그랬냐? 영어 특강이랑 과학 특강을 다 잡아놔서 수. 토가 다 안 된다는 연락만 있었다.      


- 4주 동안 문법 책 한 권 떼려면 이렇게 달려야 한다




-자기 주도 학습할 학생을 위한 문법 일정표입니다. 교재- 동아출판사의 <빠작 중학 국어문법>


그 전날 활달한 준석이만 국어 학원에는 특강 같은 거 없냐고 지나가는 말로 물어봤다. 꼭 할 거라고 믿었던 은채도 토요일은 수학 특강이랑 겹쳐서 안 된다는 카톡만 왔다. 더 일찍 수업 안내문을 보냈어야 했는데 하는 잠깐이지만 후회가 됐다. 이번 문법 특강에 팀이 구성이 안 되면 말일까지 책이나 부지런히 마무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차에 경태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특강 신청한다는 전화인가 싶어 반갑게 받았더니 수행 평가 때문에 과학 점수가 1점이 부족해 A가 안 나왔다고 난감해했다. 전국단위 자사고는 물 건너갔다고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수행 평가를 다 해주는가? 아니면 그것도 사교육에 맡기는가? 내가 일을 하고 있어서 우리 경태를 써보트 못하는 건 아닌지? 너무 궁금하다며 한 번에 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잠자코 듣고 있다가 경태 어머니께 물었다.

전국단위 자사고 못 가면 어떠냐고?

아들들은 엄마랑 함께 있을 시간이 별로 많지가 않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얼마 안 있어 군대 갔다 오고 복학해 조금 있으면 취업 준비한다고 거의 밖에서 살다 시피하다가 취업한다. 직장에서 자리를 잡는가 싶을 때 결혼해 버리니까 정말로 엄마랑 함께 있을 시간이 많지 않다. 나라면 우리 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다 결혼시킬 거라고 했다.


수행평가만 해도 그렇다. 남학생들을 글씨를 아주 ‘그지’ 같이 써서 내용은 좋아도 수행을 말아먹는다. 지필 점수가 좋아도 성적표에는 대부분 점수가 낮게 나온다. 고등학교 가서는 프로젝트 탐구보고서 같은 것도 다 워드 작업하니까 굳이 필체 교정하는 학원까지 다닐 필요는 없다고 말해 줬다. 꼭 잘 쓰지는 않아도 크게 또박또박 써서 남들이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평소에도 너무 차분해 목소리에 변화가 없던 경태 어머니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맞아요, 우리 경태 글씨가 "그지 " 같긴 해요.   

  

경태 어머니 저라면 아이의 강점을 더 키우겠어요. 약점을 보강하는 것보다는요.     

경태가 주요 과목은 다 잘 나오잖아요. 특목고 진학할 때 주요 과목 성적 반영하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크게 신경 쓰시지 않아도 돼요 했더니 그제야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경태 어머니 본인도 과학고 출신이라 기숙사 생활한 경험이 있었다. 순등순등한 경태가 기숙사 생활하는 거는 아무래도 부담이 있는 듯했다.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눈 후에 집 가까운 데 있는 자사고 보내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이번 문법 특강을 몇몇 어머니들께서 등록을 하셨다고 하니 경태도 해야지요 하면서 다른 어머니도 소개를 했다.

수요일 수업 시작 하기 전만 해도 확실한 인원은 세 명 밖에 되지를 않았다. 다음 겨울 방학엔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참 귀한 기회인데 아이들이 수업을 못 듣나 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아침 출근길에 네 통이나 전화를 받았다. 아이들이 국어 학원에 특강 들으러 간다고 집을 나섰다고 했다. 학원에 들어서니 조금 있다가 은채도 현준이도 현경이도 왔다.    


반가운 것을 꾹 참고, 짐짓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체 뭡니까? 연락들도 없으시고?    

 

왜요~~ 우리가 와서 싫어요?

