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순희 Dec 27. 2022

저, 이름을 말한 것 같아요

오늘은 자사고 면접이 있는 날이다.

자사고 대비 하기 위해 자소서 2회와 1차 서류 합격생에 한해 1회 면접 대비를 진행했다.  

자신의 꿈과 연계해서 지원동기를 쓰는데 아이들이 한 문장도 못 쓰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코로나로 아이들의 학습력도 저하된 것은 물론이고 일상생활 하는 것조차 어린아이로 퇴행한 느낌이 들 정도다. 아이들의 자기 관리 능력 또한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자소서가 자소설이라구요?



자소서가 자소설이라는 말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꿈이나 자신의 진로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의 꿈을 찾아보게 하는 일은 강제로 꿈을 욱여넣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소서를 써 보는 것은 필요하다. 아니 중요하다.



자소서 쓰는 과정을 안내하면 다음과 같다.

아이들의 생기부를 토대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찾아보게 한다. 생기부에 실린 1, 2학년의 장래희망을 역추적한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정말 자신의 꿈을 찾기도 한다. 은미는 섬세하고 예민한 학생으로 요즘 들어 건축과 관련된 것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원래 생기부에는 장래희망이 변호사였다. 유튜브로 예쁜 실내 디자인들을 보면서 실내를 건축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말했다.





고민이 되는지 은미가 물었다.

선생님! 생기부에 쓴 것과 달리 꿈을 바꿔서 자소서에 써도 되나요?


그럼, 걱정하지 마. 어른들도 꿈이 자주 바뀌는 걸. 그래서 평생교육으로 진로 지도도 하는 거야.

얼마든지 바꿔도 돼, 은미야.


은미에게 실내디자이너가 되고 싶으면 많은 영상을 보며 자료 수집을 하고 논문을 찾아보라고 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유명 실내디자이어에 대해 알아보고, 그 사람의 철학이나 작품들을 보라고 했다. 그것을 토대로 나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면 된다고 조언을 해줬다.

세상에! 은미가 찾아온 것은 놀라웠다. 시카고 출신의 실내 디자이너 데이비드 록웰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와서는 록웰처럼 "세상을 상상의 놀이터로 바꾸고 싶다"라고 했다. 자사고에 입학해서는 건축 동아리에 들어가서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단다.  



자소서 첫 수업 때의 은미가 기억이 난다.


은미의 꿈은 뭐니

꿈이요? 꿈같은 거 없는 데요.


장래희망은?

장래희망, 그딴 거 없어요.

아유, 말하는 본새 하고는. 우리 이번 기회에 너의 꿈을 찾아보자. 없으면 만들어도 보고. 고민해 보자.





이랬던 친구였다. 그때에 비하면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자소서를 쓰기 위해 자신의 진로와 꿈을 찾아보는 이러한 과정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매번 자소서 수업을 할 때마다 느낀다. 일반고를 가더라도 자소서 써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자소서를 쓰면서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생기부를 토대로 자소서를 쓰게 되는데, 본인들의 자소서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자기들 스스로 놀란다.


독서록도 어쩜 이렇게 적지요?


우리 학원에서 매주 읽은 책도 있고, 매번 독서록도 다 썼잖아. 학교에 가자마자 내라고 네게 신신당부하고 문자도 보내고 어머니께 카톡도 보냈는데, 무슨 일이지?


그제야 무안한 듯 배시시 웃으면서 말한다.


나중에 보니까 가방에 구겨진 채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래서 못 냈다는 거야?


다 구겨진 걸 어떻게 내요. 그냥 못 냈지요. 



자소서를 쓰면서 후회 아닌 후회를 하게 된다. 생기부 관리를 불충분하게 해 온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생기부 관리를 아주 계획적으로 하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학원에 다니는 중3 아이들에게 모두 자사고 입학을 권유한다.




자사고를 지원한 아이들이 1차 서류는 대부분 다 합격했다. 합격생들을 데리고 지원동기, 학업계획, 자기주도학습 경험, 인성영역의 나눔, 배려, 협력과 갈등 해소의 경험을 써보게 했다. 아이들의 경험을 말해보게 하고, 쓰게 하는 일은 쑥과 마늘만 먹고 곰이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기억력이 제대로 돌아갈 때까지 참고 또 참아내야 한다. 이렇게 해 1200자를 단단하게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말이 나올 때까지 암기시켰다. 면접 때 말할 것들을 종이에 한 번 써 보게 하고 동영상으로 촬영해 몇 번이고 연습하게 했다.



