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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ug 18. 2021

천기를 누설합니다

성인들 책 쓰기와 에세이 쓰기, 시 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내겐 야심만만한 계획이 있다. 그동안의 글쓰기, 책쓰기가 성인들의 퍼스널 브랜딩 하는 차원이었다면 지금의 구상은 다르다.

개학과 동시에 수업을 듣고 있는 중2 학생들 모두 저자를 만들어 주려고 하고 있다.  

가제도 이미 정해놨다. 『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표현은 어떻게 다른가?』(구舊『하버드 입학생들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가?』를 벤치마킹해 가제 『하버드 글쓰기를 벤치마킹한 강남 중2들의 글쓰기』라는 제목도 정해놨다.      



책 한 권 분량에 필요한 30 꼭지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에게 적어도 3~4편은 쓰게 했다. 참여 못하는 아이를 빼더라도 최소한 15명은 참가할 수 있기에 서너 편을 쓰게 한 것이었다. 한 명당 두 편 정도의 원고가 필요한데도 서너 편을 잡은 이유는 함량 미달인 글을 걸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의외로 남학생들의 참석률이 저조했다. 2000자 가까이 써내는 것도 못 하거니와 서너편은고사하 고 한 편 정도도 간신히 해냈다. 심지어 그 한 편도 500자 정도도 되지 않는 토막글을 쓴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자기 이름이 진짜로 책 표지에 나오는 거 맞냐고 수업에 올 때마다 물어 들 봤다. 얌전하고 말수가 적은 재현이가 특히 더 그랬다.   

   

글도 다 쓰지 않았으면서 뭘?     

했더니 그건 그거고 심히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질문해도 되냐고 했다.


언제든! 쌤이 글쓰기 선수잖아. 뭐든 다 물어보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면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인세는 누가 갖는 거냐? 그거 선생님이 다 갖는 거냐? 나는 얼마를 받을 수 있냐?" 등 등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글이나 다 쓰셔. 쓰고 나서 얘기해. 글도 안 쓰곤 무슨?”   

  

아 ~ 진짜~~ 공부할 때 목표 설정부터 해야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요?

저는 인세가 얼마나 나오는지, 그게 진짜 궁금하단 말이에욧!     


이 사람아, 여러 권의 저자인 나도 인세가 얼마 안 나와.
인세는 무슨? 네가 김영하 소설가나 강원국 작가처럼 베스트셀러 작가나 인플루언서라면 또 몰라. 쌤이 너희들 저자 만들어 주려는 것은 너의 생각을 말로 글로 잘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야. 네가 갖고 있는 역량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해 저평가되면 안 되잖아. 너를 100% 다 보여주려면 그것을 말로든 글로든 표현할 수 있어야 되거든.  
말은 사람을 일일이 만나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그에 비해 글은 많은 사람에게 너를 어필할 수가 있기 때문에 글쓰기는 아주 중요해. 하버드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도 글쓰기라고 누누이 말했잖아.      


급 실망한 재현이가 자리로 돌아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좋다 말았네. 인세 받으면 게임 현질 하려고 했더니....      


반면에 여학생들은 3000자 이상 꽉꽉 채워서 쓰고, 거의 대부분이 네 편 이상 제출했다. 노트북들을 갖고 와서 그래픽조직자에 뼈대를 잡고 곧바로 에세이 쓰기로 들어갔다. 어찌나 집중해서 글을 쓰고 있는지, 너무나 신통해서 무음 카메라로 촬영까지 해놨다.


지금 계획은 전자책은 물론이거니와 종이책의 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글을 쓰고, 쓰기 위해 읽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당연히 친구들과 함께 공저자가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중3이 되면 자율동아리 만들어 문집을 낼 수가 있다. 줌으로 만나서 글을 쓰고 쓴 글을 모아서 문집으로 만들면 학교에서 한 활동이기에 안심하고 생기부에 올릴 수 있다. 사실 중학교 때는 대학의 전초전으로 준비과정을 다양하게 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대 간 성지도 중학생 때부터 생기부 관리를 차근차근 치밀하게 준비했다. 책의 저자가 되기 위해 글 쓰는 경험을 하다 보면 고등학교에 가서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생기부가 풍성해짐은 물론 동아리를 이끌어 가는 과정 속에 리더십도 기르고 구성원들 간의 협력과 나눔, 배려를 몸에 익힐 수 있다.      


급조된 것이 아니라 중학교 때부터 몸에 배어서 고교 생활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험은 대입 자소서에도 충분히 녹여낼 수 있는 내용이어서 머리를 쥐어짜 내면서 까지 자소설을 쓸 필요가 없게 된다.     


평소 똑똑하고 비판적 사고가 발달한 현서가 말했다.     

책 꼭 내야 해요? 저는 글은 계속 쓰고 싶지만 책은 내기 싫어요. 제 이름으로 나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요.        

아, 현서 이름이 나오는 것이 싫구나. 쌤이 너희들 책의 저자 만들어 주려는 것은 중3 때 자율 동아리 만들어서 활동하라는 의미였어. 지금은 일반고 갈 거라서 생기부 관리 안 해도 된다고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든. 작년에 외고 간 혜주도 중3 때 마음이 바뀌었어. 일반고 갈 거라고 독서록도 안 올리더니 친한 친구들이 전국단위 자사고랑 외고 간다고 하니까 갑자기 가겠다고 해서 얼마나 바쁘게 준비를 했는데. 자격을 갖춰 놓고 안 가는 것은 괜찮지만, 지원하고 싶은데 생기부 관리가 안 되어 있으면 그때는 얼마나 난감하겠어. 그거 대비해서 미리 해두는 거지.       


