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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ug 01. 2021

『기획자의 독서』

반 고흐, 애드가 앨런 포, 헤밍웨이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술이죠.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속설과 함께 ‘녹색 요정’이라는 별칭을 가진 압생트의 도수는 70도에 육박합니다.   

“한때는 압생트의 ‘웜우드 Wormwood' 성분이 정신착란을 일으킨다는 말도 있었지만 오늘날에 와서야 근거 없는 소문이었다는 게 밝혀졌어요. 어쩌면 그때의 예술가들은 압생트를 마셨다는 사실에 취한 걸지도 모르죠. 뭔가 새로운 것을 떠올린 게 아니라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랄까요.”   

-『기획자의 독서』, 223쪽     




“오늘도 책에서 세상과 사랑을 읽는 네이버 브랜드 기획자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기획자의 독서』에서 ‘압생트 Absinthe’를 만났다.

고흐 때문에 더 유명해진 그 압생트를 말이다. ‘고흐의 술’, ‘미치광이 술’로 알려진 압생트는 알코올 도수가 45~70%로 아주 높다. 쓴쑥 또는 향쑥이라는 꽃과 잎에다 미나리과에 속하는 풀의 씨앗인 ‘아니스 anise와 스위스 회향 fennel을 사용한 허브 리큐어로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심취했던 술이다. 압생트 속에 들어있는 투존 Thujone 성분이 환각을 일으킨다고 해서 금지당하기까지 했다. 사실 환각을 일으키려면 투존의 양이 400ml 정도는 돼야 한단다.    

 

압생트의 폐해는 환각만이 아니다. 고흐의 그림 곳곳에 남아 있는 과도한 노란색의 흔적은  압생트 중독으로 일어난 것이다. ‘악마의 술’이라는 별명답게 압생트에는 시신경에 장애를 가져다주는 테레반이라는 유도체가 있다. 이것 때문에 노란색 집착 증인 황시증에 걸렸다는 속설도 있을 정도다.

고흐의 술, 미치광이 술로 불리게 됐던 압생트는 에드거 앨런 포우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까지 즐겨했단다. 심지어 천재 시인 아르트르 랭보 Arthur Jean Nicolas Rimbaud)의 말은 영화 <토탈 이클립스>의 대사로도 쓰였다. 압생트의 푸른빛이 도는 취기야 말로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라고 표현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술을 각인시켰다.       


출처: https://namu.wiki/w/%EC%95%95%EC%83%9D%ED%8A%B8



아무튼 왠지 에메랄드 빛 압생트에는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잔뜩 담고 있을 것만 같아서 늘 신비롭게 느껴진다. 특히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나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의 노란색 소용돌이를 보면서 더욱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그런 압생트를 책에서 만나다니, 그것도 뭐든 디지털로 기획할 것만 같은 기획자의 책에서 ‘압생트’를 만나다니!     

 




사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아니 전부가 독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성 떨어지고 혼자 노는 것을 더 편안해 하는 내가 이만큼 살아내는 것도 다 책을 읽은 덕분이다. 좋아하는 책 읽기로 경제적 활동을 하고 어제 보다 더 나은 삶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으니 책은 내게 생사여탈권을 쥐게 하는 도구인 셈이다.

저자인 김도영 님 역시 기획자에게 책은 생존 수영과 같은 거라고 단언한다. 기획자로서, 책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기초체력을 다지는 필살기로 삼고 있는 듯했다.      


저자는 누군가 말한 “책이란, 글을 쓴 사람의 생각과 글을 읽는 사람의 생각이 만나 기호로 표기할 수 없는 특별한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거”(7쪽)라는 말에 뜻을 같이한다.      

이 책의 미덕은 저자의 주장만 펼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좋은 생각이나 말을 수용하여 자신의 생각과 잘 버므려 놓고 있다는 데 있다.     


“기획하는 일은, 인풋 Input과 아웃풋 Out의 밸런스가 좋아야 해.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투입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고, 그게 아웃풋으로 잘 연결되면 더욱 좋은 거지. 기획자는 모든 영역에서 인풋을 얻지만,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제일 많이 기대게 되더라고.”

 - 『기획자의 독서』, 49쪽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를 옮기면서 “좋은 아웃 풋을 위해서는 좋은 인풋이 있어야 하고, 좋은 인풋이란 곧 ‘좋아하는 것으로부터의 인풋’이기도 한 것(50쪽)이라면서 자신만의 ‘인풋 1’인 책을 꼽았다.

”자주, 편하게 가까이서, 쉽고, 다양하게, 그것도 큰돈 들이지 않고 만날 수“ 있는 게 책이라며, 기획할 때 책만 한 게 없다고 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저자답게 독서의 방법도 아주 정교하게 다가간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수렴의 독서”와 “발산의 독서”로 구분해 깊고 넓게 읽어내는 독서를 안내한다.  

‘수렴 Convergence의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말한다. 책을 연쇄적으로 읽어 나가면서 애매모호하게 둥둥 떠다니기만 하던 형상들 점점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주게 된단다.          



수렴의 독서를 상세하게 예를 들어서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솝 브랜드를 알고 나서 이솝 우화 전집도 찾아서 읽고, 이솝 인테리어 디자인 북을 보고, 이솝 브랜드의 ‘자연주의’을 이해하고 싶어서 친환경과 자연주의 운동에 관한 서적들을 읽고, 호주의 이솝 본사 직원들이 모두 BIC 볼펜만을 사용한다고 해서 BIC 회사의 책을 다 읽은 식이다. 이솝이라는 브랜드를 향하여 깊게 파는 ‘구심력’에 의한 독서 형태이다.       


