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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l 18. 2021

이번 한 번만 봐줘요-이성부의 <봄>

오늘은 남편의 칠십 번째 돌임과 동시에 공교롭게도 암 수술한 지 딱 10년째 되는 날이다.

큰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인해 생일을 생일답게 할 수가 없었다. 작년에 아들 내외가 아빠 칠순을 의미 있게 보내자며 미국행 패키지 여행권을 선물했었다. 사람이 시절 운도 있어야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 좋은 선물도 날아가 버렸다. 때 아닌 코로나로 할 수 없이 한 달만 연기했다가 아예 못 가게 되어 버렸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역병만 아니어도 생일을 잘 치르었을 텐데 생일상 하나 제대로 못 받고 지나가나 싶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지혜롭게 생일상을 차려줄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다가 방송에서 임미숙 김학래 씨  부부의 사연을 접했다. 방송인 김학래 씨의 환갑 때 그의 아내 임미숙 씨가 현금으로 6000만 원을 건네 외제차를 선물한 내용이었다. 또 쇼트트랙 선수 출신의 김동성 씨가 아내 인민정 님에게 돈 꽃다발을 건넨 소식도 들었다.

 

출처: https://news.nate.com/view/20210608n39754


김학래 부부의 스토리는 언감생심 따라 할 수는 없고 김동성 씨 부부를 보며 벤치마킹다. 꽃다발 속에 신사임당이랑 배춧잎 꽂아둔 것을 보며 우리는 저들 부부보다 연식도 있으니까 조금 더 마음을 썼다. 커다란 뷔페 접시에 신사임당을 넓게 펼쳐서 가지런히 담았다. 식탁 위에 준비를 해놓고 남편을 깨우러 갔다.      

잠들어 있는 남편을 보니 귓바퀴 주변까지 실주름들이 자글자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느 세월에 저렇게 늙어버렸나 싶어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특별하게 이뤄놓은 것도 없이 암에 걸려 투병하느라 속절없이 시간만 보낸 세월이었다. 잠든 얼굴을 들여다볼수록 가슴 밑바닥부터 슬픔이 차올라왔다. 이 좋은 세상에 제법 하니 살아보지도 못하고 병치레로 말년을  다 보내버리고 있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남편을 깨워 식탁으로 데려왔다. 커다란 뷔페 접시에 신사임당을 빼곡하니 펼쳐 머니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남편의 눈이 화들짝 놀라서 그 접시에 꽂다.

이성부 시인의 <봄>을 낭송했다. 특히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하면서 남편에게 돈 접시를 안겼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어서 그랬는지 늙은 신랑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 어리둥절해서 입까지 다물지 못하다가 상황판단이 됐는지 슬며시 웃었다.      


당신, 지금까지 살아내느라 애 많이 썼어요.

당신은 뭐든 잘 키워요. 식물도 잘 자라게 하고

아이들도 바르게 잘 키워서 제 앞가림하며 잘살고 있잖아요.

팔순 때는 좀 더 멋진 의식을 치러봐요.

암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 우리 낭군님!

그때까지 건강 잘 지키고 힘차게 살아내요.   

  

돈 접시를 받는 남편이 조신하게 두 손을 모아 받았다. 마치 상장받는 학생처럼 다소곳하니 고개 숙여 받았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밥을 먹으면서도 연신 내 밥그릇에 고기를 얹어놓았다.  

감정 표현이 서툰 남자의 출근하는 뒷모습이 경쾌했다.    

  

잘 다녀오세요~~ 평소 같으면 아무 반응도 없이 그냥 ‘응’하고

나갔을 사람이 “어, 그래. 당신도 오늘 재미있게 지내.” 하면서 집을 나섰다.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2년 가까이하고 있는 심리학 모임 <마음담론>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이번 한 번만 봐줘요.

오늘 남편 칠순이라 의식을 치러봤어요”

라며 남편이 돈 접시를 받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단톡방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J님: 와우!!! 머니 케이크인가요?

      넘 재미있어요!!     


H님: 이게 사랑인 거쥬?!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뭔가 눈물이 살짝... ㅠ   

  

S님: 넘 멋지군여~ 울 남편도 신사임당 겁나 좋아해서 사진 퍼서 보냈더니 ㅎ

       반띵 하자네요 ~ 사진 반만 보내야겠어요.


N님: 돌아오는 가을 엄마 생신에 돈케익을 응용해야겠어요.

       세종대왕으로 만들면 서운하시려나 ~^^     


Y님: 대박이네요~~ 순희 님의 사랑과 센스가 남편분 웃게 할 듯해요.  

    

마음담론 구성원 중의 한 분이 남편에게 그 사진을 공유했다보다. 반띵 하자는 S님의 댓글이 재미있었다. 조심스럽게 우리 가족의 근황을 알렸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줬다.

내게 의미 있고 좋은 경험이더라도 자칫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했는데,

아프고 늙은 남정네의 칠순 생일은 기꺼이 축하를 해줬다.   

   

축하할 일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기 원했던 꼬옥님이 브런치 작가가 됐음을 전해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를 올리며,

     


꺅 강의 중에 메일 받았어요!
진짜 늑장 부리다가 신청했는데
혹시나 떨어질까 마담에 말도 못 하고 있었어요ㅋㅋ
기쁨을 제일 먼저 나누고 싶어요~~     


모두들 꼬옥님의 브런치에 들어가 구독을 누르고 아낌없이 축하해주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순간이었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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