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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Oct 31. 2021

요즘, 환자 많아요?

참 한 곳에서 오래도 했다.

27년째 같은 업종으로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랑 팀을 짜서 가르쳤던 아이들도 결혼한 아이들이 더 많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며칠 전 태영이 어머니를 만났다. 작은 아들이랑 함께 수업했던 태영이도 작년에 결혼을 했다. 태영이네는 부부가 다 의사다.      


같은 동네 살아도 서로가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정말로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아마도 몇 년 만에 만난 듯하다. 태영이 장가들 때도 코로나로 인원수 제한이 있어서 사진으로만 봤던 터였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인사가 정말 웃겼다.     


우리 아들 이름을 부르며     


태영 모친: 00 엄마!  요즘 환자 많아요?

              거기는 잘 돼서 환자가 많지요. 하긴 워낙 오래 하셔서.  


나: 아, 아이들이요. 그냥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요. 코로나에 잘 되는 데가 있나요?    

 

태영 모친: 아이구 내 정신 좀 봐. 학원에 아이들 많으냐고 물어본다는 것이 “환자, 많냐고 물어봤네.”    

 

직업은 못 속인다는 말처럼 순간적으로 태영이 어머니 입에서 ‘환자’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남의 말 할 것도 없다. 내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지금이야 못 만나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국어 카페 교사들끼리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지방에서 워크숍을 했다. 

펜션을 얻어 대전에서 했는데 수업 때문에 나중에 도착한 선생님이 있었다.  

이미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난 상태라 같은 상에서 먹기에는 상황이 애매했다.  


푸른쌤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전생의 무수리였는지 남 섬기는 데는 이골이 난 터라 푸른쌤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이 밤에 먼 곳까지 오시느라 애쓰셨다며 밥을 먹다 말고는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빈 방으로 안내한다는 것이 그만  

    


푸른쌤, 이쪽 교실로 오셔요.
잠깐만 기다리시면 제가 얼른 준비해서 드릴게요.     

갑자기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렸다. 어리둥절해서 쳐다봤더니

     

아이구, 직업은 못 속인다더니. 큐티쌤! 푸른 쌤한테 방금 교실로 들어오라고 말한 거 기억해요? 


 (참고로 <닥터 지바고의 연인> '라라'를 좋아해서 몸집이 작은 나는 '큐티 라라'를 닉네임으로 쓰고 있다.)  


아이구, 상담하던 버릇이 있어서 그만. 교실이 입에 붙어 버렸네요. 


환자 많았던 시절도 옛일이 되어버렸다. 코로나로 툭하면 학교를 안 가다 보니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긴장감이 떨어졌다. 잊을만하면 확진자가 나와 '온클'(온라인클래스)로 대체하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진도 나간 것이 많지가 않아서 시험도 중간고사는 건너뛰고 기말만 보는 과목도 있다. 시험을 봐야 걱정돼서 학원 등록도 하고 원생도 늘어날 텐데 도통 움직임이 없다. 




출처:경향DB-잭슨 폴락Number8(부분),  캔버스에 에나멜과 알루미늄 페인트, 1949년                                                




낙엽이 비처럼 떨어지고 있는 날이다. 

거리에는 잭슨 폴락의 흩뿌린 물감처럼 여기저기 떨어진 낙엽들만 뒹굴고 있다. 이렇게 스산하고 휑한 마음이 들 때는 "요즘 환자 많아요?"라고 물었던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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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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