반면에 “발산 Divergence의 책”은 이솝 브랜드를 넓게 파는 ‘원심력’에 의한 독서를 지칭한다.

저자는 이솝 브랜드가 탄생한 ‘1987년’에 꽂혀서 그 당시의 사람들의 삶에 주목한다. 당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었기에 자연주의가 태동할 수 있었으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찾아내어 이솝 브랜드가 나오게 된 배경을 짐작한다. 1980년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속화로 경제 호황과 함께 윤리 의식의 부재 또한 맞물려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이솝 브랜드가 만들어짐을 알게 된다.    

    


발산의 책 읽기로 이솝 브랜드의 배경지식을 넓혀간다. 이솝 브랜드는 이솝우화가 전하는 “간단하고 본질적인 교훈을 실천하고자” 한다. 자연 성분을 기초로 한 윤리적인 제품, 최소한의 것으로만 생활해 나가는 미니멀리즘의 실천과 관련되어 설립됐음을 책을 통해 습득한다. 더 나아가 이솝 브랜드와 관련된 문학 작품까지  읽어낸다.      


스피노자의 “나는 깊이 파기 위해서 넓게 파기 시작했다”를
저자는 반대로 적용한다. “넓게 알고 싶어서 깊이 알기 시작했다”며
수렴과 발산, 발산과 수렴의 극한을 오가는 경험을
 반복해 지식을 확장해 나간다.

『기획자의 독서』를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사례가 나와서 반가웠다.

김영하 작가의 “자고로 책은 사둔 것 중에 읽는 것이다”라는 문장에 눈이 멈췄다. 시간이 남거나 무료할 때 온라인 알라딘 중고 서점에 들어가서 책 서핑을 한다. 스테디셀러인데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 있는 책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클릭한다. 다 읽지도 않은 책을 왜 자꾸만 사냐고 가족한테 지청구를 듣기 일쑤지만 ‘언젠가는 읽게 되고, 누군가는 읽을 것“이기에 좋은 책이 있으면 갈등 없이 그냥 사버린다. 그저 책의 제목만 읽는 것으로도 뿌듯하다.    

  

뭐니 뭐니 해도 책의 본질은 저자의 말대로 “읽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실제로  읽어내지 않으면 그 책의 생명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책의 본질은 정말 “읽는 경험‘인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 읽는 경험에 충실한 독서를 했다. 취미에서 특기로 전환한 생존 독서는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이제는 생존 독서를 넘어서 공존 독서로 옮겨온 지 여러 해 됐다. 심리학 모임이나 자존감과 관련된 독서 모임, 발제해서 한 편의 에세이를 쓰는 독서 커뮤니티 등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책으로써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독서하는 것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고, 필사筆寫 하는 것은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며, 필모筆模 하는 것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베끼어 쓰는 ‘필사’를 넘어선 본받고  본떠서模 쓰는 ‘필모’를 권하고 있다. 왜냐하면 필모는 작가를 이해하는 필사를 넘어선 나만의 창작 활동이기에 내면의 북소리를 아주 가까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모가 나를 아는 가장 빠른 길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기획자의 독서』에서 마주친 ‘압생트’는 내 젊은 날의 기억을 불러왔다. 압생트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애정 하는 것은 아마도 압생트 마시는 방식에 대한 환상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압생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마시는데, 주로 압생트를 컵에 붓고 컵 위에 구멍 뚫린 압생트 스푼을 얹어 물을 떨어뜨린다. 에메랄드 빛의 진한 색이 천천히 희석되는 모습을 보며 향쑥의 맛보다는 그 과정에 홀려 압생트를 좋아했었나 보다. 아주 오래전 묻어 두었던 기억을 끌어올리게 한 것도 책이었다. 내가 책을 보며 추억에 젖었듯이 『기획자의 독서』의 저자 또한 기획하는 데에 책이 씨앗이 되고 마중물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보통 글을 쓸 때 그래픽 조직자에 뼈대를 잡고 시작한다. 처음 부분, 중간 부분, 맺음말 부분에 넣을 내용들을 적는다. 주제를 먼저 잡고 각 부분마다 쪽수를 찾아서 적어 넣는다. 그래픽 조직도는 그야말로 글을 써내기 위한 주춧돌이나 마찬가지다.


 『기획자의 독서』를 읽고 에세이 쓸 때도 그래픽 조직를 활용했다.

 "기획자도 아이디어의 기본은 책에서 찾는다"로 주제를 선택다. 처음 부분은 읽는 이의 눈길을 끌어야 하기에 '녹색의 시간, 악마의 술'인 압생트로 잡았다. 중간 부분을 세 개로 나눴는데, 첫 번째가 '기획자에게 책은 생존수영과 같은 것으로 두 번째는 좋은 아웃풋은 좋은 인풋이 있어야 하는 데 그게 책이라는 것으로, 세 번째는 책을 읽는 방식인 수렴의 독서와 발산의 독서를 언급하고 책의 본질은 '읽는 경험'이라는 것으로 했다.

요약해서 마무리하는 부분인 결론 부분은 분량의 1/5이거나 그보다 적어도 된다. 『기획자의 독서』에서 압생트를 만난 것과 결국 기획자에게도 아이디어를 도출할 때는 책이 기본이라는 것으로 개 짰다.  

 



* 본 글은 성장판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았지만 서평은 저의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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