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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ug 21. 2021

"우리가 내는 돈으로 피자 세 판만 시켜줘요."

중1 팀 수업에 은지 어머니께서 학생 한 명을 소개해 주셔서 또 한 명이 등록을 했다.

시국이 어려운 가운데도 아이들이 솔솔 들어오고 있다. 아직 1학년이지만 몇 달만 있으면 중2가 되기에 요즘 중1 학생 문의가 많다. 중1은 자유 학년제라 시험이 없고 중2부터 시험을 본다. 첫 아이 엄마들이다 보니 걱정이 돼서 그런지 친구들 소개도 열심히 잘하신다.      


아침부터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렸다.

우리 학원에는 친구 전도?로 학생이 들어오면 피자 쏘는 문화가 있다. 이번 토요일 아침 9시 팀은 처음부터 그룹을 모아 왔기에 새로운 친구가 들어올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은지 어머니께서 애쓰셔서 학생 한 명이 들어오게 됐다. 이 팀의 아이들은 우리 학원에 그런 문화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강행을 했다. 피자가 배달되면 수업 분위기가 어수선해질텐데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 문제는 수업 진도를 빨리 빼면 될 일이었다. 토요일 아침 9시에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이 기특해서라도 선물을 하고 싶었다.  

      

피자 가게에 아침부터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를 않았다. 12시면 수업이 끝나는 데 마음이 다급해져서 계속 전화를 했다. 신호음만 가고 안 받더니 11시가 되니까 그제서야 받았다. 개점이 11 시인 줄을 모르고 전화를 했던 것이다.      



학원가에서 주로 시키는 피자는 000 피자다. 피자 지름이 무려 46cm(18인치)나 된다. 가히  대왕 피자라고 할 수 있다. <나홀로 집에>의 캐빈이 먹던 그 크기도 이만한 크기였지 싶다.  아무튼 양이 많은 데다 비용도 착하고 맛까지 좋아 주로 000 피자를 시킨다.   

   

걱정과 달리 수업 끝나기 20분 전에 피자가 도착했다. 먹을 게 있으면 수업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수업 진행을 빨리빨리 진행했기에 부담이 없었다. 그날 수업 분량을 막 끝냈을 때 피자가 왔다. 아이들을 교실 세 칸에 분리한 다음에 먹게 했다.

중1이라도 대학생 같은 민석이가 얼른 4조각을 후딱 해치웠다. 여학생들은 한쪽 붙들고 다 먹지도 못한 상태였다. 말라깽이 석민이도 한 개를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네 쪽을 먹어도 양에 안 찼던지 민석이가 피자 판에 떨어진 토핑들을 가지런히 모아서 먹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친구가 피자 가장자리를 먹다 남겼는데 그것마저도 먹어치웠다.      


아쉬운 듯 나를 보더니      

“선생님 전 먹은 거 같지도 않아요.

우리가 내는 돈으로 피자 세 판만 시켜주면 안 될까요? "   

  

듣고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민석이를 향해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너가 제일 많이 먹었잖아. 우리는 아직도 한쪽 먹고 있단 말이얏.”  

   

민석이 말이 더 황당했다.

“얘들아, 내가 네 쪽 먹어서 미안한데, 그래도 나는 배가 안 차. 아, 배고프다.”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한번 말을 했다.   

  

“정말이요. 다음에 진짜로 세 판 시켜주면 안 되나요.”   

  

웃으면서 가만히 쳐다만 봤더니 “어서 가야겠다.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하면서 가방을 챙겨서 내려갔다.       

젊은 날 같으면 “우리가 내는 돈”이라는 말에 고까워서라도 성을 버럭 냈을 거다. 그런데 이젠 장자의 목계지덕(木鷄之德)에 나오는 '나무닭'처럼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하나도 노엽지가 않고 그저 아이들이 귀엽기만 하다.      


‘나무닭’은 『장자』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주周나라의 선왕宣王은 투계鬪鷄를 무척 좋아했다. 싸움닭 한 마리를 골라서 투계 조련사인 기성자記成子에게 맡겼다. 열흘이 지난 후에 왕이 물었다.
 
 “닭이 이제 싸울 수 있겠는가?”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안됩니다. 지금은 허세가 심하고 여전히 기세 등등합니다. 교만하여 자기 힘만 믿고 있습니다.”    
열흘이 다시 지나 왕이 또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안됩니다. 비록 교만함은 버렸으나 아직 다른 닭의 울음 소리나 모습만 보면 당장 덤벼들 것처럼 합니다.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신중함이 없이는 최고의 투계가 될 수 없습니다.”

열흘이 다시 지나서 왕이 또 질문했다. 기성자의 대답은 똑같았다.  

 “아직 안됩니다. 다른 닭을 보면 노려보면서 성난 듯이 합니다. 그 눈매를 버리지 않는 한 최고의 투계가 될 수 없습니다.”   

열흘이 다시 지나자 왕이 또 질문했다.  

 “이제 됐습니다. 상대가 울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나무로 만들어 놓은 닭 같습니다. 그 덕德이 온전합니다. 이제 목계木鷄가 되었으니 다른 닭들은 감히 덤비지 못하고 도망쳐 버립니다.”         


민석이가 돌아간 뒤에 진짜로 노여움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다이어트하느라 힘이 빠져 화낼 힘도 없어진 것인지 잠시 헷갈렸다.   


   

설마 내가 목계가 되었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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