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을 지키기
칼로 잘라야 하는 것은 칼로 자른다
가위로 김치를 자르고 냄비 위에서 파를 잘라 넣는 것에 나는 익숙하지 않다. 숭덩숭덩 자른다란 말이 있지만 그것조차 도마와 칼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물기를 꼭 짜야하는 것은 베보자기가 미어지도록 힘을 들여 짠다. 샐러드의 채소는 깨끗이 씻어 물기가 남지 않게 신경써서 털어낸다. 마늘은 되도록 그때그때 찧고 참기름과 들기름은 조금 비싸더라도 우리것을 사용한다.
음식의 맛이 아니라 재료의 맛이 드러나게 하는 조리법이 사실은 훨씬 복잡한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만 방심하면 촌스러워지는 옷차림처럼 과정이 적은 조리법은 처음부터 좋은 소재로 잘 테일러링된 셔츠를 입듯 조심스러워야한다.
반쯤 먹던 사과를 내려 놓고 콩나물을 씻는다. 냉동고의 가자미를 꺼내 놓는다. 밀가루를 묻혀 구워내려고 한다.
재료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요리는 내게 즐거움을 준다. 가뜩이나 비닐하우스나 농업공장 같은 곳에서 자라 풍미라는 것이 겨우 숨이 붙어 있을만큼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음식재료들은 간단히 굽고 무치고 삶는 것이 낫다.
아이들이 크느라고 무섭게 먹던 십 년정도의 시간들엔 고춧가루와 고추장, 간장과 꿀, 식용유와 매실청의 용기들엔 손자국이 늘 묻어 있었다.
예전처럼 늘 식탁에 함께 앉지 못하는 지금은 식재료도 양념도 소박하다. 국간장과 들기름, 소금이나 후추, 미나리나 쪽파 같은 향신채 정도로 맛을 낸다. 육해공이 줄지어 요리되던 주방에선 병어나 가자미 조기와 같은 생선들이 그저 구워지거나 쪄지고 절이거나 볶았던 채소들은 데치거나 그대로 두어 들기름 정도로 맛을 낸다. 여름이면 수박하나 넣을 곳 없이 꽉꽉 차던 두 대의 냉장고 중 하나의 전원도 꺼둔 지 오래다.
비단 음식만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학교 앞에서 속도를 줄이는 일, 쓰레기를 휴지통에 바리는 일, 계절에 맞춰 피는 오래된 집의 꽃나무를 함께 보는 일과 같은 것에 대해서, 타인의 아픔을 기회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 약한 사람들의 짐을 나누어 들어주는 일들, 자리가 가진 엄중함을 아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가볍고 천박한 말들 말고 오래 생각하고 돌아봐야 하는 말을 듣고 싶다.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인데 한 달 여를 지나는 동안 냉장고 구석에서 오래 부패한 재료를 온갖 달고 짜고 매운 양념으로 요리해서 입맛을 속인 음식을 먹고 있는 기분이 든다. 곧 탈이 날 것 같은데 할 수 없이 꼬박꼬박 끼니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시간들이다.
깨끗한 손으로 데려온 계절의 재료가 간이 똑 맞게 접시에 반듯하게 담기어 있는 걸 보고 싶다.
어쩌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기다려야 할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