현서야,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돼. 네 말마따나 쓰기만 해도 돼. 근데 그거 너 아니? 네 이름 박힌 책이 떠억 하니 나와 있으면 얼마나 감동스러운데. 게다가 포털 사이트에 네가 쓴 책이 네 이름이랑 같이 있는 걸 봐봐. 엄청 뿌듯해.    

  


 『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표현은 어떻게 다른가?』에도 나와 있듯이 좋은 에세이를 쓰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훌륭한 사례를 배우는 것"을 들 수 있다.

각 에세이마다 하버드대학 대학신문인 하버드 크림즌의 편집진이 섬세한 코멘트를 달아놨다. 글 쓰는 전략이 상세하게 나와 있어 참고할만한 내용이 많다. 글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라든가 상투적인 것에 빠지기 쉬운 함정들도 꼼꼼히 다루고 있어서 성인인 내게도 아주 유익하다. 책쓰기 프로젝트 실행하면서 아이들 함께 같이 공부하고 있다.  수업할 때마다 책에 실린 글을 분석하고 크림즌의 편집진들이 지적한 내용까지 흡수하게 한다.  




영향력과 관련된 <위대한 수업> 편을 읽고 그래픽조직자에 뼈대 잡은 것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그런 다음 내게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사물이나 인물에 대해 쓰도록 했다.       

아이들도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을 그래픽조직자에 다 넣어 글의 뼈대를 잡는데 공을 들였다.   

   

다음은 애니메이터가 꿈인 주혜의 그래픽 조직자이다. 주혜는 이것을 토대로 한 편의 글을 뚝딱 완성했다.





                           <빨강 머리 공주>로부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


나는 원래 무언가에 푹 빠져 있는 편이 아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덕질'도 해봤지만 1년 이상 간 적이 없다. 그 이유로는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아서다. 다방면으로 시간을 나누다 보니 한 가지에 오랜 시간을 쏟지 않게 돼서 관심이 한순간 훅 줄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무언가 푹 빠지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말한 대로  무언가 하나에 꾸준히 빠져있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그런 내게 애니메이션은 2년 동안 푹 빠져있는 특이한 것 중 하나이다. 애니메이션을 처음 보게 된 계기는 그림을 움직이게 한다는 점이 흥미로워서였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림에 관한 영상들을 찾아보던 도중 '빨강 머리 백설공주'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그러고 나서 엄청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이 움직인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그걸 보고 나서 3달 내내 그 설렘이 잊혀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밌고 예쁜 그림들이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면 나와 같은 설렘과 재미 등을 누군가에게도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 나는 더 많은 애니메이션들을 찾아봤고 단순히 예전처럼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닌 원리와 방법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잠깐 푹 빠지고 말겠지 라고 생각하셨지만 내가 꾸준히 하는 것을 보고 칭찬도 해주시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보니 지치는 것도 덜했고 싫증이 나기보다는 틈만 나면 더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번 연습해보곤 했다. 다른 아마추어들이 나보다 잘 그린 것을 봤을 때는 오기로라도 열심히 그리는 날들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해본 결과 좋은 애니메이션은 누군가의 피땀과 노력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픽조직자에는 미야쟈키 하야오가 생략되어 있지만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단연 미야쟈키 햐야오이다. '빨강 머리 백설공주'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했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애니메이터로서의 꿈을 갖게 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시작부터 나를 흠뻑 빠져들게 했다.


에니메이션은 시골로 이사 간 치히로의 가족이 길을 잘못 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초록으로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도착한 터널. 치히로의 걱정스러운 표정과 달리 부모님은 거침없이 들어간다. 먼지 쌓인 곳을 지나자 환한 들판이 나온다.  사람도 없는 테마파크 같은 곳에서 치히로의 부모님은 음식 냄새에 홀려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가 마구마구 먹기 시작한다. 치히로는 주인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먹지를 않지만 허락도 받지 않고 먹은 부모님은 곧  돼지로 변해버린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동화처럼 재미있다. 색깔들이 전체적으로 아주 부드러운 데다가 선명하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세밀한 그림들을 수만 장은 그려야 했을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갔을까 이런 생각들은 지금까지도 계속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고 그려본다. 유튜브에서 이비스페인트 사용법도 보며 연습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앱도 다운로드하여 자주 그리고 있다. 비록 미숙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단순히 오락거리로 보기 이전에 꼼꼼하게 파악하며 보려고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애니메이터라는 나의 꿈을 확인하고 있다. 수많은 애니메이션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지금도 애니메이터를 향한 나의 꿈은 진행 중이다.



출처: 나무위키






주혜가 그래픽조직자를 토대로 해서 1700자 가까이 글을 써냈다. 그래픽조직자가 없었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로 연습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픽 조직자에 분석해 읽다 보면 어느새 모범 글의 글쓴이처럼 궤도에 올라온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쓰기 잘하기 위한 방법으로 베껴쓰기와 같은 방법이 있지만, 필사하기 전에 그래픽조직자로 글의 체계와 문장을 익히는 것이 먼저다.

감히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 ‘그래픽조직자’라고 천기를 누설해 본다.   











제 책이 출간됐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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