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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l 29. 2021

선생님, 은근 똑똑하세요.

가르치는 중2 여학생 현주한테 들은 얘기다.

전후 사정을 말하기에 앞서 나의 글쓰기 훈련을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책에서 좋은 글을 만나면 주로 필타를 한다. 그런 다음 출력해서 마인드 맵으로 정리하거나 그래픽 조직에 뼈대를 잡는다. 좋은 글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 홍수처럼 글들이 넘쳐나고 있는 세상이다. 눈 밝은 독자가 되어 좋은 글을 선별하고, 찾아내어 내 것으로 소화시키려고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체화되어 저자의  글 수준만큼 다가가는 것을 느낀다.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중 「진정한 위대함」을 필타한 다음 그래픽 조직에 옮기는 작업을 했다.      






「진정한 위대함」에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관련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영어 문체가 비교적 쉬운 데다가 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애’ 이야기여서 수업에 활용한다고 했다. 제목 속에 있는 ‘위대한’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 학생들은  '위대한 사람'을 봉사하는 사람, 용기 있는 사람,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고.     

 

장영희 교수는 개츠비가 떠나간 사랑을 돈으로 찾겠다는 불법 축재자에 불과하고 지나가버린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고 믿은 현실감각이 없는 몽상가였으며, 데이지 같은 여성을 사랑할 정도로 사랑의 대상을 헛다리 짚은 유아적 낭만주의가였을 뿐이라고 단언하다. 말하자면 개츠비는 ‘위대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에 비해 피츠제럴드는 책의 첫 부분에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밝힌다. “아무리 미미해도 삶 속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사랑에 실패해도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삶의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단다.    

  

한 세기가 지났어도 학생들은 ‘위대함’을 꿈꾸는데, 그런 굳건한 믿음과 희망이 진정 위대하다고 글을 마무리한다. 거의 한 달 동안 이 글을 분석하며 내 것으로 체화를 했다.

이 글처럼 2000자 내외의 글은 워드 작업을 한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 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다룬 「슬픔도 힘이 될까」는 필타하기가 부담스러웠다. 12000자 정도로 A4용지 8장 분량이어서 필타하기가 애매했다. 아니 벅찼다.     



그러던 차에 긴 글을 해결할 vFlat이라는 앱을 알게 됐다. 앱에 들어가서 책을 찍기만 하면 됐다. 이미지를 텍스트로 변환해 카톡으로 보내면 바로 출력을 할 수 있었다. 한 두장 찍은 이미지는 텍스트로 변환하기가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슬픔도 힘이 될까」처럼 긴 호흡의 글은 한 장한 장 클릭하는 게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카메라의 앨범 사진처럼 여러 장을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기능이 있을 것만 같았다. 수작업하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마침 현주가 숙제하러 왔다. 아이들이 숙제 안 해올 까 봐 수업 외에 따로 날을 잡아서 학원에서 숙제하도록 시키고 있다. 컴퓨터도 잘 다루고 뭐든 잘 해내는 친구라 vFlat에 이미지로 되어 있는 사진들을 보여줬다.

앨범처럼 한 번에 클릭해서 텍스트 변환하는 기능이 분명 있을 텐데 찾지를 못하겠다고 지금의 상황을 말했다.

같이 찾아봐줄래 했더니 스스럼없이 다가와 vFlat을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현주가 vFlat에 있는 라이브러리에 저장된 이미지를 이것저것 눌렀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뒤로 가기를 눌렀더니 사진 앨범처럼 이미지들이 전부 떴다.

때는 이때다 싶어 얼른 아래에 있는 ‘문자인식’을 누르고 이미지 하나하나를 클릭했다. 그런 다음 ‘내보내기’를 누른 다음 ‘TXT 파일’ 다시 한번 클릭했다. TXT 내보내기를 클릭했더니 TXT로 변환된 것을 미리보기로 볼 수 있었다. TXT 내보내기를 가열차게 눌렀더니 “텍스트 파일이 성공적으로 생성되었습니다.” 하면서 아래 ‘공유하기’와 ‘파일 열기’가 떴다. ‘공유하기’로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으로 보냈다.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처럼 워드 작업으로 잘 정리된 문서를 손에 쥘 수가 있었다.


  

8쪽 정도의 문서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요리조리 눌러서 결국 원하는 걸 해낸 나의 작업 과정을 보더니 현주 존경어린 눈빛으로 날 봤다.

“선생님 은근 똑똑하세요” 하면서 “별걸 다 하실 줄 아시네요” 한다.

듣고 있다가 “아 이 사람아 내 별명이 똑순이야. 어려서부터 똑순이라고 사람들이 불렀어.”

“아 그래요. 어쩐지” 하기에 “아이고 웃자고 하는 얘기야. 이름이 진순희이라서 괜히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야.”


듣고 있던 현주가 “아니요. 진짜 똑똑하신 거 같아요.” 하기에

“아이고, 어른한테 별소릴 다 하셔.” 하면서 얼른 출력된 문서를 가져왔다.


현주가 보기에도 포기하지 않고 vFlat에 있는 기능을 끝까지 하는 게 독특하게 보였나 보다.

나는 단지 여러 번 텍스트로 변환하는 과정이 귀찮아서 한 번에 할 기능을 찾았을 뿐인데 말이다. 목마른 사람이 샘 파는 심정으로 했을 뿐인데도 현주가 경외하는 눈빛으로 봐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아무튼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중 「09:슬픔도 힘이 될까 ]가 워드 작업하는 고생 없이 문서로 정리되었다. 좋은 글로 공부할 수 있으니 흡족하다.


 vFlat 덕분에 힘을 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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