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그림들에서는 외로움이 뚝뚝 묻어나온다. 우울함의 색조인 블루 계통의 푸르른 색채가 ‘나 외롭단 말이야’라고 그림을 뚫고 나오는 듯 하다.
야심한 시각 홀로 응대를 하는 종업원의 엿 모습에는 무심함이 보인다. 커플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을 이용해 갑갑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 보인다.
이 지겨운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까? 얼마를 줘야 상대가 나가떨어질까?
이별의 끝은 언제나 더럽게 끝난다는 데...
깔쌈하게 끝낼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다 고민이야’
혹시 이런 어지러운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심히 복잡해 보인다.
홀로 온 양복 입은 남자의 뒷 모습에도 진한 고독이 스며나온다.
‘이번 달 카드 대금은 어떻게 한다. 돌려막기로 또 하기엔 한도가 찼고.
내게 주어진 할당량은 또 무슨 수로 채울까. 부모님 병원비도 내야 하는 데. . .
고민이다 고민이야’
외로움은 그림 속 인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나치게 큰 창문을 통해 바깥 세상과의 단절을 드러내고 있다. 창문 너머의 고독감이 스멀스멀 퍼져있는 듯하다. 나만 외로운 게 아니었어. 사물들까지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림 속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대화는 없다.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는 듯한 모습이다.
아,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다단계 식품 업체에 친구 돕는다고 갔다가 강제성을 띤 교육을 들어야만 했다. 모두들 누가 더 사람을 많이 데려왔고, 판매한 숫자에만 관심이 쏠려있었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소개가 있었지만, 나는 00님이 이번에 새로 증원한 사람으로만 소개됐다.
내게 집중을 하며 유일하게 물어본 것이 하나 있긴 했다. 그 식품을 먹고 좋아진 점에 대해 간증을 해야 했는데, 딱히 좋은 점이 없었다. 쉐이크는 들척지근했고 캡슐 형태의 보조 식품은 넘겨야 할 알약이 너무도 많았다.
나는 고작 화폐로 환산되는 잉여인간일뿐이었다.
군중 속의 고독감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준 곳이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커>는 장 그르니에의 <섬>을 생각나게 했다.
“우리는 혼자서 살다가 혼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은 생각만해도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다. 부조리한 직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는 반항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럴 때 겸허함을 통하여 영감을 얻어야 한다.”
- 장그르니에, <섬> 중에서
그림 논제:
1.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나요?
2. 나만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