매일 연습한 것을 올리라고 해도 한 두 명만 올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연습도 안 하는 눈치였다. 보다 못해 크리스마스날 다시 불러서 연습을 시켰다. 처음보다 아주 부드럽게 잘했다. 예민한 학생 몇몇만 빼놓고는 아이들이 잘해줬다. 면접 전날인 어제 다시 불러서 최종 리허설을 했다. 주변에서는 특목고나 전국대비 자율형 자사고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들을 정도록자소서 쓰는 것과 면접 대비에 만전을 기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자리에 앉기까지의 1분도 안 되는 그 시각이 면접의 당락을 결정한다고 한다. 면접장의  문 열고 들어오면서 인사부터 하고, 뒤도 돌아서 문들 닫고 자리에 앉기 전에 인사 먼저 하는 연습을 시켰다.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니까 "수험번호 XXXXXXX입니다"까지 몇 번이고 연습시켰다.  수험자의 신원을 드러내는 이름을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 또 강조를 했다. 몇 번을 주의를 시키며 완벽할 때까지 반복을 해서 보냈다.





드디어 면접날인 오늘, 아들내미 시험장에 보낸 것처럼 초조했다. 불안한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될 까봐 디지털 튜터 시험과 관련된 강의를 연속해서 들었다. 나 역시 1월에 보는 시험을 신청해 놓았기에 강의를 들으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오전 시험을 본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얌전한 석민이가 전화를 했다. 시험은 여기서 준비한 대로 다 나왔는데, 2분이 남았다고. 면접 다 끝나고 나왔는데 어떻게 하지요? 걱정하고 있는 석민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묻는 대로 다 대답했으면 그걸로 족해. 5분 다 채우지 않아도 돼.

괜히 주절주절 말하다 실수하는 것보다는 나아.



그러면서도 아니, 그 5분을 다 채우지 못했단 말인가 하는 아쉬움이 절로 나왔다. 8분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트레이닝을 했건만. 아마 떨려서 아무 생각도 안 났다보다.

석민이랑 말하고 있는데, 선생님 지원이가 바꿔달래요. 할 말이 있다고 해요 하는데, 석민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쌤쌤쌤~~. 다급해하는 지원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저 이름을 말한 것 같아요.

지원이의 긴 한숨이 이어졌다.


저 이 학교 못 가고 △ △ 고등학교 가게 될 것 같아요. 저 어떻게 하지요> 저 △ △ 고등학교 가도 가르쳐 주실 거지요.  아 ~~ 이름을 말한 것 같은데......


지원이의 장탄식이 전화선을 타고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원아 너, 이름! 안 말했어. 말 안 했을 거야. 했어도 할 수 없고. 30초 남겨놓고 말할 정도로 충실히 대답했다며. 그걸로 땡큐야. 감점이야 되겠지만 당락에는 상관없어. 이름 댔다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사 ○○고등학교  못 가도 하늘에 계신 그분이 더 좋은 거 주시려고 예비해 놓으실 거야. 우주의 기운이 너를 좋게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


지원이 너는 잘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그러니 지원아 1월 2일 발표될 때까지 좋은 생각만 하자. 친구들이랑 스키장 가기로 한 것도 있잖아. 잘 놀고 와. 걱정 근심일랑 눈 속에 다 파묻어버리고 와. 다시는 네게 달라붙지 못하도록 묻어버리고 오라고.


네에 ~~

마지못해 대답하는 지원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어린 친구가 부디 절망하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는 없다.

잘 될 거야. 지원이 너는 이미 합격했어!라는 주문을 걸면서  






https://open.kakao.com/o/gGbEfsPd

진순희 글쓰기방 open.kakao.com

글쓰기, 책쓰기와 관련해 문의 사항이 있으면 '진순희 글쓰기방'으로

두드리셔요. 참여코드는 1004입니다 ~^^









제 책을 소개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7855049


http://www.yes24.com/Product/Goods/96006050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0400000&sc.prdNo=344141269&sc.saNo=003002001&bid1=search&bid2=product&bid3=title&bid4=001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88700745&orderClick=LEa&Kc=


중앙대학교 미래교육원에 <내 이름 박힌 내 책 한 권쓰기> 강좌가

개설되었습니다 ~^^


https://bit.ly/3123ifR

미래교육원 능력개발 lifelong.cau.ac.kr





수강신청:

https://lifelong.cau.ac.kr/mpd/cms/FR_CON/index.do?MENU_ID=1740





#자사고 #자소서 #자사고면접 #자소설 #이름 #진순희 #중앙대미래교육원 #내이름박힌내책한권쓰기

매거진의 이전글 사치와 평온과 쾌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