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반찬들
슈퍼에 갔다가 노각오이를 세일하길래 얼른 집었다. 보는 순간 남편과 둘째 아이가 떠올랐다.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는 식구들을 깨우지 않도록 필러로 껍질을 벗기고 숟가락으로 속을 파내고 장갑을 끼고 채칼로 잘랐다. 여름반찬의 냄새가 퍼진다.
여름은 오이의 계절. 오이지가 무거운 돌덩이를 이고 익고 있고, 기다란 초록 오이들이 길게, 짧게 매일 도마 위에 오르고 미리 만들어 둔 차지키소스가 든 유리그릇이 냉장고 중앙에 들어가 있다. 잠깐 사이 소금에 절인 노각채가 노곤해졌다. 베주머니를 찾아 놓고 어두운 박스 속에 모여 있는 감자들을 골라 채를 썬다. 감자볶음을 해야지. 감자채를 물에 담가 놓고 양파를 썬다.
눈물을 흘려가며 썬 양파채를 감자와 함께 볶을 때쯤 늦게 일어난 아이가 아침인사를 한다.
손 좀 씻고 와 이것 좀 베보자기에 넣어 꼭 짜줘.
부드럽게 절여진 노각채를 어깨가 아주 넓은 아이가 크고 기다란 손으로 꼭꼭 쥐어짜서 건네준다. 물기하나 없이 포슬한 노각들에 마늘 한 톨 찧어 놓고 고춧가루 고추장 매실액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후 참기름 한 방울. 미리 해서 냉장고에 넣어 둔 냉제육을 접시에 담고 물에 띄운 오이지와 열무김치를 내놓으니 여름 휴일의 늦은 아침식탁이 대강 차려진다.
이제 한참 올려다봐야 하는 아이 둘, 꽃병에 꽂힌 보라색 델피늄과 특별할 것 없는 싱거운 시간.
거의 일주일 만에 네 식구가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종강한 둘째의 혼자 가는 독일여행계획을 듣고 아직 종강이 먼 큰아이의 학생진료 무용담(?)을 듣는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버무려진 오래 먹는 프랑스식(^^) 아침식사.
요즈음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잘 골라 사 온 수박과 요맘때만 나온다는 주황색 체리를 씻어 내놓고 커피를 내린다. 작은 아이가 앞접시와 포크를 챙겨 가고 식구들이 소파로 내려앉는다. 곧 정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