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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hee Dec 07. 2020

2020 12.5 토요일

어쩌다 네덜란드에서 사는 이야기 

토요일 아침, 눈이 떠지는 대로 일어나 커피를 내려 거실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뒷마당이 나오는 거실문의 커튼을 열었다. 오늘은 파란 하늘이다. 

얼마 전에 위 집에 사는 부부에게 층간소음을 알렸더니 주말 아침부터 울려대던 아이의 뜀박질이 사라졌다. 

대신 가끔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만다. 옆집 티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주 고요한...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대에는 한국에서 주로 읽던 신문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경향신문의 토요판에는 다른 삶이라는 섹션이 있는데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다.

나도 해외에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 이 칼럼은 꾸준히 찾아본다.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비슷한 상황이나, 감정, 생각들에 공감이 많이 된다. 


단은 자고 있다. 내린 커피는 내가 다 마셔야겠다. 

아마 어제 늦게까지 친구들과 게임을 했겠지. 거실에는 지난밤 단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닥에 방석이 놓여있고 위스키 잔이 그 옆에 있다. 싱크대에는 어제저녁 우리가 함께 마신 맥주 캔이 비워져 있다. 캔을 물에 한번 헹궈서 재활용에 버리지만 오늘은 귀찮아 그대로 버렸다. 

단이 어제 회사에서 받은 스펠링 초콜릿은 벽에 세워 두었다. 초콜릿에 회사 로고가 박혀있다. 

그 옆에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200유로가 꽂혀있다. 건강하고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는... 누가 썼는지 몰라도 악필이다. 단이 회사에서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단의 동료가 직접 차로 가져다주었다. 


단은 이걸로 초밥을 시켜먹자고 했다. 나는 괜찮으니 은행에 넣어두라고 했지만 저녁은 초밥을 먹었고 맛있었다. 작년에 내가 잡 오퍼를 받았을 때 통장에 남아있던 잔고로 동네 초밥집에 갔던 게 생각났다. 초밥은 우리에게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다. 그만큼 한국에 비해 비싸고 초밥집이 많지도 않다.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샀다. 초반에는 단이 공동 식비로 내면 되지 왜 네가 사냐고 그랬지만 말을 듣지 않는 나에게 이제는 잘 먹었어라는 말을 대신한다. 


한국에서의 우리 생활은 정확히 1/n. 한달에 들어가는 식비와 생활비를 반반 내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관리했다. 그런 생활이 편했다. 매달 월세를 밀리지 않고 낼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위해 계속 일해왔다. 남들이 그러하듯. 


그러던 나의 독립된 생활이 어쩌다 네덜란드로 오면서 많이 위태로워졌다. 1년은 비자발급과 해외 취업을 하느라 보냈고, 어렵게 취직이 되어 10개월 일하다 직장 상사의 괴롭힘에 올해 여름에 그만뒀다. 그리고 5개월이 넘게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렌트비만 내고 생활비는 단이 감당하기로 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여태까지 살면서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같이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힘들 때 서로 도와주는 것. 너무 당연한 게 내게는 불편하게 다가왔던... 그래서 지금의 이 현실을 감당하기 어렵다. 


단의 도움을 받으면서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을 계속 붙잡고 왜 그런지 나에게 물으면서, 나에 대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이렇게 조금씩 알아가는 나와 우리를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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