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재구성

by 진순희
출처: https://blog.naver.com/kaite1130/221559937528



침묵의 재구성


이영식



침묵의 구조는 단순하다

배경이든, 주인이든

맡은 바 정물로 앉아 버티는 것이다

구르거나 되바라지지 않고

각자 내면을 바닥까지 들여다보는 일

그러니까, 침묵의 화법은

지퍼로 입성을 견고히 채우는 것

재갈을 물리는 일이다


침묵을 한 껍질씩 벗겨 보면

속이 텅 비었음을 곧 눈치 챌 것이다

침묵을 뜯어먹는 일은

공갈빵을 씹는 것보다 더 허무하다

그러나 침묵은 잴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우울과 몽상의 묵시록,

그 무게에 눌려

목을 달아 맨 사람도 여럿이다


말라바르 공중 정원에는 침묵의 탑*이 서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장례가 치러지는 곳이다

시신을 탑 꼭대기에 올려놓고 독수리가 쪼아 먹게 한다

(어느 쪽 눈알이 먼저 파먹힐까)

차안과 피안을 가르고 남은 뼈가 탑 우물로 떨어져

아라비아海로 흘러들러 갈 때

영원한 자유에 드는 법을 가르치는

死者의 書


사거리 길 모퉁이

오와 열을 맞춰 쌓아 올린 탑이 있다

노파의 하릴없는 기다림이 내장된 사과 피라미드

틈틈이 박혀 붉게 타오르는 저 벽돌은

또 하나, 침묵의 재구성이다


*침묵의 탑(Tower of Silence): 인도 마하라슈트라주(州) 뭄바이에 있는 탑.



-이영식 시집, 『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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