    

아니, 이 사람 들아! 수업을 듣는다 안 듣는다 분명히 했어야지.  

  

무소식이 희소식이에요. 저는 벌써부터 마음속으로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은채가 말을 했다.  

   

교재는 다 준비했고?     

그럼요. 저흰 크라스가 다릅니다. 준비된 학생들이죠.    

 

나만이 알고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의 모음 체계를 설명했다.

후설 모음을 평순에 있는 "ㅡㅓ ㅏ"와 원순에 있는" ㅜㅗ"를 "뜨겁다 우동"으로 읽고 전설 모음의 평순만 ㅣ로 바꾸고 나머지는 '뜨겁다 우동'을  그대로 적은 다음 전부ㅣ만 붙이면 된다. 이렇게 가르치고 종이에 써보게 하니 금방 암기를 했다.  단모음은 "혀의 앞뒤, 입술 모양, 혀의 높이"를 기준으로  나뉜다. 혀의 최고점의 위치가 앞에 있으면 전설前舌, 뒤에 있으면 후설後舌로 구분하고 입술 모양이 평평한가 둥근가에 따라서 평순과 원순으로 나뉜다.  혀의 높낮이에 따라 고모음, 중모음, 저모음으로 구분한다.   

이론으로 하면 여러 번 설명해야 하는 데 이렇게 "뜨겁다 우동"으로 외우게 하면 아주 쉽게 자기 것으로 만든다. 원숭이도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수월하게 배우는 모음 체계인 것이다.


단모음 10개를 "뜨겁다 우동"으로 암기한 다음에 이중모음 11개도 ㅣ계열과 ㅗ계열로 빠르게 암기시켰다.

문제를 받자마자 표를 그린 다음에 풀게 하니 짧은 시간 내에 다 풀어냈다. 아이들이 엄청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수업 시간에 늘 말을 많이 하던 은채까지 몰입하며 잘 들어서 수업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배고플 것 같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12쪽짜리 대왕 피자를 주문했다. 마침 오늘이 혜림이 생일이라고 해서 겸사겸사 시켜줬다. 문법 일정표만 보고는 숙제가 너무 많다고 하더니 모음 체계표 암기시키고 자음 체계표도 아주 쉽게 암기를 해서 그런지 문제도 술술 풀고 수업도 술술 풀렸다.


아이들을 보내 놓고는 감사한 마음이 절로 나왔다.  '건자 감' 독서 모임에 카톡을 올렸다.


참 감사한 날입니다
방학 특강을 안 하려다
어제 할 수 없이 개설했는데
수요일 아침반만 일곱 명이나 등록을 해서 방금 수업이 끝났습니다.
토요일반은 더 많이 등록을 했구요.
제가 뭐라고 이렇게 다 늙은 강사한테 등록을 해주다니요.
광고 하나 없이 수업 안내 문자만 보내도 등록해주는 학부모님들이 고맙지요.
감사 기도가 절로 나오는 날이에요.
더욱 조심하며 잘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


젊은 학우분들이 아낌없이 응원을 해줬다.

학교 선생님이신 달빛따라님은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느낌표 두 개를 팡팡 찍어서 보내왔다.

"멋지세요 정말~~
유비처럼님 말씀처럼 전성기를
살아가고 계시는 진선생님을 응원합니다!!




아이구 참말로 내가 뭐라고?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는가 싶어서 조금은 민망하기도 하면서  벅차올랐다.

이럴수록 몸을 피로하지 않게 하고 마음 흔들리지 지 않게 하고 천천히 산보하듯이 살아보리라 다짐을 해본다.  일터 한 귀퉁이에 나만의 작은 공간이 있다.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가는 집'인 '여유재'에서 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쓰는 이 순간이 고요하고 평온하다.

무로여형 무료여정 가이장생
- 너의 몸을 고단하게 하지 말고
-너의 마음을 흔들지 말라
-그러면 장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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