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순희 Mar 03. 2022

이름 붙은 날은 늘 우울했다

결혼 한 지 41년째 된 날이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아들 며느리에게 알리면  살가운 애들이라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텐데 바쁜 아이들한테 알게 하는 것조차 마음이 쓰인다. 아들 부부가 신경 쓸까 봐 아예 말도 꺼내지도 않았다. 결혼기념일 같은 날, 이런 특별한 날이 이제는 귀찮다기보다는 무덤덤하다.


출처: pixabay



늘 특별히 이름 붙은 날은 우울했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대단한 의식을 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아서 더욱 그런가 보다.  

일부러 챙기는 형식 속에 내용도 충실 해질 텐데, 챙겨야겠다는 의지가 없어서 그런지 더더욱 결혼기념일인 오늘 침울하다.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들을 향해 불평만 늘어놓고 있다.  이런 날은 뜨끈한 국물이 제격인데 매일 배달 오는 차가운 샐러드에 밥 한 술 뜨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결혼기념일이었다. 큰 시숙이 건강 검진하러 지방에서 오셨다. 그것도 하필 결혼기념일 전 날에.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아침을 먹어야 하는 데 남편이 펄펄 뛰었다. 형이 어제 검사하느라 하루 종일 금식했는데, 아침에 밥 냄새 풍기면 형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냐고? 결국 결혼기념일 당일 아침에 우리 식구 모두 굶었다.


그다음 해도 또 결혼기념일 아침은 건너뛰었다. 이번에는 지방에서 고모님 내외분이 건강 검진하러 오셨다. 그 전 해처럼  같은 이유로 밥을 또 못 먹었다. 보다 못한 고모님께서, 질부는 얼른 식사하라고 했어도 남편이 괜찮다며 막무가내였다.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일을 갖고 서부터는 또 제대로 하지를 못했다. 결혼기념일이 평일이어서 미리 당겨서 밥을 먹거나 지난 다음에 했다. 평소처럼 가족이 모여서 밥 먹는 거나 다름없이 해왔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크게 바란 적도 없었다. 기대 같은 것은 애저녁에 접고 살아온 터였다.

 

그런데 올해 결혼기념일은 더욱 우울하다 못해 슬프다.

아들이 갑자기 실업자가 됐다. 직장에 대한 불만이 끊임없이 있었지만, 실직에 대한 아무 언질도 없이 그만둬버렸다. 느닷없이 직장이 없어진 작은 아들 방문은 아직도 취침 중이다. 이 모습이 고울 리 없는 남편은

아들 방 쪽으로 흘깃 쳐다보더니 장탄식을 했다.


내가 쟤 때문에 암이 도지겠어. 내가 큰 병에 걸렸지 싶어. 조만간에 병이 또 재발할 것 같아.

남들은 저보다 못한 대학을 나와서도 결혼도 잘하고 직장 생활 잘하고 있건만. 쟤는 왜 진듯하니 한 곳에 못 다니는 거야?  


이러쿵저러쿵 ~~ 주절주절 ~~~

남편의 한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징징대는 당신 때문에 내가 병이 날 지경 이우"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그냥 밥만 먹고 말았다.


"쟤, 언제부터 다시 출근한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하고 쏘아부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공부 잘해서 주변에서 크게 될 아이라고 말을 들었던 아들이었다.

그 흔한 재수한 번 안 하고 대학 문도 쉽게 넘었고, 어렵다던 취업도 수월하게 들어갔던 아들이었다.

그림도 독특하게 그려서 대학 미술 동아리에서 전시했던 그림을 임원의 사모님이 사겠다는 그런 제의도 받은 아들이었다. 책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글도 잘 썼다. 고등학교 때 대학에서 하는 논술 대회에나가서 수상할 정도였다.  


성향이나 기질이나 갖고 있는 기량에 맞지 않는 분야에 발을 디딘 게 잘못이었을까

대기업에 있다가 이직 한 번 잘못하고 나서 계속 엉키고 있는 듯하다.

