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종시계 걷는 법 이영식

by 진순희
출처: https://bit.ly/3FmGKpd


괘종시계 걷는 법


이영식



사내가 허공을 걷고 있다

하루 스물네 점

쉼 없이 건너는 시간여행자

외쪽불알 추로 세워

좌우 치우침을 모른다

아무리 걸어도 늘 제자리

사내의 구두는 발자국도 없이

소리로만 걷는다


입주 사십년, 붙박이

우리 부부의 내밀한 밤을 지켰고

아이 둘을 키워 내보냈다

바람벽에 붙어살면서도

제 몸 밖을 꿈꾼 적 없는 사내

내부를 열어보면

곁을 내주며 서로 품고 돌아가는

톱니의 가계家系가 드러난다


속도전의 시대?

사내는 아날로그 식 보폭이다

허공에 겹겹 결을 내어

집안 구석구석 종소리로 채우고 있다

고물상도 등 돌리는 저 몰골

나는 사내의 보법을 배우고 싶다

세상 어떤 바람에도 어김없이

또박또박 걸어가 닿는

무량한 세계,


다 닳고 낡은 구두가

기적처럼 하루를 건너가고 있다



―이영식 시집, 『꽃의 정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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