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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Jul 22. 2022

로스트 도터

조조영화를 보는 일에 대하여


오랜만에 약속이 없는 날이다.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날. 소음이 없고 긴장이 없는 시간이다.

그렇지, 아침과 점심을 챙겨주어야 할 아이가 거실 건너에 잠이 들어 있지. 어제부터 아이는 오후에 입시학원으로 알바를 하러 간다. 충일한 혼자가 되기 위해 아침 영화를 예매했다. 서둘러 돼지갈비와 김치를 냄비에 넣어 조리해 두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 몇 개를 문을 열면 바로 보이도록 정렬해 놓고 조미김을 꺼내 식탁 위에 두었다.

근처에서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들어가면 아마도 아이는 알바를 하러 나갈 거다. 스치듯 벗어나고 싶다. 망치지 않고 피하고싶다.


<로스트 도터>를 보았다.

딸은 자라서 엄마가 되고 또 딸을 낳는다. 엄마를 떠올리는 기분은 어떤가?

모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뛰고 머리가 쿵쿵 울렸다. 메기 질렌할이 각본을 쓰고 올리비아 콜먼이 주연을 맡았다. 원작은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잃어버린 사랑>이다. 언젠가부터  여성의 삶에 대한 서사들이 쏟아졌다. 여성의 목소리와 자리에 대해 너나없이 이야기했다. 그래서 조금 나아졌나.


  인간이 아니라면 무언가요, 신이죠


모성은 늘 신화 속에 숭고하고 아름답게 박제되어 왔다.

영화〈로스트 도터〉는 묻는다.


    정말 그런가?


등대의 빛은 보살펴 줄 자 없이 길을 잃은 자에게는 더없이 아름답지만 여행자의 잠을 방해한다. 먹음직스럽던 과일들은 실은 썩어 뭉개져있다. 입을 맞추고 힘껏 안아 올리는 인형의 몸통에는 새카맣게 오염된 물이 가득하고 입 속에는 징그러운 벌레가 들어 있다. 옷을 갈아입히고 배를 눌러 썩은 것을 토해내게 하고 리넨으로 닦는 일과 같은 것을 무엇이라 부를까.


    자식들이란 끔찍한 부담이에요


모성에 대해 영화는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말한다. 보는 사람은 예민한 긴장의 끈을 붙잡고 내내 불안하다.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딸들에게서 도망치고 엄마와는 다른 내가 되고 싶어 그것이 무엇이든 욕망으로 다가가는 일이란 모성을 벗어난 것일까.  가방 속의 인형을 끌어안고 들어 오듯 숨긴다고 더 나아지는 것은 없다.

과일의 밑동이 썩어 가듯이, 커다란 솔방울이 여자의 등에 무심코 상처를 내듯이. 흔들리고 벗겨지는 신화에 꽂은 핀이 내 뱃속을 관통할 수도 있듯이.


레다가 아이들을 떠날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을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커피 다 마셨다, 이제 아무도 없을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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