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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Dec 13. 2021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 위로를 느끼며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는 센트럴파크 호수에 있던 오리들이 겨울이 되면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지 궁금해하며 걱정한다. 오리의 안위가 걱정되어 택시 기사한테도 물을 정도이다. 물론 별 미친놈 다 봤다는 식의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홀든은 답답하다. 봄날에 센트럴파크 남쪽 작은 연못에 헤엄치고 있던 오리들이 겨울이 되면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다. 호수가 얼어버린다면 거기서 헤엄치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지? 누군가 트럭을 몰고 와서 오리들을 싣고 가버리는 건 아닌지 더더욱 걱정스럽다. 남쪽이나 어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버리는 건지 의문이다.      



홀든을 보면서 어쩜 내 성향이랑 이다지도 비슷하지 하면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던 생각이 난다. 다정도 병인 것처럼 남들이 보기엔 쓸데없을 것 같은 것에 마음이 쓰인다. 

코로나가 길어짐에 따라 마스크 착용은 이미 필수가 된 지 오래인데도, 외출할 때는 네다섯 장의 마스크를 따로 준비해 간다. 혹시라도 마스크 쓰고 다니다가 끈이 라도 끊어진 사람이 생길까 봐 챙겨간다. 더러 차에 두고 맨 얼굴로 나오는 사람에게도 가지고 온 마스크를 건넨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과 여행을 가거나 할 때도 휴게소 들르기 전에 혹시라도 목이 마를까 봐, 일찍 출발하느라 아침을 건너뛰고 나온 사람들이 있을 까 봐 이때도 소풍 꾸러미를 싼다.  

커피를 따로 내리고, 찰떡은 하루 전에 냉동실에서 꺼내놓고, 초콜릿과 과자와 두유와 작은 빵 몇 개를 담는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아유, 어쩜 이리도 세심해요.”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무의식 중에 사람들의 이런 환호성을 듣고 싶어서 아이들처럼 내가 이렇게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냥 누군가를 신경 쓰는 그런 사람이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뮤티인 경우에는 봉투에 돈을 넣어 도네이션의 형식으로 살짝 두고 오는 편이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넘겨짚고 하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임 꾸려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까 봐 그냥 그렇게 한다. 사람이 모이면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인지 상정인지라 아무리 더치페이를 한다고 해도 다른 용도의 비용이 들어갈 때라도 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한다.   


   

다른 사람의 형편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불편함이 있을 까 봐 미루어 짐작하는 나는, 그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일 뿐이다. 자기 것 챙기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 마음에 두는 그런 성향일 뿐이다. 이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불편을 겪는 사람도 생기기도 한다.   


   

남편 친구 가족들이랑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다른 사람들의 밥이 늦게 나오는 건 아닌지, 중간에 반찬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신경을 쓰며 밥을 먹는다. 이러나 보니 여러 번 일어나 주문을 하고 심지어 주인장이 바쁠 때는 반찬을 가져오기도 한다. 앉았다 일어났다 들락날락하니까 급기야는 가족한테 



 “아, 밥 좀 제대로 먹자, 제발~~
당신은 다정한 것도 병이야, 벼어엉!”
이런 소리까지 듣는다.    

  

이렇게 지청구를 들은 날은 내가 싫어서 시무룩해진다. 

그러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알고 나서는 반가움에 눈이 반짝 떠졌다. 최근 인권과 관련하여 영화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진행하는 강사님께서 소개를 해주셨다. 제목을 보는 순간, “맞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잖아. 괜한 오지랖이 아니라니깐.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은 다정한 것 밖에 없다잖아.” 하면서 자존감이 샴페인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제목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인류학을 전공한 듀크대학교의 브라이언 헤어 교수와 같은 학교 연구원 버세사 우즈가 쓴 책이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란 주제로 다양한 사례를 들어 기술했다.    

   


제목과 달리 내용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달랐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의 제목은 책의 분량 중 절반 정도에 해당되고 나머지는 다정함의 이면에 있는 공격성이나 잔인함을 다루고 있어 좀 의외였다. 책의 제목에는 말하자면 인간의 본성 중 한쪽의 입장만 담겨 있는 셈이다. 물론 책의 본문에 “이 책은 다정함이 어떻게 인류의 진화에 유리한 전략이 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라고 명시하긴 했다



추천의 글을 쓴 최재천 교수 또한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에도 다정한 개체들만이 살아남았다고 언급해, 여기까지만 읽으면 이 책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가 도태되고 충분히 훌륭한, 그래서 서로 손잡고 서로에게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는 것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6쪽     



추천의 글뿐만이 아니라 책의 본문 곳곳에서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 전한다.   

힘이 세고 뇌도 더 컸던 네안데르 탈린에 비해 호모 사이엔스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에 있었다.  '친화력'이라는 다정한 초강력 인지능력 덕분에 이들은 강한 종 대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설파한다. 이 능력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어떤 사람 종보다도 우월하게 도약했다. 친화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협력함으로써 뛰어난 기술을 발명할 수 있었다.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 중에서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라는 말에 희망적이었다가 책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암울해졌다. 중일 전쟁 시기에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 사건이나 르완다에서 일어난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르완다 내전'을 보면 다정다감한 종이 결코 행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역사 속 수많은 사례들이 다정함 뒤에 숨은 공격성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다정함의 이면, 즉 우리의 친구가 아닌 이들에게는 잔인해지는 능력에 관해서도 탐구할 것이다. 우리의 이 이중적 본성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사회적, 정치적 양극화를 해결할 새로운 해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21쪽     



동전의 양면처럼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는 행위는 진화를 통해 획득한 호모 사피엔스만의 특성이라 지목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친절함은 나와 관련성이 있을 때만 가능한 거고 친구가 아닌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친절함이 오히려 공격성과 잔인한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 책을 감수한 박한선은 책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지금까지의 인류사는 그랬다. 하지만 덕분에 많이 죽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 부족을 향한 편협한 다정함이, 더 넓은 집단을 향한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진화된 "생태적 환경이 자기가축화 관련 형질의 적합도를 높여"준 것처럼 "현대 사회의 여러 생태적 환경도 새로운 심리적 . 문화적  형질의 적합도를 높여줄 것"을 기대하며 희망사항을 적었다.  



우연히 관심이 가서 읽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그렇게 가볍게 읽을만한 에세이가 아니었다. 

'자기가축화 가설'이나 '마음이론 능력'은 찬찬히 시간을 두고 봐야 할 내용이었다. 

곱씹으며 읽어둬야 할 묵직한 글들이 많았다. 








제 책을 소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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