이참에 쉬면서 진로를 바꿔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남편이 재차 물었다.


쟤, 언제 출근할 거냐고? 저러다 폐인 되기 딱 알맞아. 사람 구실 못하기 십상이라고.


남편의 저주 아닌 저주를 더 이상을 들을 수가 없었다.


나도 안 물어봤어요. 당신 닮아서 아들이 성실해 직장 다니면서는 그 일을 해 내느라 이직 준비를 못할 거예요. 차라리 쉬면서 충분히 생각하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요.

120살까지 산다잖아요. 필요하면 학교에 들어가 다시 공부해도 되고요. 그림도 잘 그리던 아들이니까 놓았던 그림 다시 시작해 NFT 만들어도 되고요.


남편이 눈길이 순해지고 있었다.


당신 아들이 우리 부부보다 더 똑똑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제 앞가림도 잘하고 영리하니까 다 생각이 있을 거예요. 세상에는 OO이 편이 없잖아요. 아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부모라면 적어도 아들 편이 돼 줘야 되는 게 맞다고 봐요. 밖에는 우리 OO이 편이 없으니까 우리가 OO이 편이 돼 주어야 해요. 부모는 아들이 선택한 것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게 도리라고 봐요. 우리가 할 일은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뜨겁게 응원하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인 거 알아요?


말을 하는데, 데리고 들어온 자식 두둔하는 것 같아 목이 메었다. 무심한 남편 때문에 더 서러웠다.

목소리가 떨리면서 눈이 눈물이 고였다. 얼른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들어가서 물을 틀어놓고는 오래도록 이를 닦았다.


나와 보니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나며 남편이 나가고 없었다.

아들 방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마음으로 먼저 지치지 않아야 되는데,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닌데. 아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새로운 분야에 용기를 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출근을 했다.


봄이 오고 있다.



출처: https://blog.daum.net/act4ksj/13771078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시집 『우리들의 양식』 (민음사, 1974)



출처: https://blog.naver.com/zblsaj/221674052299



저녁나절에 남편이 전화를 했다.
저녁에 짜장면이라도 먹을까?

수업이 있어서 10시에 끝난다니까, 알았다며 풀 죽은 목소리로 끊었다.

조금 있다가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가 저녁 같이 먹자고 하는 데, 나 가로수 길에 나와서 밥 먹고 있어요.


곧이어 큰 아들 전화가 왔다.

엄마 오늘 결혼기념일인데 이렇게 일만 해서 어쩌냐고. 그러더니 웃는 목소리로


엄마, 아빠 까였다면서요.


엄마한테도, 00이 한테도 저녁 먹자고 했는데,
다 안 된다고 했다면서요.



이래저래 어수선한 날이다.

이름 붙은 날 안 챙겨도 된다고,

그런 건 젊은 사람들이나 챙기는 거라고.

말은 그랬지만 괜히 이름 붙은 일은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될 것 같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중앙대학교 미래교육원에 <내 이름 박힌 내 책 한 권쓰기> 강좌가

 개설되었습니다 ~^^



https://bit.ly/3123ifR








https://open.kakao.com/o/gGbEfsPd


진순희 글쓰기방

open.kakao.com

글쓰기, 책쓰기와 관련해 문의 사항이 있으면 '진순희 글쓰기방'으로

두드리셔요. 참여코드는 writing 입니다 ~^^





제 책을 소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7855049    

http://www.yes24.com/Product/Goods/96006050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0400000&sc.prdNo=344141269&sc.saNo=003002001&bid1=search&bid2=product&bid3=title&bid4=001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88700745&orderClick=LEa&Kc=              


#결혼기념일 #아들 #이직 #실업 # #중앙대 #미래교육원 #내이름박힌내책한권쓰기 #SUNI글쓰기책쓰기아카데미 #진순희글쓰기방 #진순희시인 #명문대합격글쓰기

#극강의공부PT #문체부인문강사    






매거진의 이전글 갓생 살아야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