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하르방 이영식

by 진순희
출처: Pixabay




나무 하르방


이영식



굴뚝새 졸고 있는 마당 한구석

창틀, 문짝, 서까래, 팔걸이 흔들의자…

부서지고 깨어진 채 화목으로 모여

다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쓸모 없음으로 가벼워진 이름들

조여 넣었던 시간이 빠져나간 틈새마다

햇발 쟁여 넣으며

속속들이 몸을 말린다


연 이레 억수장마 지난 뒤

화목재 그늘에 벌레들이 모여든다

못자리 구멍 더듬어 길 내고

결 깊은 곳까지 촘촘히

집을 짓는다

며칠새 나무 하르방이 된 몰골들

구멍 숭숭 내어준 허리 틀어보니

얼핏 생바람 서 말 넉넉하것다

비우는 것도 희망이 될 때가 있는가

누구 한 사람 바라보는 이 없이

고욤나무 잎 같은 생을 내려놓은 날

뼈마디 툭툭 부러지는 소리로

생의 거푸집을 흩고 들어올 불꽃

마침표 없이 사라질 그 순간을

하르방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생각난 듯

굴뚝새 울음이 고요를 밀고 들어온다

독거노인의 걸음처럼 느릿느릿.


-이영식 시집, 『공갈빵이 먹고 싶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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