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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Feb 21. 2022

갓생 살아야겠어요

공부법과 관련된 『극강의 공부 PT』를 출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상담 전화가 왔다. 당신의 자녀가 시간 관리를 잘해서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중2 학부모님께서 방문하셨다. 현진이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현진이 어머니께서 내 블로그와 브런치 글을 보시지 않으셨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업이었다.

현진이 어머니의 요구는 명료했다. 당신의 자녀가 『극강의 공부 PT』에 소개된 것처럼 자기를 스스로 점검하고, 특히 시간 관리를 잘했으면 하는 게 희망사항이었다.

강남의 교육 특구에서 일부러 찾아온 셈이다.

그 좋은 학원 다 놔두고 여기까지 오는 게 궁금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현진이에게 물어봤더니, 대답이 건조했다.

제가 시간관리를 잘 못해요. 여기서 시간표 짜주는 대로 한번 잘해보려고요. 진짜 잘해보려고요.

어른들도 시간 관리 못하는 건 똑같아. 습관이 붙어야지 아무리 계획이 좋아도 실행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거, 현진이가 그건 잘 알고 있지.

그럼요. 잘해보려고 온 거잖아요.

현진이는 늘 유쾌하다.

일요일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수업을 하는 데, 오늘따라 눈을 반짝이며 말을 건넸다.

선생님, 저 갓생 살 거예요

갓생?

갓생이요, 갓 새에엥 ~~

다른 애들한테, 선생님도 "나 앞으로 갓생 살 거다" 하면 엄청 간지 나서 애들이 우러러볼 거예요.

아니, 도대체 '갓생'이 뭐냐고?

아이참, 갓생이 뭐냐 하면은요.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거를 말해요.

아이고, 우리 현진 양, 이미 부지런히 사시고 계시잖아. 더 이상 어떻게 부지런히 살아.

일요일 아침 일찍 이렇게 그 멀리서 오기가 쉬운 건 아니지.

아니요, 더 부지런히 살아야 해요. 갓생 살 거라고 집에다 선전포고를 했어요. 근데 문제가 생겼어요.

폰 들고 조금만 있어도 "현진아 갓생해야지"

쿠키런 방금 시작했는데, 어느 틈에 다가와 "현진아 갓생해야지"

갓생해야지, 갓생해야지. 갓~생~!

오늘만 엄마한테 "갓생해야지"를 다섯 번이나 들었어요.

오늘부터 진짜 갓생 살 거예요라며 내게 쪽지를 건넸다.

'현진이의 슬기로운 갓생 살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현진이의 오늘 '갓생 살기' 일정은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국어학원, 1시부터 4시까지 과학 학원, 4시부터 6시까지 가족이랑 마트 가기, 7시부터 수학 오답노트 30문제 하고 80문제 풀기가 끝나면 4시간이 훌쩍 지난단다. 밤 11시부터 영어 미니 모의고사 풀고 해석하고 듣기 받아 쓰기 하고 단어 60개 암기한 후 상관 접속사 개념 정리하고 분사 시험까지 봐야 한단다. 새벽까지는 해야 끝날 듯했다.

현진이는 지금 '갓생 모드'로 들어갔다. MZ 세대들이 말하는 '갓생'은 다음과 같다.

갓생; God+生을 합친 말로 부지런한 삶, 본분에 충실한 삶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를 테면 목표를 설정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일정한 루틴을 세워 실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현진이한테 듣고 검색을 해보니 온라인 커뮤티티에 '학교 다니면서 갓생 사는 법 알려줄게', 심지어 유튜브에는 '갓생살기 프로젝트'라고 해서 직장인들의 '갓생 살기'가 우르르 올라와 있었다.

공자가 말한 정명 사상(正名思想)이 현대에 소환되고 있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군군신신 부부 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처럼 학생은 학생답게 직장인은 직장인답게 할 도리를 해보자고 선언들을 했다.

출처: http://www.wlv.kr/news/articleView.html?idxno=2330

혼자 해도 될 텐데도 현진이가 굳이 '갓생 모드'라고 자신의 할 일을 내게 보여준 것은 결국 접속장치가 필요해서였다. 내게 보여준 그 쪽지를 현진이는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도 올렸다. 현진이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자신의 결심을 확언하고 '슬기로운 갓생 살기'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