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밥 참 맛있다

오이지와 깻잎찜, 여름 반찬들

by 미냐

쌀을 씻다가,

여름에는 또 얼마나 밥이 맛있는가 생각했다.

쌀통에서 꺼낸 시원한 쌀에 차가운 물을 부으면 쌀은 손가락 사이로 이리저리 물속에서 동글동글 흔들린다. 주방에서 열이 오른 손바닥까지 시원해진다. 쌀뜨물이 늘 들어 있는 냉장고는 또 얼마나 귀여운가.

여름엔 아무 때나 강된장을 바로 끓일 수 있게 멸치를 갈아서 된장에 섞어 놓고 통통한 애호박과 가지, 감자와 파란 잎이 달려 있는 대파와 매끈한 양파, 끝이 빨갛게 변한 매서운 청양고추를 같은 비닐팩에 넣어 냉장고 서랍 안에 모아 놓는다.

일부러 무쇠솥에다 조리한 꼭 알맞게 된 흰밥을 행주를 잡은 손으로 솥의 손잡이를 붙들고 주걱으로 젓다보면 고소한 밥 냄새랑 열기가 귀 옆으로 뜨겁게 날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열치열이라고 냉동실에 있는 명란이나 전복, 그것도 아니면 두껍게 썰어 놓은 구이용 소고기를 재료로 솥밥을 하기도 하지만 여름에는 많은 날 밥을 저어 열기를 날려 식힌다.

여름의 반찬이라면 너무 아무것도 아니라서 더 좋아하는 소박한 것들이다. 엄마가 만들어 준 오이지는 소금 말고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것이다. 요즘은 약식으로 식초랑 설탕을 넣어 삼사일만에도 새콤하고 달콤 짭짤한 오이지를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오이지는 짜기만 한 그것을 쫑쫑 썰어 차가운 물에 쥐어 씻어 짠기를 빼고 얼음과 고춧가루, 파랑 깨소금만 넣어 물에 동동 띄운 것이다. 삼각형의 구멍이 또르르 열려있는 오이지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마지막 한 숟갈의 적당히 식힌 밥을 오이지의 짭짤한 국물에 말아서 씹으면 등목을 한 듯 시원하다.

또 하나의 내 사랑하는 여름 반찬은 싸디 싼 깻잎을 수북이 씻어 양념장을 켜켜이 넣고 쌓아 쪄낸 것이다. 간장과 물, 중멸치 여남은 개와 파와 마늘을 넣고 찌면 집안에 깻잎 향이 가득하다. 산더미 같던 깻잎이 숨이 죽어 십 분의 일도 되지 않게 꺼져도 조금만 더 불에 올려둔다. 그래야 오히려 질겨지지 않는다. 나는 뜨거운 그 깻잎찜이 되자마자 냄비의 뚜껑을 닫지도 않고 솥에서 밥을 푸기 시작한다. 반공기쯤의 흰밥을 두고 조그맣고 납작한 접시에 깻잎을 살살 떼어 덜어 놓고 식탁에 앉는다. 식은 밥은 적당히 꼬들 거리고 향기 뿜뿜 내는 깻잎찜은 따뜻하고 짭조름하고 달다. 오늘은 청양고추도 딱 한 개 썰어 넣었더니 끝 맛이 매콤하다, 여름의 맛이다! 맨손으로 그릇 두 개를 설거지하고 나서 유리 반찬통에 깻잎조림을 켜켜이 넣고 냄비에 남은 간장은 남겨둔다.

바싹하게 물기를 날린 불고기를 할 차례다. 마늘 서 너 개를 까는 것이 먼저다. 간장이 있으니까.

더운 날엔 고기를 얇게 썰어 둔다, 냉동실에서 꺼낸 고기를 녹일 필요도 없이 남은 간장과 설탕, 후추와 참기름, 또 마늘을 넣어 십 여분만 두었다가 작게 썬 대파를 한가득 넣어 센 불에 볶는다. 수분이 날아가고 바싹 양념을 먹은 달달한 불고기를 접시에 담고 이제는 상추를 씻고 쌈장을 만든다. 고추장과 된장을 섞고 거기에 마늘을 많이 다져 넣고 참기름과 통깨, 꿀을 조금 넣어 섞는다.


남은 일은 밤새 게임을 하고 에어컨을 틀어 놓은 방에서 이불을 돌돌 말고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지

않고 찬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다. 머리가 다 마르지 않았어도 대충 둘러 묶고 신발을 신고 나가는 일이다.

오랜 시간 잠이 덜 깬 아이를 깨워 밥을 먹였다, 학교에 늦을까 봐 쉽게 일어나지 않는 아이 때문에 동동거려도 당사자는 느릿느릿 씻고 겨우 앉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다행히 여름에도 가득 담은 밥을 남기지 않고 잘 먹었다,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갔다. 친구를 데려와 같이 먹고 놀러 나가기도 했다.


자는 아이를 깨우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식탁에 차려 놓은 밥을 또 남김없이 먹을 아이의 지금도 좋다. 비로소 밥 먹은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밥 먹이는 일이 수고롭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우산을 들고 나선다, 아이에겐 카톡을 남긴다.

밥 먹어라.

그 밥 참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